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교회가는 즐거움
걸어서 교회가는 즐거움
  • 이계선
  • 승인 2015.07.01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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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 목사 ⓒ <뉴스 M>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부부는 거북이와 토끼 경주대회를 벌린다.

“여보 토끼부인, 오늘 누가 먼저 교회가나 우리 내기 합시다”

“호호호호, 요즘토끼들은 약아서 절대로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지지 않아요”

난 걸어가고 아내는 차로 간다. 난 파킨슨으로 약해진 다리로 걷고 아내는 성능 좋은 고급차 인피니티를 몰고 간다. 누가 봐도 거북이와 토끼경주다.

그런데 놀라지 마라. 토끼가 거북이를 이겨 본적이 없다. 일년 통계를 내보니 아내는 예배시간 11시 정시에 참석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주일에는 기록을 깨고 허겁지겁 일찍 왔는데 그래도 30초 지각.

“하하하하, 토끼와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초등학교 이야기가 정말이네”

“맞아요. 아무리 자동차가 빨라도 걸음을 못 당해요. 당신은 한 시간이면 걸어가는 교회를 넉넉하게 한 시간 반을 남겨두고 떠나요. 난 이일저일 끝내고 차를 모는데 교회근처에 와보니 너무 이른 거예요. 은행에 들려 잔금체크 해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아요. Costco에 가서 우유 한통 사다보면 꼭 늦는 거예요”

난 웬만한건 걸어 다닌다. 낙타처럼 걷기를 좋아하도록 태어 난건 아니다.

나는 걷는걸 아주 싫어하는 젊은이였다. 어린시절의 뼈아픈 추억 때문이다. 여섯 살때 어머니 손을 잡고 외가집엘 간 적이 있었다. 70리길이었다. 십오리를 걸어 안중에 나와 보니 발안가는 버스가 금방 떠나버렸다. 외가집은 발안에서 내려 10리를 더 걸어가야 했다. 4시간을 기다려야 다음차가 온다. 40리 발안가는 버스표 값이 지금 미국왕복 비행기표값 만큼 비싸게 느껴질때 였다. 어머니는 내심 좋아하셨다.

“4시간을 기다리느니 살살 걸어서 가자. 버스값도 굳게 되니 차라리 잘됐지뭐냐?”

여섯 살 백이는 10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다. 집 떠나 20리를 걸었기 때문이다.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절면서 30리를 더 걸었다. 죽기살기로 50리를 걸은 것이다.

“아가야, 이제 20리만 걸어가면 외가집이 있는 가등리란다. 3시간만 버텨다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수가 없었다. 혼절해버렸기 때문이다. 눈을 떠보니 길가 마을 외딴집에 누워있었다. 불덩이가 된채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날이 밝자 동내청년들의 등에 엎여 외가집으로 이송됐다. 그때 인심이 그렇게 후했다. 외가집에서 며칠을 앓았다. 난 그때부터 걷기를 싫어하는 심리로 굳어져버렸다.

“화장실 말고는 차를 타고 다닌다는 미국으로 이민가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형님 형님 하고 따르는 송금섭목사가 인사차 왔다. 난 엉뚱한 부탁을 했다.

“내가 미국 가기전에 하루종일 조국의 산하를 걸어보고 싶은데 동행해주려나?“

“동키호테 가는 곳에 당연히 바보 산초가 따라 가야지요”

1987년 이민을 7개월 앞둔 가을 새벽, 우리는 서대문을 출발하여 성남으로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성남은 멀리 있었다. 해질녁쯤 해서야 어둠속에서 성남이 나타났다.

“와! 드디어 성남이다”

성남사거리에 도착 했을때는 밤이었다. 이제부터는 시내버스를 타고 남한산성으로 올라갔다. 조국이여 잘 있거라! 어둠속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옛날 병자호란때 인조는 여기서 청국 황제 홍타시에게 무릅을 꿇고 항복했었지’

뉴욕으로 이민와보니 맨해튼이 황금빌딩으로 가득찬 보물섬처럼 보였다. 팔을 휘저으며 걸어 다니면 맨해튼이 내 땅이 될 것 같았다. 조카에게 문전옥답을 빼앗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그랬으니까.

“아브라함아, 땅 없다고 서러워마라, 네가 걷는 대로 밟는 땅은 네 것이 될것이다”

동이 트기전에 퀸즈아파트를 출발하여 부르크린으로 걸어갔다. 부르크린브릿지를 건너 맨해튼으로 들어갔다. 장기판만한 맨해튼이 그렇게 넓은지 몰랐다. 걸어도 걸어도 다람쥐 체바퀴였다. 퀸즈보로 브릿지를 건너 퀸즈로 들어설때는 서녁하늘에 걸려있는 해가 한뼘쯤 남아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봤지만 임자없는 땅은 한평도 없었다. 대신 우주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난 걷는 게 즐거워졌다. 교회를 걸어 다닌다. 50분 걸이를 한시간 30분전에 출발한다. 갈적마다 골목길을 바꾼다. 기웃 거리면서 풍물을 즐긴다. 수탉이 있는 집도 만난다. 햇빛이 아름다운 날은 암탉을 부르는 수탉의 사랑의 아리아를 들을수 있다. 꽃한송이 풀한포기라도 눈에 걸리면 웃어주고 지나간다. 이런 일도 있었다. 화원이 하도 아름다워 들여다보고 있었다. 빠끔히 창문이 열리면서 다섯살짜리 소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저씨, 거기서 뭘 하는 거야요?”

“꽃들이 하도 아름다워 보고 있단다. 그런데 네 얼굴은 꽃보다도 더 아름답구나”

“아저씨 정말이에요? 잠깐만-”

소녀는 ‘마미 대디’를 외치면서 안으로 뛰어갔다. 잠시후 중년부부가 소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동양노인을 보고 주춤했다.

“교회 가는 길에 화원이 하도 아름다워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습니다. 길가에 꽃밭을 꾸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아름다움과 향기를 제공하는 마음이 아름답군요”

“우리부부가 몇십년째 꽃을 심어오고 있지만 이런 찬사 듣기는 처음입니다. 탱큐”

교회에 도착해보니 20분이 남았다. 카페테리아에 들려 불랙커피와 쿠키를 들고 나왔다. 복음성가 가수 시몬이 달려와 키스해준다. 그녀는 나의 파킨슨병을 아는 유일한 흑인아가씨다.

“오늘도 미스터리가 부인보다 빨리 왔군요. 파이팅!”

난 교회 뒤뜰로 나간다. 100년이 넘은 럿셀교회건물은 뒤뜰이 더 유명하다. 맨해튼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가 4천평을 조경예술로 꾸몄다. 토막나무에 걸터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내가 뛰어온다.

“오늘은 늦지 않으려고 신호등도 무시하고 차를 몰았어요. 그런데도 당신이 먼저 왔군요. 우리집 거북이는 광주고속버스라니까. 호호호”

“하하하 70년대의 ‘거북이광주고속버스’가 ‘그레이하운드고속버스’보다 더 빨랐었지. 오늘은 당신도 10분전에 왔으니 이긴거요. 우리 공동우승했으니 거북이와 토끼경주 이제 그만 합시다”

쿠키를 깨물면서 웃는 아내의 이가 예뻐 보였다.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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