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달라졌어요..."
"남편이 달라졌어요..."
  • 강만원
  • 승인 2015.07.27 22: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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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만원ⓒ <뉴스 M>

모태신앙으로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자매가 있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종종 겪게 되는 어떤 유혹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굳건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나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공부를 시작한 지 몇 주 지나서 말씀을 나누던 중에 갑자기 화를 벌컥 내더니 울기 시작한다.

“저는 지금까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했는데 쌤을 만나면서부터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수십 년 동안 전혀 의심이 없었다구요. 모태신앙에다가 여태껏 주일성수를 어긴 적이 없었고, 아무리 집안에 어려운 일이 닥쳐도 십일조를 내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청년 때부터 줄곧 교사로 봉사했고, 교회에서 시키는 사역은 어떤 일이든지 마다한 적이 없었구요.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힘든 일이 있어도  구원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는데, 쌤과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전부터 구원에 자신이 없어졌어요...”

함께 공부하던 여러 자매들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비슷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기껏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힘들면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 자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럴 수 없으니까 이렇게 힘든 거지요. 지금까지 저 스스로 자신만만했던 신앙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힘든 거구, 나오지 않을 수 없으니까 더 힘든 거라구요. 저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 공부를 빠진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했고 가르치는 대로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어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저는 성경을 공부한 게 아니었어요... ”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나는 크게 상처를 입고 눈물 흘리는 자매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그러면 잘 됐네.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틀린 것을 알았다면 잘 된 거 아니야?”였다. 그렇게 함께 공부했다. 그 사이에 그 자매에게도, 그 가정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그 자매는 그때까지 남편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

술과 담배는 그 자매에게 불신앙의 뚜렷한 증거였고, 불신앙은 저주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듣지 않는 남편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상태고,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기만을 바랬다. 혹시 자녀들이 남편에게 물들까 두려워서 가능하면 아이들이 남편과 가까이 있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사업상 술을 자주 마셨던 남편은 집에서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아내만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아빠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엄마에게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던 아이들 눈에도 아빠는 문제가 심각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분위기가 냉랭한 집안이 결코 화목할 수 없었다. 아빠는 아빠대로 밖에서 돌고, 엄마는 엄마대로 허구한 날 교회에서 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와 떨어져 가능하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에 바빴다.

그래도 그 자매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자신의 신앙에 자신이 있었다. 비록 기대와 달리 가족 관계가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종하다 보면 은혜로 말미암아 머잖아 모든 일들이 잘 풀리리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자매가 뜻밖의 고백을 한다.

“어제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서 거실에서 자고 있는데 왠지 이전처럼 밉고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측은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줬어요.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과 베게가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던 것 같아요”

   
▲ '복음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이전처럼 고주망태가 돼서 집에 들어오는 모습은 아예 사라졌다. 귀가 시간이 점점 빨라지면서 부부가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번에는 자매가 크게 달라졌다. 술이라면 저주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자매가 남편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하다가 슈퍼에 들러서 순한 막걸리를 한 병 샀다. 집에 들어가서 함께 마시려고...

자매가 말한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술을 마신다고 남편을 무시하고 심지어 저주했던 것이 훨씬 나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 신앙은 사랑이 없는 거짓 신앙이었어요. 결국은 저만 구원받으면 되는 이기적인 신앙이었지요. 그런 신앙으로는 저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어요. ‘사랑’을 알고부터는 술에 취해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미움보다는, 우리 때문에 남편이 너무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랑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남편도, 아이들도 요즘 집안 분위기를 너무 좋아해요.”

자매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복음의 차이다. 율법은 정죄하며 갈라서지만, 복음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름답고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적인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졌을 때는 오히려 구원에서 멀리 떠나 있다가 지금처럼 복음으로 구원의 ‘긴장’을 느끼는 순간에 오히려 ‘좁은 문’에 가까이 다가선 것이 아닐까?

“사랑할 만해서 사랑하는 것은 죄인도 한다”는 주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자. 그런 이기적인 사랑은 주께서 계명으로 주신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아니며, 내가 ‘중심’이 되는 탐욕스러운 사랑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음주를 옹호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쌍하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분 전문 번역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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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Kim 2015-07-27 23:22:25
율법과 은혜의 차이를 쉽게 보여주는 좋은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