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목사?
좋은 목사?
  • 강만원
  • 승인 2015.04.0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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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만원 ⓒ <뉴스 M>

당연한 말이지만, 타락에 찌든 한국교회에도 분명히 ‘좋은 목사들’이 존재한다. 멀리서 애써 찾을 것 없이 당장 주변만 주의깊게 둘러봐도 좋은 목사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사리사욕에 물든 악한 목사들이 이른바 ‘주류’로서 대세를 장악한 척박한 풍토일망정 좋은 목사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때 한국 교회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영적인 성숙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목사가 좋은 목사인가? 신학적인 지식이 풍부하거나 개인적인 영적 체험이 많은 목사들,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어서 교인들을 힘있게 이끌 수 있는 목사들도 분명히 '나쁘지 않은' 목사들이다.

그러나 그런 목사들을 보면서 좋은 목사라고 섣불리 단정짓고 싶지 않다. 그들 가운데 수많은 목사들이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면서 여지없이 초심을 잃고 교만해지는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좋은 목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잣대가 제시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간단명료하다. 좋은 목사는 무엇보다 겸손한 목사다.

겸손한 목사는 자신이 마치 주의 사자인 양 “나를 따르라”고 감히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뒤에 서서 ‘함께 가자’고 형제들의 힘을 북돋는다. 목회를 하면서 모든 ‘공功’은 주저없이 교인의 몫으로 돌리고, 다만 잘못된 ‘과過’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공은 교인들이 순종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결실인 반면에 과는 순진한 교인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종, 충성스러운 주의 종은 자신이 ‘무익한 종’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감히 드러내지 않는다.반면에 사악한 종은 자기 의를 과장할 뿐만 아니라 호시탐탐 주인의 자리를 엿본다. 자신의 능력 때문에 주인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며, 모든 결실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섬기라고 명령하신 주 앞에서 교만한 자는 결코 진정한 주의 종이 될 수 없다.

겸손한 목사는 다른 무엇보다 진실한 목사다. 진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 나약한 모습, 심지어 악하고 추한 모습까지도 숨기지 않는 처절한 용기가 필요한데, 자신을 바닥까지 낮출 수 있는 그런 용기는 겸손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겸손한 목사는 자기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의 종'으로서 좋은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신념, 성공을 바라보는 자는 겸손한 목사가 될 수 없고, 겸손하지 않은 목사는 교만의 화려한(?) 왕관에 도취해서 절대로 왕관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교만한 자들의 공통점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의 치부를 거짓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자기 부인’에서 비롯되며, 자기 부인은 종의 십자가를 지는 온전한 겸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좋은 목사는 겸손한 목사이며, 겸손한 목사는 ‘무익한 종’으로서 자신의 나약하고 비천함을 ‘있는 그대로’ 깨닫는 목사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며, 죄와 허물 앞에서 오롯이‘회개하는’ 목사다. 결국, 한국 교회의 타락은 재물과 명예의 단 맛에 취한 목사들, 죄에서 끝내 돌이키지 않으며 예수를 능멸하는 교만한 목사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죄악에서 비롯된... 필연이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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