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 안 하고 달린다는데 손 놓고 있는 까닭은?
'주일 성수' 안 하고 달린다는데 손 놓고 있는 까닭은?
  • 김성회
  • 승인 2009.12.09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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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LA마라톤 요일 변경 운동의 성과와 한계

'주일 성수'를 내걸고 LA마라톤의 일요일 개최 반대 캠페인을 줄기차게 벌여왔던 한인 교회들의 노력이 겨우 한 해 만에 허사가 됐다. Los Angeles Marathon, Inc. 측은 3월 셋째 주 일요일에 대회를 개최하되, 가장 많은 논란을 불렀던 한인 타운을 코스에서 제외시키는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다.

LA 올림픽 개최 직후인 1986년부터 시작된 LA마라톤은 참가 인원이 2만 명이 넘는 세계적 행사로 발돋움했다.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해서 하루 종일 LA 시내 교통을 통제하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불편함이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1994년, 교회를 가던 한인이 LA마라톤 교통 통제 때문에 우회로를 찾다 윤화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자기 교회 교인을 잃은 송정명 목사(미주평안교회)를 비롯한 한인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LA국제마라톤날짜변경위원회'(이하 날짜변경위원회)가 결성되어 ‘주일 성수’라는 구호를 걸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결국 2009년 대회는 공휴일인 메모리얼데이로로 변경됐고, 한인 교계는 "14년 만의 쾌거"라며 자축했다. 

▲ 종전 마라톤 코스. 자전거 마라톤 등이 포함되어 하루 종일 길을 차단했다.
하지만 LA마라톤 일정이 바뀌면서, 참가 인원이 절반 이하인 9,000명으로 줄었고, 주최 측인 Los Angeles Marathon, Inc.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Los Angeles Marathon, Inc.는 종교계의 입회 하에 2015년까지 일요일에 행사를 개최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다시 일요일로 행사를 옮겨줄 것을 LA 시에 요구했다. 결국 중재를 거쳐 '일요일 개최, 한인 타운 제외'라는 협상안이 나왔고, 날짜변경위원회는 Los Angeles Marathon, Inc.와의 합의를 통해 이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주일 성수 좋아하네, 결국 '헌금' 때문이지'

코스만 변경됐을 뿐, 결국 원래대로 '주일'에 진행하게 됐지만, '주일 성수'를 이유로 일요일 개최 반대를 외쳐온 'LA국제마라톤날짜변경위원회'(이하 날짜변경위원회)는 별다른 대응 없이 협상안을 수용한 것이다. 이에 '우리 교회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교계 이기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윤여평 씨는 블로그를 통해 '헌금을 위한 지독스럽고 유난스런 한인 교회들의 광기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한인 교계를 강하게 질타했고, 윤 씨의 글에는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반향을 일으켰다.

▲ 윤여평씨가 운영하는 요팡 블로그.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 성수만은 꼭 지켜야 한다며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그들 아니었던가. 한인 교회들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인 교회들은 가만있었다. 왜냐하면 일요일로 개최 일자가 환원되었지만 마라톤 코스에서 코리아타운이 완전히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즉 일요일에 개최되지만 자기 네 교회들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거였다. 결국 LA 언론들이 수없이 지적한 대로 한인 교회가 마라톤 대회 요일 변경을 한 것은 '주일 성수' 때문이 아니라 '헌금' 때문이었음을 스스로 널리 고백했다."

한인 교회로선 결국 요일 변경이란 결과도 얻지 못하고, "자기 네 예배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1년에 단 하루뿐인 25년 전통의 마라톤 대회 날짜를 기어이 바꾸게 만든 비상식적이고, 민폐를 끼치는 집단"이라는 조롱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성과는 있다…한인 종교계의 정치 세력화

날짜변경위원회 측은 요일 변경 운동으로 거둔 성과가 없지 않다며, '한인 종교계도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였다고 말했다.

▲ OneLA와 천주교, 성공회, 흑인 교회, 한인 교회 등이 함께 요일 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OneLA)
지지부진하던 캠페인에 하워드 김 목사(사우스베이장로교회)가 OneLA-IAF라는 단체를 연결시키면서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종교, 시민, 사회단체가 연대하여 주거·교육 환경 등의 개선을 위해 공청회를 열고 정치인을 압박하는 비영리단체인 OneLA는 타 종교와의 교류하며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천주교 등 LA에 있는 많은 종교 단체를 참여를 끌어냈다. 천주교 LA 대교구 로저 마호니 추기경의 지지까지 얻어낸 이들은 종교계의 힘을 바탕으로 시의원들을 압박해가며 결국 메모리얼데이로의 이전을 성사시킨 것이다.

당시 One-LA 코디네이터였던 김 목사는 <미주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One-LA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공통의 이슈를 찾아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한인 종교계도 정치적 힘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마라톤 요일 변경을 OneLA의 주요 5대 의제로 만들기 위해 LA시의 흑인 교회들을 OneLA로 영입했다. 그들 역시 같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국 교회들도 참여시키고자 노력했으나 시민 단체 참여에 부담을 느껴 실패했다. 결국 Civic Education Foundation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한인 교회를 회원으로 받은 후 OneLA의 산하단체로 가입하는 방법으로 한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에 관심이 컸던 하워드 김 목사는 한인 교회도 협력하면 사회적인 변화를 일궈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 성과는 일정 부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회 성장 외에는 관심이 없는 한인 교회

▲ 송정명 목사(미주평안교회).
숱한 비난을 받아가면서 얻어낸 한인 교회의 정치 세력화라는 결실을 얻긴 했지만, 또 다른 열매로 이어지고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날짜변경위원회 관계자들도 회의적이다.

‘주일 성수’가 목적이었다면 다시 캠페인을 벌여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송 목사는 ”거듭되는 싸움으로 종교 지도자들이 편협하다는 인상을 주고 전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한인 교회들도 캠페인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동력이 없는 것도 큰 이유였다”고 말했다.

하워드 김 목사도 "타 인종 종교 지도자들로부터의 도움을 많이 받은 반면, 마지막까지 남은 한인 교회는 없었다"고 말해 송 목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LA마라톤 일정을 바꾸자는 캠페인은 교회를 중심으로 불붙듯 일어났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현 시점에서 '주일 성수'를 위한 운동의 불씨는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워드 김 목사는 "한국보다도 더 한국적인 한인 교회들은 교회 성장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큰 교회들은 이슈를 만드는 자체에 관심이 없고 작은 교회들은 이런 이슈를 소화할 능력이 없다. 원래 계획했던 한인 기독교계의 정치 세력화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종교 지도자들이 힘을 모아서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송 목사의 바람이 현실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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