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예언' 홍혜선 후기
전쟁 '예언' 홍혜선 후기
  • 김기대
  • 승인 2014.12.12 05:2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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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뒤

언론이라는게 참 그렇다. 대중적 관심에만 초점을 맞추자니 신문의 격을 생각해야 하고 전문성에 중점을 두자니 독자들의 조회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긍정적인 미담만 다루면 신문이 싱겁고 비판 기사만 실으면 데스크조차도 짜증 날 때가 있다. 한국의 유명한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전북대) 가 긍정적인 뉴스만 싣겠다는 포부로 시작했던 인터넷 신문 <선샤인 뉴스>도 처음에는 관심을 끌더니 지금은 있는듯 없는듯하다. 좋은 정보와 대중성의 갈등은 모든 언론 데스크의 고민이고, 신문에 비판을 던지는 독자들의 고민이다.

홍혜선씨의 한국 전쟁 예언 뉴스는  본래  <뉴스 M>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떠돈다는 건 알았지만 ‘헛소리’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교계 매체들이 보도하기 시작했고 일반 언론에서도 다루는 현상 앞에 계속 무관심할 수 없었다. 더구나 홍혜선씨는 풀러 신학교를 다닌 미주 교포,  즉 <뉴스M>의 앞마당인 로스엔젤레스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므로 외면할 수 없어  결국 기사화하기로 했다.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그녀의 ‘예언’이  종북과 WCC를 텍스트로 하는 ‘예언’이라는 걸 알면서  흥미가 가중되었다. 보수 세력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  말하자면 그녀 역시 시대의 희생자였다.

모든 사람들이 보수 세력과 종편이 만들어 놓은 대북 공포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반공 종교의 열성 신도가 되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북한에도 행복한 사람이 살고 있더라’는 신은미씨의 ‘간증’은  ‘계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에 종북 계시의 사제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배교자를 몰아 부쳤다. 반면 홍혜선씨는 참으로 충실하게 종북 계시의 예언자 역할을 해주었기에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보도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LA를 향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반드시 연락처를 알아내라고 기자를 거세게 몰아 부쳤다. 우리의 기자는 용케도 홍씨의 아버지 홍종열씨의 주소와 연락처를 손에 넣었다.  홍씨 부친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두 가지 였다. 딸의 연락처를 받아내는 것과 딸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예상 대답은 이런 거였다. “ 얘가 어릴 때는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공부도 잘하고 착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의 예측은 빗나갔다. 예언자 딸에 대한 아버지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아버지가 건네준 딸의 전화번호로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기자가 투덜되어도 계속 시도해 보라고, 그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딸을 신뢰했다. 아버지의 신뢰처럼 홍혜선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했고, 인터뷰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인터뷰에도 나와 있듯이 그녀 ‘예언’의 주요 텍스트는 성서가 아니라 종북과 WCC, 그리고 자위와 야동 이었다. 미주 교민이 갖는 북한에 대한 공포와 증오는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의 정치관 역시 부모대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과 땅굴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구원까지 좌우한다고 믿는 홍혜선씨에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보수 교회에서 별 신학적 근거없이 쏟아내는 반 WCC정서도 그녀의 ‘예언’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 가정에서 여성에게만 유난히 엄격한 성적 판타지에 대한 금기가 그녀 의식의 한 부분을 차지한 흔적도 있다.  자위와 야동을 지옥과 연결시키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남성의 자위 행위를 묘사한 지옥의 형벌은 그녀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성적 금기로 인한 히스테리의 표출로 보였다. 뿐만 아니라 홍씨가 한국을 떠나면서 했던 ‘대국민 메시지’ 동영상에서 그녀는 자신의 붉은 입술을 클로즈업하면서 여성의 입이 가진 성적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본지 화제의 동영상  ‘대국민메시지’ 4분 40초 지점부터).

어렵게 딴 인터뷰의 전제 조건이  ‘있는 그대로’ 였기에 가능한한 충실하게 보도해 주었다. 충실한 보도 자체만으로도 내용이 얼마나 희화적인가?  분석이 없어도 그 자체로 희극이었다. (이런 쓸데 없는 인터뷰에 지면을 왜 낭비하느냐는 독자들의 비판은 어느 정도 예견한 것이었으나, 이런 인터뷰로 인해 사람들이 미혹되면 어쩌냐는 비판은 또 다른 희극이었다. 그 비판을 하는 사람이 미혹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미혹되지 않는다. )

인터뷰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이유는 한국에서 도피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의 주소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홍혜선씨는 순순히 건네 주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인터뷰는 이전 기사에서 보도했듯이 성사되지 않았다. 편집 데스크에서는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에게 한 대라도 맞고 오라는 씁쓸한 농담을 던지며 현장  철수를 지시했다.

이제 연극은 끝났다.

그들은 그날을 14일로 선포했다. 본래 14일 이후 이 기사를 내보내려 했으나 어차피 연극이 끝나가는 마당에 굳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 평론에서는 결말을 슬쩍 흘림으로써 결말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스포일러라고 하는데 이 연극에 스포일러를 던지자면 14일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증오가 종교의 기본 가르침인 반공교의 계시가 맞을 리가 없다.  

   
▲ 연극을 할 당시의 홍혜선씨, 앞은 연극 배우 출신의 아버지 홍종열씨 ⓒ 사진제공 : <미주중앙일보>

홍혜선씨는 본래 연극을 하던 사람이다. 2007년 5월 LA에서 발행되는 중앙일보에서 홍혜선 씨를 인터뷰한 한 내용을 보자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며 하루일과를 마치고 옮기는 발걸음은 집이 아닌 비전아트홀이다. 지금도 LA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인 뮤지컬 ‘넌센스’ 공연의 엠네이지아 수녀역을 맡고 있다.  그녀에게 연극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UCLA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조금 늦게 시작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녀의 배우로서의 끼는 잠재울수 없는 것이었다.   또 그녀에게 연극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 바로 그 자체다.   “할아버지때도 아버지때도 그리고 지금도 연극만 해서는 먹구 살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연극을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연극만할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 그의 최종 목표는 ‘홍해성 극단’(홍혜선씨의 조부)을 만드는 것, 자신도 배우로서 길을 걸어가겠지만 연극인 후배양성을 위해 나서겠다는 포부다.   “할아버지의 연극에 대한 열정을 담은 극단을 세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 꿈이 이루어질 날은 멀지 않은 것 같아요.”

이것이 2007년의 일인데 언제부터 ‘예언자’가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연극의 끼가 다분한 그녀는 이번에 전쟁 예언을 주제로 한 판 연극을 크게 했다. 연극을 했다는 표현은  홍혜선씨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겠는데 ‘쇼를 했다’라는 말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너무 몰입해서 배역과 자신을 구별못하는 형태의 연기법인  메소드(Method)  연기를 하면서 배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가 계시도 받지 않고 전쟁이 난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교회가 만들어 놓은 증오와 허위의 거대한 연극 속에서 계시를 받는 배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우리는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 없다. 무엇이 한국사회와 교회의 진짜 문제이고,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몰랐던 그녀를 예언자로 만든 것은 한국 또는 미주 한인 사회였다.

전쟁날짜를 못박은 녹음 파일에는 그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또 하나 있다. 홍씨는 ‘설교’에서  크리스마스를 가리켜 그날은 예수가 진짜 탄생한 날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교회가 배교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보통의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거나 왠만한 신도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받은 계시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게 홍씨를 잘 설명하는 부분인데 성경에는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라고 설명하는 구절은 당연히 아무 데도 없다.  춘분 다음의  보름달 이후의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정한 구절도 없다. 부활절의 경우 유월절 전통과 시기가 겹치므로 그나마 성서적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성탄절 사순절 등이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지정된 날이지 성서적 근거를 가진 날이 아니라는 것을 신학교에서 처음 배웠을 홍씨는 근본주의적으로 믿어 왔던 신앙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자기만의 신학세계를 연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홍씨의 ‘예언’은 한국사회와 교민사회가 숭배하는 반공교의 위세,  교회 연합운동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 성서에 대한 바른 비평을 가르치지 않는 보수 교회의 무지, 유난히 여성에게만 엄격한 한인 기독교 가정의 도덕기준이 희곡(시나리오)의 소재가 되어 그녀에게 멋진 연극 한판을 공연하게끔 해 주었다.

이제 연극이 끝났지만 메소드 연기에 충실했던 그녀가 배역에서 빠져 나오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다음 배역은 무엇일까? 기성 교회는 그녀를 조롱만 하고 있어야 하나? 문제는 홍혜선씨가 아니다.  그녀를 만들어낸 상황에 대한 진솔한 반성이 없는한 한국 교회는 또 다른 홍혜선을 계속 양산해 낼 것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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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2014-12-16 15:17:37
이 여자가 '전쟁이 났는데 종북언론이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북한도 아니고 전 세계의 기자와 대사관이 상주하고 있는 나라에 전쟁이 났는데 종북언론이 정보를 차단해서 기사화되지 못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머리여야 가능한 것인가? 그럼 한국에 있는 외국 언론과 대사들이 다 종북이란 말인가? 이런 정신병자를 불러서 그 예언을 들은 소위 교회와 목사라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더구나 외국으로 도망간 치사한 것들은 또 어떤 것들인가? 사람의 종자들이 아니다.

바두기 2014-12-15 23:48:48
애초에 이런 분에 대한 기사는 예언일이 끝난 후에 기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그냥 놔두면 사그러질 일을 너무 크게 키웠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이 정말 많고 거기 현혹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일일이 다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뉴조의 경우 교계의 매체들이 보도하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한 인상이 큽니다. 교계 매체들의 잘못된 것을 답습한 느낌입니다. 다 끝난 다음에 보도했으면 뭔가 달랐을텐데요.

김 성진 2014-12-14 20:34:34
12월14일 새벽에 전쟁난다고 예언한 홍의 거짓은 그녀가 사탄에게 조종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지금 한국은 아무일도 없잖는가?

독자 2014-12-12 14:34:15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이 느껴지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목사님이 던지신 질문도 우리가 깊이 고민해 볼 부분이네요.

통찰력 2014-12-12 10:51:26
제대로 보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각 종 이단과 사이비와 점쟁이와 무당들을 양산해 내는 못자리가 되었습니다. 정통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공들여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기 교회, 자기 교회 목사를 높이다 일어난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각종 신사도 운동이 난무해도, 이 기사의 홍양과 같은 푸닥거리가 열려도, 심지어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공격을 해와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정말 기독교 아닌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말해도 하나님 나라를 말해도 종북이니 좌파니 빨갱이니 이단이니 하는 판단만 내리고 앉아 있지 아무도 사랑 속으로 투신하지 않는 종교놀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곳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가 가지는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보화들은 볼 수가 없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는 낯선 것이 되었습니다.

통찰이 돋보이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