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일을 하라!
두려운 일을 하라!
  • 오동성
  • 승인 2014.10.28 05: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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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맞이한 4.16

토론토에 살면서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삶이 달라졌습니다. 먹어도 먹어지지 않고 잠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울기 시작하면 하염없었지요. 어른들이 잘 못살아 아이들이 죽어간 것이 억울하고 아프고 미안하고 속상했습니다. 세월호는 희생자들이나 유가족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두 달을 보내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토론토의 엄마들이 먼저 움직여 일인시위라도 해야겠다고 나서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동조하는 것이 되는 현실에 또 속을 수가 없어서 토론토에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여름 내내 천만인 서명운동을 함께 해왔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에 동조해서 8월 18일부터는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론토 릴레이 단식’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더불어 토론토의 릴레이 단식과 함께 <<Fast4Sewol>>이 조직되어 전 세계의 해외동포들도릴레이 단식으로 김영오씨의 40일 단식을 이어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촉구하며 배고픔에 오늘까지 동참해 오고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진상을 밝혀 다시 이런 비극이 없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고자 애쓰는 유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우리도 스스로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하루하루 단식을 통해 보태가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광화문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마음으로 연대하고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왜 아이들이 죽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하고 재발을 방지하여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우리가 함께 만들자는 것이지요. 세월호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되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잡아주지 않은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잡아준 교황이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알려주었듯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가족들의 곁으로 한 발 더 가까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하겠다는 약속 - 기억의 의무와 책임

내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상식이 통하고 가슴이 통하고 꿈이 통하고 희망이 나누어지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이지요. 내가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요? 오월 광주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었듯이 세월호는 오늘 생명이 먼저인 안전한 나라를 세워가는 그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토론토 단식 릴레이 바톤을 이어받을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자고 다짐을 한 번 더 하고 있습니다.

늘 나에게 묻는 물음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오신다면 어디로 가실까? 무엇을 어떻게 하실까? 라는 물음입니다. 그 물음이 나를 깨어있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오월 광주는 나의 20대를 깨워 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세월호는 다시 잠자던 나의 40대를 깨워주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가만히 있으면 너도 물속으로 가라앉고 만다고, 서서히 데워지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되고 만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월호는 나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나의 눈이 어두워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면 내가 눈을 뜰 때까지 어린 양들은 그처럼 죽어가고 죽어갈 것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어린 양이 죽어야 눈을 뜰까요? 그들을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침몰해 바다에 빠져 죽은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기억되게 해야지요. 그 때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터입니다. 그렇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고 듣는 것이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어린 양은 제 뒤에 오시지만 이미 나보다 앞서 계신 분이시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세상을 바꾸고 나를 구원합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의 성만찬 – 참된 용서와 화해

초대 교회는 예수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성만찬을 했습니다. 예수께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 밤에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면서 함께 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의 몸을 받고 그의 피를 받으라고 하셨지요.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죽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몸과 피를 받아서 그의 힘과 얼과 생명으로 살아 그가 나를 통해 부활하게 하는 것이지요. 오늘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도 그러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기억한 그들은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우리 가운데  부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용서는 그 후에 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아직 절대에 이르지 못한 세상에서는 상대적인 시시비비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도 하지 못하면서 절대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오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저질의 인간들에 의해 지배를 받는 가장 큰 요인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잘못되었다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부른 용서는 용서가 아니지요. 용서는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의 강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누가 그들의 이웃이 되겠냐고 묻고 계십니다. 세월호는 들에서 형의 손에 죽은 아벨의 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네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오늘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감동도 불확실한 것도 의심도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신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오늘을 그렇게 산다면 동생을 죽인 가인이고 강도만난 자를 외면하며 자기 갈 길을 바삐간 레위인과 제사장과 바리새인일 뿐입니다.

두려운 일을 하라!

새벽 3시 40분, 맞혀둔 알람에 일어나 공항 가면서 메일을 확인하는데 한국에 계신 아버님으로부터 메일이 와 있습니다. 보통은 늘 기도하신다는 말씀으로 안부를 물으시고 지지와 응원으로 말씀을 마치시는데 오늘은 꼭 부탁하신다며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멈추기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니 맡기고 덕이 안되는 일은 절제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고 받은 소명 위해 힘쓰기 바란다는 아버짐의 편지를 읽으며 덜컥합니다.

이번 박근혜씨의 캐나다 방문 규탄 시위가 생각보다 반향이 커져서 내가 받게 될 후폭풍은 각오하고 있는데 한국의 가족들에게 피해와 압력이 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니며 유치장을 들락거리고 구속까지 되면서 마음에 늘 걸린 것은 부모님이었지요. 또 시절이 엄혹하던 때라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동생에게 피해가 갈까봐 염려 아닌 염려까지도 하셔서 목에 불편함과 미안함이 턱 걸려 있었더랬습니다.

또 세월호 이후 달라지는 나에게 누군가 현안이 되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예의라고 충고를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에게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말하지 않을 때는 떠받들려 살았는데 말하고 나니 내팽겨쳐집니다. 감추어졌던 본질이 드러나는 거지요. 이건 참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편하고 안일하게 위험한 일을 회피하며 살았구나 알아차려집니다. 목사가 되어 제도 교회에 들어가면서 의식적으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분리되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념의 옳고 그름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살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살았더니 저질의 인간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야 댓가를 치르는 거라지만 기가 막힌 것은 결국 내가 그들에게 동조를 하고 있던 꼴입니다.

2차 세계대전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시도에 가담했다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 나온 유명한 이야기가 "미친 운전수가 버스를 운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었지요. 본회퍼가 본 믿음과 역사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인 현대에 제정일치였던 중세 때처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 참 하나님이 계시다는 고백이었지요.

그러니 이제 다시 불편하고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 곳에서 사람의 성장과 변화가 일어난다고 융이 말했더랬습니다. 예. 이제 두려운 그 일을 합니다. 거기에 성장의 기회가 있습니다. 

오동성 목사 / 오동성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인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와 천만인 서명운동을 함께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릴레이 단식’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오타와 방문 시에는 현지에 가서 피켓 시위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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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운전사 2014-10-29 09:58:43
세월호 이후에 몬회퍼의 이 말을 인용하는 목사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는 꼭 필요하다고 굳건히 믿는 사람으로,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끌어내려야 할 미친 운전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근혜 한 사람만 손가락질 당할 일이 아니지요. 바로 내자신이 끌려내려와 할 운전사이라는 깨달음이 오니 참 감사하다고 생각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