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고 왔습니다.
“엄마”를 만나고 왔습니다.
  • 최강선
  • 승인 2015.04.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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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두 분 목사님과 함께 뉴턴 수도원으로 세월호 추모미사를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 저의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세월호 추모미사에 가야 하는지 잠깐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나는, 혹시라도 미사 현장에서, 지겨운(?) 한국 “정치”를 만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저를 망설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갈 자격이 있나?" 하는 부끄러운 자책감이었습니다. 제 안에는 “세월호의 선장”이 남 몰래, 똬리 틀고 있었기 때문이죠.

작년 이 맘 때 어떤 분께서 쓰신 글이 생각납니다.

“불편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이 생겼을 때 그 대상자가 나만 아니면,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우리의 인식들이 세월호 비극을 만들어 냈다. 내가 만일 이 비극적 사건의 어느 한 지점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자신 있게 답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은 나도 숨어있는 공범이 아닐까”

글쓴이의 말대로, 제 안에는 나와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세월호의 선장"이 숨어있음을 바라보는 순간, 내가 추모 미사에 참석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으로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런데요, 미사에 참석하신 한 가정주부가 이런 말씀을 하시네요.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내가 가만히 있었기에, 세월호 사건이 터질 수 밖에 없었죠.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었어요. 이제 세월호가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들, 딸이, 내 눈 앞에서 차디찬 바닷물 속으로 가라 앉을 때 나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어요."

시 한편이 떠올랐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히틀러의 나치즘 정권 당시 마틴 니묄러 루터교 목사의 시입니다. 오늘 한국의 한 “엄마”의 입에서 이 시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신 주임 수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데요.

"그냥 유가족들 옆에서 함께 하면서 지켜 보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가족들 옆에서 그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도, 어쩌면 그것 조차도, 나 자신을 위한 알량한 위로의 몸짓일 수도 있습니다. “

이 강론을 들으면서 진리 앞에 당당히 마주서서 두려움을 맞받아치지 못하는

연약한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작 따로 있습니다. 미사 후에 “세사모”의 주동자(?)를 만났을 때, 저는 "아~" 하고 탄식할 뻔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상상 속 의 세사모 리더는 대단한 능력의 "Activist" 였지요. 그런데 정작 제가 만난 그 분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집에서 얘 키우다가, "우리 얘들의 미래를 위해" 뛰쳐 나오신 평범한(?), 모습이셨습니다. 장삼이사, 필부필녀가 이 모임의 주도자 들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것은,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엄마"를 만났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엄마의 몸짓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 땅에서도, 바로 이런 어린 자녀들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안은 많은 "엄마"들의 행진이 있습니다. 저 유명한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의 흑인 민권 운동사의 숨은 주역들은, 바로 그들 "엄마 (Mommy)"들이었음을 되돌아 봅니다.

세사모 회원들이 이곳 뉴욕, 뉴저지의 많은 개신교 교회들의 문을 두드렸을 때,

하나 같이 세월호가 너무 정치적이라서 외면 당한 끝에, 천주교 Newton Abbey에서 드려진 일 주년 추모미사,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최강선 / <뉴저지 하늘뜻교회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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