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세월호
이스라엘과 세월호
  • 지성수
  • 승인 2015.04.2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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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수 목사 ⓒ <뉴스 M>

나는 반유대주의자이다. 내가 반유대주의자라고 큰 소리쳐도 아무런 피해를 입을 일이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 할수 있다. 그러나 서구 세계에서 반유대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것만큼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랍인이 아닌 이상 자신이 반유대주의자일지라고 절대로 밖으로 나타내서는 안된다.

내가 처음부터 반유대주의자이었던가? 아니다.

오랫동안 기독교가 아닌 유대교 또는 세속화된 정치적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특별한 은총에 의해 마침내 나라를 건설했다고 믿었었다. 

학교에서는 우리도 이스라엘인들처럼 목숨을 바쳐 국가에 충성하자고 배웠다. 나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신화의 영역에 속하는 나라였다.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유태인이 되고 싶은 때도 있었다. 특별히 죄 없는 자들이 집단으로 살해된 홀로코스트는 ‘핍박받는 민중’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한 번 잘 생각해 보자! 

출애굽기에 기록된 유대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던 방식은 현대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그와 그 민족을 지배하고 있던 정서는 해방에 대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그들은 거류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자신들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 시점에서 그들을 이끈 것은 노예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땅에 대한 탐욕이었다.

억압당하고 있는 자들의 꿈은 항상 옳다. 이들이 현재 억압하는 자의 자리에 섰다고 하여 그들이 과거에 꾼 꿈을 비난할 수 없다. 그 꿈으로 하여 그들은 역사의 공포를 견디었다. 그러나 폭압자로 변한 그들은 아직도 찬양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된다.

나는 세월호의 진실을 덮으려고 하는 이들에게서 오로지 폭압적인 힘으로서 팔레스틴을 억누르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다. 억울함을 억누르는 그 모습은 즉 이집트의 바로왕이고 팔레스틴 땅의 원주민을 쫒아냈던 모세 시대의 유대인이었고 오늘날의 유대인인 것이다. 즉 힘을 가지면 얼마든지 억울한 자들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는 세력인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세월호의 진실을 절대로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들의 모습이 적나나하게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세상 만사가 모두 그 모양인데...'라고 체념할 것인가?

그러나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믿음은 버릴 수가 없다
천국이 임할 것을 믿으면서 죽은 예수처럼 소망 속에 죽을 수 있는 것이 깨인 자들이다. 미래를 위해 뿌린 씨가 거두어 질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서.

현대에서 깨인 자들이란 누구인가? 결국에는 이렇게 씨 뿌리는 자들이 아닌가? 이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도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힘든 싸움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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