'사람 낚는 목사'와 '사람 잡는 목사'
'사람 낚는 목사'와 '사람 잡는 목사'
  • 신성남
  • 승인 2014.07.10 05: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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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목사들의 잡신 참배도 하나님 뜻인가?
   
▲ 신성남 ⓒ <뉴스 M>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거부하는 개혁 교회, 그리고 나팔을 잃어버린 파수꾼 이게 현재 우리의 초라한 모습은 아닌지요. 아니면 종교적 야심을 위해 이합집산하며 통제조차 불가능한 수백 개의 잔챙이 교단으로 분열하여 '유사 종교' 집단으로 변절하고 있는 것이 본래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라는 말입니까.

최근 어느 유명 목회자께서 온라인에 올린 글로 인해 뜨거운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정의가 불의를 공격하지 아니하고 불의한 자를 공격할 때, 그리고 함부로 그를 심판하고 모욕하고 정죄할 때, 그리하여 정의로운 자가 힘있는 자가 되고 불의한 자가 약자가 될 때, 나는 자꾸 그가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그 약자의 편을 들고 싶어진다."입니다. 거기에 추가로 "아무리 그가 불의한 자라고 하여도 '정의가 사람을 잡는다면' 그건 목적과 목표를 상실한 정의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씀하신 그 취지를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우선 남을 함부로 공격하거나 정죄하지 말자는 것이고, 또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글에 대해 반론이 매우 컸던 이유는 그 결론이 결국 '비판하지 말고 침묵하자'로 유도하며 기득권 세력을 편드는 느낌을 주었고, 또한 시기적으로도 다소 민감한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죄인은 동격

그런데 성경은 언제나 죄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지은 죄인도 함께 응징했다는 사실을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관념 속에 존재하는 허상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람을 제외하고 죄를 논한다는 것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살인자는 처벌하지 말고, 살인죄만 따로 처벌하자는 논리처럼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입니다. 즉 '죄만 논하고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죄를 징계할 때 반드시 그 죄를 지은 사람을 함께 처벌했습니다. 비록 사탄의 꾀임이 있었더라도 하와가 범죄했을 때 직접 해산의 고통을 주었고, 아간이 범죄했을 때 그를 돌로 쳤으며, 다윗이 범죄했을 때 그의 가정에 큰 비극이 있었고, 거짓말한 아나니아도 죽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악만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인도 함께 처벌하십니다. 왜냐하면 죄는 단순히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저지르는 인격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사람을 죄의 길로 유혹한 사탄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동조하고 참여한 죄인도 함께 지옥에 갑니다.

따라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분명히 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것이 죄인을 정당화하거나 방관하거나 허용하라는 뜻은 결단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불의한 죄인을 향해 분명하게 저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의 또 다른 오류는 '정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말 정의가 사람을 잡습니까. 정의는 결코 함부로 심판하고, 모욕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죄를 지적하는 정당한 행동에 대해 그것이 심판이나 모욕이나 정죄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더 답답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백성과 지도자들의 죄를 강하게 비판한 것 역시 심판, 모욕, 그리고 정죄이기에 결코 해선 안 될 행위였습니까.세례요한이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나 "지옥 자식"이라고 하신 것도 모욕입니까.

게다가 '불의한 자가 약자가 될 때 그 편에 들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또한 너무 단순하고 편파적인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 요즘 대부분의 불의한 자들은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진 것 많고 배운 것 많은 강자들입니다. 설사 불의한 자는 약자라도 선인이 될 수 없고 불의는 그저 악일 뿐입니다. 불의는 약하든 강하든 무조건 악입니다. 따라서 불의한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 '사람 잡는 일'이라고 타박하기 전에 먼저 그런 일방적 편들기가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잡고 있슴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 어느 교회에서 열린 목회자 세미나 광경. 이 많은 목사들을 모두 사람 낚는 목사라고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을까? ⓒ <뉴스 M>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불의한 약자'는 그토록 동정하는 분들이 진정 그 불의에 의해 억눌리고 고통받고찟겨진 '진짜 약자'들의 고통에 대해선 왜 그리 무관심하고 침묵하느냐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진정 약자의 편에 제대로 선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요. 오히려 틈만 나면 돈과 권력을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에 아부하며 시녀 노릇을 자처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뜻' 남발하는 목사들

한국인에게 게으른 유전자가 있다는 '문창극'식 식민사관으로 국민을 함부로 비하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는 억지 주장에 동조하고 거드는 것이야말로 정말 사람 잡는 행위가 아닙니까. 그러면 선량한 백성들이 일제에 찟기고, 전쟁에 죽고,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고통받고 죽어야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인가요. 이분들 머리는 정말 정상적인 상식으론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그런 조잡한 논리라면, 거꾸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은 단지 꼭두각시 인형이라는 말인가요. 과거 간통한 어느 목사가 그것도 하나님 뜻이었다고 변명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또한 중세 가톨릭이 개혁자들을 화형시키고 하나님 뜻이라고 주장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그러면 당시 조선의 지도자 목사님들이 단체로 신사에 몰려가 일본 잡신에게 절한 것도 하나님 뜻이었습니까.

만일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을 잔혹하게 학살한 후 "그건 유대 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니 너희는 입다물고 감사하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얼마나 웃기는 말일까요. 그런데 문 장로님의 주장이 그보다 덜 웃긴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찬가지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하나님 뜻인가요. 그건 그냥 가인의 악독한 범죄일 뿐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도 십자가 사역에 기여했으니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일까요. 그래서 그를 순교자 대우라도 해줘야 합니까. 결코 아니지요. 다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그런 악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일본이 한민족을 괴롭히고 고통준 것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건 단지 일본의 탐욕스러운 범죄였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목사가 교회 공금을 횡령했다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입니다. 목사들의 논문 표절, 설교 표절, 거짓말, 말바꾸기, 교회장부 은익, 날치기 표결, 교권 남용, 월권, 위선, 성추행, 간통, 세습, 성직매매, 패거리 작당, 금권 선거, 뇌물 수수, 교인 차별, 교회 사유화, 그리고 헌금 강요 등 그 어떤 악행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 함부로 하나님 뜻을 빙자하며 범죄나 비리를 용납하라는 잔수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신학을 깊히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상식이 아닙니까. 그런데 소위 신학교 교수라는 분들마저 그런 엉뚱한 줄에 서서 '하나님 뜻이 맞다'고 두둔하며 성명이니 뭐니 난리를 치니 정말 한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그 장로님보다 더 측은한 분들은 거기에 합세하여 동조하는 일부 목사와 교수들입니다. 그래도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을 몇 줄이라도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읽었으면 뭔가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닌지요. 이건 진정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양심이 출장간 것인지 정말 그 깊은 속내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평소엔 "너나 잘하라"고 빈정거리며 교회 부패와 사회 불의에 대해 마냥 침묵하던 위인들이 막상 별 시답지 않은 망언에 대해선 열을 올리며 기득권 세력 편들기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개신교 양심의 거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일부 원로 목사님들조차 그 줄에 서서 쭈뼛대고 계신 것을 보니 정말 안타깝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목회자들 막말 중독에 구토가 다 난다"는 신도들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손봉호 장로님께서 "기독교가 동네 개처럼 되었다"고 탄식하셨을까요.

용서를 요구하나 회개가 없다

오늘날 일부 목사들은 두 가지 수법으로 사람을 잡고 있습니다. 하나는 '불의한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사악한 왜곡'입니다. 물론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분명히 악입니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 중간은 없습니다. 불의는 입에 물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삼키거나 뱉거나 반드시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또한 정의를 왜곡하는 것은 더 나쁜 악입니다.

그럼에도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할 노력은 별로 안 하고, 도리어 일제강점기의 친일 귀족들처럼 사익을 위해 몇 마디 말로 정의를 비틀고 진실을 왜곡할 궁리만 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특히 강단에서 교만 떨며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고 제멋대로 곡해하여 설교하는 자들은 사람 잡는 목사이니 필히 경계하십시요.

성도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편들 것을 편들어야지요. 불의함의 본성은 결코 연약함이나 부드러움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는 불의는 단지 악일 뿐입니다. 그리고 불의에 대한 어설픈 관용이나 동정심은 진리에 따른 사랑이 아닙니다. 도리어 '약함'을 핑계로 '악함'을 용납하자는 논리는 정의를 업신여기는 행위이며 더욱 간교하고 더러운 동조입니다.

죄는 단순히 관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대적하는 실체이며 '인격'입니다. 죄와 죄인은 동격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죄인이 지옥에 갑니다. 오직 십자가를 지신 주님 앞의 '참된 회개'만이 죄와 죄인을 서로 영구히 분리할 수 있슴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어떤 목사님들은 온갖 부정과 비리를 다 저질러 놓고 늘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죄 없냐, 그러니 죄인을 용서하라"고 요구합니다. 또한 다른 교회 직분자들의 악행에 대해 관여하지 말고 침묵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관용을 요구하나 진실한 회개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선 동일한 범죄가 습관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는 그 무슨 기막힌 비밀이 있는지 몰라도, '교회의 비밀을 누설하면 이단보다 더 나쁜 자'라고 적반하장으로 호통치는 목사가 있습니다. 또한 비록 자식에게 큰 교회를 하나 넘겨주었지만 그래도 그건 세습이 아니라고 편법을 정당화하는 잔머리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먹을 것 안 먹을 것 가리지 않고 모두 잘 드시지만 결코 순순히 회개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저항자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가 뭡니까. 그 어두웠던 시대에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영적 무지와 종교적 불의에 감연히 맞서던 그 거룩한 저항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순수한 십자가 정신과 개혁 정신은 다 어디로 갔나요.

이젠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거부하는 개혁 교회, 그리고 시대의 나팔을 잃어버린 파수꾼 이게 현재 우리의 초라한 모습은 아닌지요. 아니면 고작 종교적 야심을 위해 패거리 작당하고 이 교단에서 저 교단으로 이합집산하며 불과 한 세기만에 거의 통제조차 불가능한 수백 개의 잔챙이 교단으로 분열하여 '유사 종교' 집단으로 변절하고 있는 것이 본래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라는 말입니까.

이럴려면 도대체 뭐하러 종교개혁을 하고 피흘려 저항하며 개신교를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그냥 중세 가톨릭에 얌전히 눌러 앉아 성직자들이 면죄부를 팔아 먹든 교회장부를 씹어 먹든 또는 무슨 불의가 횡행하든 진창에 발 담그지 말고 침묵하며, 오로지 '자기 수양'에나 몰빵하고, 모두에게 듣기 좋은 소리나 가끔씩 늘어 놓다가 우아하고 품위있게 천국에 가시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이제세치 혀로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 모호하고 복잡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의 명령대로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이웃 나라를 폭력과 살인으로 침략한 것은 성경의 보편적 가르침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고, 그러므로 그건 결코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목사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며 '사람 낚는 목사'가 있고, 반대로 실상은 늘 자기 욕심과 자기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며 '사람 잡는 목사'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 목회자와 동행하고 계신지요.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마4:19)."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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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참 2014-07-28 07:58:04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분명히 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것이 죄인을 정당화하거나 방관하거나 허용하라는 뜻은 결단코 아닙니다.- 신성남

두 가지 case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죄인인 당사자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번째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처럼 아들을 죽인자가 용서를 빌 때, 이미 죽은 아들을 되신하여 그 죄인을 양자로 받아들인 경우입니다.

죄와 죄인은 동격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나님은 죄 지은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분명히 그 죄의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동감 2014-07-11 00:09:23
성질 못된 먹사들도 많습니다. 바른믿음, 바1른신학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성질은 엉망인 먹사가 많습디다. 진짜 이런 먹사들이 사람을 잡는거죠. 자기는 변화되지 않으면서 교인들은 변해야 한다고 웃기는 먹사들이 하나님 영광을 망쳐 먹지요. 먹사들아 인간이 좀 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