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거리
유나의 거리
  • 허경조
  • 승인 2014.10.15 12:1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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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경조 ⓒ <뉴스 M>

대개의 한국 남자들이 그렇듯이 필자 역시 한국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다. 주로 사회 상류층과 재벌들의 시기와 탐심, 불륜으로 얼룩진 막장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그런 류와 다른 종류의 드라마가 나오면 관심을 갖고 보게 되며 “유나의 거리”라는 드라마가 그 중 하나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조폭 출신과 소매치기와 페인트공, 그리고 별로 꽃미남도 아니며 돈도 없고 사고만 치는 주제에 극도로 양심이 불량한 노총각 등의 이 시대 삶의 밑바닥 인생들이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모습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착한 모습으로 그들의 양심을 찾아주는 스토리이다.

극중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주인공인 유나는 역시 소매치기였던 아빠와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남자 주인공의 도움으로 어렵게 재회하여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나 이제는 어엿한 기업가의 아내가 된 생모가 전과 있고 소매치기라는 자신을 꺼려하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다시 닫아 버린다.

우리가 누구를 알게 됐을 때 으레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있으니 “그 사람 무엇하는 사람이야?” 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직업과 인격을 동일시하는 우리 생각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가 언급한 드라마에서 유나는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이 소매치기라는 바닥 식구가 되었으나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아가씨들보다 더 좋은 인간성과 깨끗한 눈동자(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전과 있는 소매치기라는 현실 때문에 생모가 자신의 현재 상태(기업가 회장의 아내)에 악영향을 줄까봐 만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하여 백인들의 삶의 습성에 익숙하다. 그들은 사람의 직업이나 외모로 그 사람을 절대 판단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대화(수다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를 통하여 깨달아지는 만큼만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에 반해서 우리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상대방이 눈을 위로부터 아래로 훑어보며 외관으로 나를 판단하며 직업으로 판단하려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게다가 판단이 끝나는 순간부터 상대방을 바로 무시하거나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우러러 보는 습성에 이르러서는 마음속으로 거부감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민 사회에서도 이 정도로 익숙한 이런 사고방식은 한국 내에서는 더욱 심화되고 고착화 돼있어서 이런 현실을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아르바이트 청년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청년유니온이 감정노동 전국네트워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과 함께 전국의 15~29살 아르바이트생 225명을 조사해 24일 내놓은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가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1년 사이에 손님한테 무리한 요구를 받았다는 이들은 절반이 넘는 121명(53.8%)에 달했다. 114명은(50.7%) 인격 무시 발언을 들었다고 했고, 89명(39.6%)은 욕설이나 폭언을 들었다고 했다. 성희롱이나 신체접촉을 당했다는 이들도 34명(15.1%)이나 됐다. 신체적 위협(35명, 15.6%)이나 폭행(9명, 4%)을 당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자신의 세상적인 지위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불법적인 행동을 서슴치않고 자행하는 사태가 종종 있으니 전 국회의장이며 76세나 나이 드신 양반인 박희태 새누리당 고문은 하라는 골프는 안하고 캐디의 젖가슴을 건드리다 상대방이 고소하여 망신살을 사는 중이며, 세월호 유가족과 식사와 음주 후 대리기사와의 폭행 시비로 관련된 야당 김현 의원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국회의원이야!!”라는 발언으로 역시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우리는 소위 말해서 가방끈이 길다는 변호사(辯護士), 의사(醫師), 박사(博士), 목사(牧師) 등등의 '사'자 돌림의 직업과 그 사람의 인격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필요 이상으로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목사, 신부, 스님 등의 종교인들에게는 무한정의 의지함과 따라감이 있기에 문제가 발생할 요소가 항상 존재한다.

가톨릭의 부패가 심했을 때 루터는 하나님과 우리를 중보하는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성경뿐이라고 외치며 믿는 모든 자가 제사장이라며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일으켰지만 다시 목사는 교황의 자리에,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가려는 자유를 박탈하는 장벽이 된 것은 아닌지.

우리는 신앙적으로 홀로 서야 한다.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야 하며 대세를 이루는 기독교의 잘못된 신조와 믿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기독교를 휩쓸고 있는 영적인 타락과 바벨론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잘못된 복음을 믿어 빠지게 된 거짓 구원의 기만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

어떻게 홀로 서야하는가 ?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1)”

미국 교회의 헌법과는 다르게 현대 한국교회는 교회법을 통하여 담임목사에게 절대적인 교회 권력을 쥐어졌고 그것으로 인해 한국 교회는 현재 담임목사가 삯꾼목사로 변할 시에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독립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교인들이 삯꾼목사의 친위대로 돌변 시에는 우리가 흔히 교회 분쟁을 보도하는 언론의 사진에 나타나는 온갖 추한 모습이 어김없이 자행되며 어제까지 수십 년 동안 주안에서 형제자매로 사랑하던 사이가 순식간에 철천지 원수로 돌변한다.

초대교회에는 모임 중 설교보다는 성찬이 중요시되었고 회중을 이끄는 자나 신자들의 삶의 모습이 중요시 되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된 후에 고관대작들의 필요에 의하여 호화로운 예배당과 수사학과 변증학으로 포장된 설교가 등장하여 교회 타락의 물꼬를 튼 것이다.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계급화되고(자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지만) 변형된 한국형 교회 헌법으로 철밥통의 거의 평생 사례가 보장되며 목회자 개인의 욕심을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이를 조금이라도 항의할라치면 절대적인 설교권으로 “감히 하나님의 사자에게!!”라던가 저주성 설교로 겁을 주던가, 아니면 간접적으로 축복권을 강조하며 회유하는 삯꾼 목사들을 분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신앙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도 혼자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삶의 시간이 끝나고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도 홀로 갈 것이며 그 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대에 설 때에도 우리는 홀로 설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타락하고 변질된 현대 한국교회에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독립적인 신앙으로, 목사나 목사의 설교, 혹은 그 무엇에 무조건 의지하거나 믿지 말고 우리 스스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기도하며 깨달아진 말씀에 의지하여 난국을 타개해야 할 때이다.

허경조 장로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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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 2014-10-16 09:01:56
허경조 장로님의 글은 언제나 신선하고, 쨟고, 핵심을 팍팍 질러서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특히 조심할 사람은 내가 뭐 했네 하면서 갑자기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망진창 입니다.
또한 별로 한 일도 없는 데, 자기가 모든 걸 다 한 것처럼 그러더라구요.
동지들과 함께 누려야 할 기쁨을 살짝 자기 것으로 훔쳐 가지고, 아니 도둑질 해 가지고, 난리 부르스를 치더군요. 자기가 다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본업에 충실치 않고 엉뚱한 일만 하지요. 그래 가지고 자기가 잘났다고 하려는 거죠.
그러니 그런 사람을 조심하고, 절대로 하나님과 말씀만 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좋은 글 감사 드리며.

노욕 2014-10-15 13:31:28
지당하신 말씀이온데, 마지막 문장은 사람들로 기성교회가지 말고 자연을 벗삼아 에배드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어다 로 들리니 이거 어떡하죠? 고민되네

지혜의소리 2014-10-15 13:26:05
우리가 외모나 그 사람의 학력을 먼저 본 다음, 인격은 나중에 보는 것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뼈저린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장로님의 글에 백프센트 공감이 갑니다. 감사드리고 좋은 글 계속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