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 강희정
  • 승인 2009.10.26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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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 엿보기' 27 … 예기치 않는 충돌

지난여름, 우리가 사는 곳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지역에 있는 리조트 시설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우리 가족에게 벌어졌습니다. 그 곳은 리조트 시설과 호텔을 함께 운영하면서 호텔에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도록 한 곳이었습니다. 호텔 숙박비가 다소 비싸기는 해도 리조트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과 숙박비 및 음식비를 다 고려하면 괜찮은 조건이다 싶어서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 날, 한인 마켓에서 여러 가지 음식 재료들을 샀습니다. 가장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로 돼지 삼겹살과 상추 등을 준비했습니다. 거기에 컵라면이나 오징어포 및 다른 먹을거리들을 잔뜩 샀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재료비를 다 합하면 차라리 거기서 피자를 시켜 먹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인 듯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호텔에 가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큰 기대감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밥을 해 먹기 위해 불린 쌀과 함께 전기밥솥을 챙겨가고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전기 그릴을 가지고 갔습니다. 호텔 입구에서 여장을 풀고 전기밥솥을 들고 와야 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미국 사람들의 시선에 무척 부끄러워하더군요. 다른 미국 사람들도 슬로우 쿠커라든가 요리도구들을 가져 오는데, 부끄러워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말을 해도 남편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 보니 한국식 콘도 식으로 되어 있고 개인 주택처럼 침실과 거실 등이 있고 부엌이 따로 갖추어져 있어서 아주 흡족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착 하자마자 이미 불려놓은 쌀을 전자 밥통에 넣고 스위치를 켜놓은 채 수영하러 갔습니다. 수영을 하고 나서 저녁 시간이 되어 객실로 돌아와서 상추와 야채를 씻은 다음에 준비해 온 삼겹살을 그릴에 굽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밥은 다 되었는데도 그릴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삼겹살을 굽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방을 뒤져 보니 후라이팬도 있고 온갖 주방기구들이 다 있어서 그릴이나 그릇들을 준비해 오지 않았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후라이팬에도 삼겹살을 올려놓고 같이 굽기 시작했습니다. 두 곳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다소 속도가 나서 아이들에게 밥과 상추를 주고 익힌 돼지고기 등을 먹게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곳 호텔 주방 천장에는 화재가 났을 때 연기를 감지하도록 하는 센서가 붙어 있었는데, 후라이팬에서 자글자글 익혀지던 삼겹살 고기를 태운 연기가 그 센서를 작동시켰나 봅니다. 센서에서 갑자기 화재를 알리는 알람 소리가 나더니 호텔 전체에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요리를 해도 오븐을 이용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고기를 스토브 위에서 구워 먹다가 그런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지라 우리 부부는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은 바로 호텔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화재가 난 것이 아니라 음식 연기로 인해 센서가 작동한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저는 바로 불을 끄고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큰아이가 크게 놀라고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그 아이는 진짜로 불이 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놀란 나머지 발코니로 뛰쳐나가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리문이 커튼에 반쪽이 가려진 채 있었고 큰아이는 발코니로 뛰어나가려다 보이지 않던 유리문에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유리문은 아주 작은 조각들로 전체가 균열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행히 유리문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고 그 중의 앞쪽의 것만 깨어져서 아이의 몸은 밖으로 튕겨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부딪힌 앞쪽 유리문은 전체가 산산 조각이 날 정도로 균열은 갔지만 조각들이 아이의 몸으로 떨어지지는 않아서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몸에 몇 개의 작은 유리 조각이 조금 떨어지고 이마에 조금 핏자국이 비쳤을 뿐이었습니다.

그 일로 큰아이도 놀랐지만 마음이 여린 둘째아이는 큰아이가 큰 상처를 입고 어떻게 되는 줄로 알고 울기 시작하더군요. 갑자기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호텔 측 직원들이 들이 닥치고 그 사람들이 아이가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의사를 급히 호출하였습니다. 의사가 아이 이마와 몸에 떨어진 작은 유리 조각들을 물로 씻어 내게 하고 얼굴과 몸에 난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 주었습니다. 다행히 유리 조각들이 몸속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혹시나 아동학대로 인한 사고는 아니었는가를 의심하는 경찰들에게 저와 남편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준비해 간 음식들을 보여 주고, 조리 과정을 구차하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우리 부부 모두로부터 설명을 자세하게 듣고도, 식탁에 있던 상추와 밥과 고추장과 된장 및 다른 한국 음식들을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경찰들은 리포트를 다 마친 뒤에서야 떠나갔습니다.

이 일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지 6~7년이 지났어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식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이란 것이 미국 사회에서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전혀 예기치 않은 사고나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상징적인 사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텔 매니저는 청소하는 사람을 불러서 조각난 유리 조각을 다 떼어내고 방 청소를 마치게 한 뒤 다른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그 방의 유리문이 부실해서 사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던 마지막 휴가 기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호텔에는 일반 객실은 모두 차 있다며 그 매니저는 우리 가족을 최고급 객실인 프레지덴셜 룸으로 옮겨주었습니다.  

호화롭게 꾸며진 그 객실은 술을 마시거나 주문한 음식들을 데워 먹을 수 있기는 했으나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일반 객실이 없어서 그 호텔 매니저가 우리를 그 곳으로 안내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가족이 다시 음식을 해먹다가 또 다른 사고를 낼까봐 그곳으로 보낸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덕분에 언감생심 최고급 객실에서 하루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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