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에서 온 귀인
온두라스에서 온 귀인
  • 이계선
  • 승인 2015.06.1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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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촌 이계선 / <뉴스 M>

중남미온두라스에서 귀인이 찾아왔다. 그는 온두라스대통령과 나란히 사진에 나오는 한국인이다. 온두라스의 육사에서는 태권도를 가르친다. 구데타가 자주 일어나는 온두라스에서 육군사관학교는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태권도교관이지만 그는 교수 대접을 받고 있다. 그만하면 귀인 아닌가?

그는 선교사다. 선교비를 보내는 교단도 대형교회의 후원도 없는 외톨백이 선교사다. 1세기의 선교사 바울처럼 자비량 선교사다. 석양의 무법자처럼 필마단기로 남미의 열대림을 누비고 다니는 외로운 남자. 그의 이름은 향사(鄕士)정권수. 지난주 향사가 돌섬을 찾아온 것이다.

“목사님 절 받으세요”

그는 만나자마자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폐하(왕)대접을 받는 기분이라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일어나 달려들더니 껴안고 비비고 흔들어댄다. 아내에게도 그리했다.

‘계완이가 살아 돌아온다 한들 저렇게 반가워 할까?’

석달전에 죽은 막내동생 계완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뭉클했다.

“돌섬농장에서 자란 야채로 사모님이 요리한 된장찌개 먹으러 왔습니다. 대신 제가 돌아간 후에 목사님 내외분이 후러싱레스토랑에 가셔서 점심한끼 드세요”

향사는 아내에게 봉투를 건냈다. 4년전 돌섬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동행한 유신희장노가 입을 열었다.

“정권수선교사의 이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온두라스에서 외롭게 선교하고 있는 그에게 메일을 보내주는 분은 이목사님 뿐이랍니다. 목사님의 메일을 받을 적마다 억만금의 선교비를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힘이 됐다고 간증처럼 자랑하지요”

우리는 다섯시간을 떠들며 즐거워했다. 돌섬창가에 어둠이 내리자 방문객은 일어섰다.

“저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 더 이상 선교사역이 어려워요. 일단 온두라스로 돌아갑니다. 12월이면 10년이라서 10년을 채우고 LA로 가서 병을 달래가면서 지내려고 합니다”

아파트를 나서자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슬비를 맞아가며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가슴이 아려왔다.

‘언제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파킨슨환자이고 그는 하반신이 무너져 내리는씨아티카환자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르지.....’

내가 향사를 처음 만난건 14년 전이였다. 기독문학동우회의 “열린문학회”에 참석하겠다고 필라델피아에서 초면객(初面客)이 찾아왔다. 뉴욕까지 왕복 6시간거리. 장미 한다발과 시한편을 들고 왔다. 이름이 정권수라했다. 향사(鄕士)라는 호도 소개했다.

“장미는 동우회회원분들에게 한송이씩 바침니다. 시는 ‘해외기독문학‘에 내 주세요”

엉뚱한데가 있었다. 인상이 동키호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만차의 기사 동키호테. 비쩍마른 늙은말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공격하는 동키호테는 애마 로시난테보다도 더 말랐다. 정권수의 몰골이 그랬다. 큰 키인데 말라서 더 커보였다. 뾰족하게 졸아든 턱이며 염소 얼굴이 영락없는 동키호테였다. 풍차를 괴물로 알고 돌격했다가 풍차날개에 채어 나가떨어진 동키호테는 다 죽어간다. 그러나 죽음에서 깨어난 동키호테는 벌떡 일어나 양떼들을 향하여 용감하게 돌진한다. 움직일수록 힘이 솟아는 동키호테처럼 향사가 그랬다. 화원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낡은차로 3시간을 달려왔다. 뉴욕모임이 끝나고 필라로 돌아가면 새벽 3시다.

‘’앞으로 정키호테가 되겠구나!“

난 동키호테를 만난것처럼 반가웠다. 동키호테는 내가 제일로 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어린시절 나는 만화로 동키호테를 읽었다. 어린 나에게 동키호테는 엉뚱한 미치광이 기사였다. 그러나 용감한 정의의 기사라서 좋았다. 나이가 들고 나서 원본을 번역한 700페이지짜리를 읽고 나는 제대로 동키호테를 이해할수 있었다.

또스트에프스키, 쉑스피어를 비롯한 당대 100인에게 문학사상 최고명작을 물어봤다. 주저하지 않고 동키호테를 뽑았다. 최초의 근대소설이라서 구성이 어설픈데도. “동키호테는 남녀노소가 즐겨읽는 소설입니다. 어린이들은 깔깔거리며 읽고 젊은이들은 분노하면서 읽습니다. 장년들은 엉뚱한 충동을 느끼면서 읽고 노인들은 동키호테를 해탈한 도인으로 읽으니까요”

향사 정권수를 보면 동키호테를 연기하는 배우처럼 생각된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88올림픽에서 영어통역봉사자로 일했다. 마드리드대학에서는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글재주도 타고났다. 그러나 동키테처럼 전진만 할줄 안다. 좌우를 살필줄아는 요령이 부족하다. 착상은 멋있는데 매듭이 약하다. 자품만 해도 그렇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버리고 마는 고집이라서 늘 미완성이다. 자꾸 다듬어서 옥을 만드는게 작품이거늘.

향사는 착하다. 부인이 죽자 두권의 책을 펴내어 순애보를 남겼다. 한국고등학교때 사귄 미국 펜팔친구를 40년 만에 만나보니 대학에서 일하는 독신녀였다. 여자는 결혼하자고 달려들었지만 죽은 아내를 생각해서 거절했다.

향사는 복받은 사람이다. 자녀들이 모두 목회자다. 딸은 초등학교사로 있으면서 목사 사모일을 한다. 결혼한 아들은 영어권 목사다.

향사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하다. 예수에 미쳐 동서남북으로 펄펄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경영목회 사업선교와는 거리가 멀다. 향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에 미친 동키호테는 망하지 않는구나‘

처음 만났을 때 향사가 나에게 준 시 “목련”을 소개한다.

“목련이 좋아/ 새 하얀 목련이 좋아// 밝은 외등처럼 켜있는 목련이 좋아/ 꺼질줄 모르는 저 등불이 좋아// 소복을 한 어머니를 닮은/ 새하얀 목련이 좋아// 저렇게 깨끗하고 정결한/ 저렇게 깨끗하고 우아한 목련이 좋아// 오늘도 나는 시종 담 너머로/ 솟아오르는 목련을 바라보며 거닐고 있다”

돌섬 등촌방에서 향사와 등촌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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