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을 든 루터
장미꽃을 든 루터
  • 김기대
  • 승인 2014.10.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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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여유롭고 강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올해로 종교개혁 497년을 맞는다. 3년 뒤인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벌써부터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계획들이 여기저기서 준비되고 있다. 종교 개혁을 기념할 때마다 자주 하는 착각 중 하나는 개신교를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로 보는 경우다. 갱신(Renew)하고 개혁(Reform)했지 만들어진 게 아니다. 본래부터 있던 믿음의 전통이 교권에 의해 왜곡의 시기를 겪다가  루터라는 걸출한 인물의 저항(Protestant)으로 본래의 자리를 찾게 되었다.

가톨릭은 가톨릭 대로 종교개혁 이후 부단한 갱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큰 집, 작은 집의 비유는 적절하지 않고, 부단한 갱신 노력을 통해 대중들 속으로 다가가고 있는 현재의 가톨릭을 두고 이단 부패 등의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것도 볼성 사납다.

그렇게 보면 미국에서의 종교 구분법이 맞다. 한국에서는 4대 종교하면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이렇게 나누지만 미국에서는 기독교라는 범주 안에 가톨릭 교회를 포함시킨다. 한국 식으로 말하면 미국에서 개신교인이 가톨릭보다 많지만 미국식으로 말하면 가톨릭이 최대 교단이다. 즉 가톨릭은 신구교라는 큰 범주로 구분되지 않고 장로교, 감리교처럼 교단 중의 하나 이므로 단일 교단으로는 최대의 신도수를 가지고 있다.

루터의 저항의 기본 정신은 재개념화였다. 가톨릭에 믿음이 없지 않았고, 성서가 없지 않았다. 없던 은총의 개념을 루터가 만들지도 않았다. 루터는 기존의 모든 개념들을 성서에 기초해서 다시 정리했을 뿐이다. 루터는 교권에 의해 규정된 개념들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보통 사람들의 것으로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래서 루터는  95개 조항을 교회에서 발표하지 않고  교회 문 앞에 게시했다. 교권과 맞서 싸우기 위해 대중들이 필요했다.

동시에 95개 조항을 라틴어로 기록했다. 백성들의 독일어 해독률이 5%밖에 되지 않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라틴어 해독률은 1%도 안되었을 것이다. 루터는 라틴어를 사용함으로써 전통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단지 교권만을 반대한다는 취지에서 교회 밖과 안의 연결 지점인 교회 문에 95개 조항을 붙이면서 저항의 이미지도 살렸다.  루터는 스스로 이단아가 아니라 개혁자요 원래의 것을 찾기 위한 저항가임을 밝히는 전략과 전술에 모두 능한 사람이었다.

종교개혁 500년을 기다리는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믿음으로인한 구원, 성서, 하나님의 나라 모두 새롭게 개념화할 필요가 있다.  바울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포스트 모던 철학자 중 하나인 알랭 바디우는 <사도 바울>에서 ‘믿음’을 ‘주체의 단호한 결단’으로 해석한다. 주체가 모호해진 포스트 모던 시대에 바울의 믿음은 주체를 원위치로 돌려 놓으면서도 주체를 절대화하지 않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그는 믿음 소망 사랑을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는 주체화하고(믿음) 충실성을 통해 보편화하며(사랑) 주체적 확고 부동함(소망)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틀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만의 개념화를 이룩하되 그것이 개인적 한계를 벗어나 세상의 보편적 변혁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을 성공한 원동력은 루터가 성서를 읽은 데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축자영감설이 아니라 자기 행위의 근거로 삼기 위해서 성서를 읽고 또 읽었을 때 루터는 모든 것이 성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오직 성서로만’은 일점일획의 잘못도 없는 성서무오설을 뒷받침하는 구호가 아니라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모든 해석과 행위의 출발점이 된다.

장미 꽃을 든 루터

동시에 그는 여유를 아는 사람이었다. 교황청에서 파견한 요한 에크와 라이프치히 논쟁을 벌일 때 루터는 하얀 장미 한송이를 들고 갔었다고 한다. 하얀색은 순결의 색, 천사의 색인데 루터가 장미 꽃을 든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라이프치히 민요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신부님, 신부님, 어디 가나요? 하얀 장미 한 송이 들고 멋진 애인 만나러 가나요?”

회심의 계기가 된 번개를 맞을 뻔한 루터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들판을 걸으면서 수없이 안전과 보호의 상징 안나에게 빌었다.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로 당시 가톨릭에서는 마리아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어머니 안나까지 동정녀 였다고 주장하는 흐름이 있었다. 루터는 요한 에크 신부 앞에서 한때 수호성인 신앙 같은 것들에 약해졌던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 굳건히 선 자신을 다잡기 위해 장미 꽃 한송이로 안나(순결)를 기억해 내었다.

파문의 공포 앞에서도 루터는 이처럼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는 단호했다. “교회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이 말 한마디로 루터는 대이단이 되었다.

카를 5세가 기다리는 보름스 국회의 소환에 응하면서 주장을 철폐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이나 공의회는  자주 잘못을 저질렀고, 서로 모순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확실하기는 해도 상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아멘.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루터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다. 개신교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여야 하는데 ‘개혁신앙’이란 것도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 버렸다. 단호한 신앙에는 여유로움이 없이 싸움만 있고, 깊은 산속에서 수도하는 선사들처럼 ‘점잖게’ 신앙생활 하는 이들에게는 치열함이 없다. 루터는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었다.

 종교개혁일이 다가 오고 있다. 종교 개혁을 말하면서 교회 개혁만을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이 개혁을 요구하는 시기이기는 하나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오던 용어들을 다시 정의하고 상황에 맞게 재상황화 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개혁이다. 루터는 교회를 개혁한 것이 아니라 가치를 개혁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재부흥기를 맞은 해방신학도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 맞게 변했다. 자본주의와 권력을 숭상하는 교회가 가치를 개혁하지 않으면 어떤한 쇄신의 노력도 성공하기 힘들다. 상다리가 부러져서 음식이 흘러내리는 데 상이 더러워 진다고 계속 행주질만하는 것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500주년을 기다리면서 개혁이 거대담론으로서의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재해석되고, 실천되고, 적용되는 운동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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