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 없는' 미국 사회
'간통 없는' 미국 사회
  • 강희정
  • 승인 2009.07.13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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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 엿보기 26 - 공과 사의 구분이 철저한 사회

▲ 교사와 학생들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 제공 강희정)
아이들 학교가 방학에 돌입하기 바로 전이었던 지난 6월 첫 주 화요일에 지역 교육구청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이들 학교에 새로운 교장이 온다는 내용이었다. 새로 오는 교장의 이력에 대해서만 적혀 있을 뿐, 지금 교장이 왜 학교를 떠나는지, 어디로 떠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날 미국인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서 교장이 바뀌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한다. 무심코 왜 교장이 바뀌는지 아느냐고 했더니, 그 친구는 교장이 같은 학교 여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일로 인해 그 여교사는 인근에 있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는데, 교장은 아마도 해당 지역 교육구청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장의 경우는 지역 교육구청을 떠나게 되면 이전 직장에서의 평판이 좋게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학교에 교장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며 아마도 개인 사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덧붙였다.

당사자들 가족의 반응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사건 관련 여교사의 남편은 이런 사실을 알고 지역을 떠났으며, 어린 여자 아이들 셋이 있는 교장 부인은 현재 교장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예상치 않은 내용을 듣게 된 나는 어떻게 그런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이 문제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다른 교사가 소송을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법원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를 시인했다고 한다. 소송을 낸 교사는 교장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여교사로 인해 학교 내에서 공정하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소송을 낸 교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친구조차도 알고 있지 않았다.

미국에는 간통죄가 없다. 일리노이 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부부 사이의 애정을 이간했다는 점을 근거로 상대방을 고소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는 한다. 그러나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런 일은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된다. 이와 같은 일로 교장이 과연 징계를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나의 관심이 쏠렸다.

나는 이 교장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가 사임을 해서인지 아니면 해고를 당해서인지를 물어 보았다. 친구 말에 따르면, 교장은 해고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사임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교장이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학교와 지역구청을 아예 떠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면이나 도덕적인 의무보다도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미국인들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아서는, 해고를 당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문제로 스스로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는 추측에서였다.

이런 사실은 올 봄에 드러나게 되었고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 뒷공론거리가 되어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학교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러 나가지 않다 보니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원봉사를 하러 다녔던 다른 학부모들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 학교와 지역 교육구청의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들어가 보았다.

지역구청에서는 별다른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아이들 학교 홈페이지에는 교장이 올린 글에서 관련 사실이 언급되어 있었다. 교장은 자기가 떠나게 될 것이며 그동안 학교 생활을 즐겁고 보람 있게 했었다는 내용으로 글을 올려놓았다. 글의 말미에 이번 일과 관련된 여교사가 전근가게 되는 학교 이름이 적혀있고 자신은 집이 팔리기를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여름 동안은 지역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집에 돌아 온 큰 아이에게 학교 교장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자기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교장선생님이 지역에 있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현재 교장이 자신의 아이들이 뒤뜰이 넓은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사를 가기 때문에 두 학교의 교장이 서로 바뀐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아이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곤란했던 담임선생님이 둘러댄 모양이다.

방학이 시작되는 목요일 아침에 교사에게 줄 선물을 챙기며 부산을 떨던 둘째 아이는 학교 버스를 놓쳤다. 할 수 없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차에 태워 학교에 갔다. 그런데 교장이 다른 두 여교사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 학생들과 학부모를 맞이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던 둘째 아이에게 혹시 아무개 선생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사건 관련 여교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서였다. 그랬더니 교장과 함께 있는 두 여교사 중 한 사람이 그 교사라고 알려 준다.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맞고 있는 교장에게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 돌아와서 지역구청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다. 그랬더니 어젯밤에 큰 아이가 알려준 사실이 공지 사항으로 올라와 있었다. 지금의 교장과 지역에 있는 다른 학교 교장이 서로 자리를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장이 이전에 홈페이지에 집이 팔릴 때까지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이유는 교장이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던 듯하다.

'간통'이라는 개념이 없는 미국 사회에서 교장이 같은 학교의 여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다 해도, 그것은 그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일일뿐 공적인 역할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법의 해석인 듯하다. 다른 교사들에게 공정하지 않은 작업환경을 만들었다고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두 사람을 다른 직장으로 떼어 놓는 것으로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일까.

몇 년 전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 문제에 별다른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문제를 냉정하게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일과는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그것을 물고 늘어진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이 사안에 대해서는 내가 어떤 시각을 취해야할지 한동안 입장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되어야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성의 일탈'이라는 것은 배우자와의 신뢰와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인데, 이런 사람들이 교장 혹은 교사로서 직무수행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내 사고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번 스캔들을 통해 관련자 두 사람의 인격 전체를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과 선생이 개입되었기 때문이어서인지 혹은 교사라는 직업이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한국적 관습을 은연중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도 교장과 여교사는 해임이나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간통죄' 규범을 두고 있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구분이 느슨하고 교사의 품위 유지를 중시하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나 문제가 될 사항이다. 그야말로 '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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