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사역지에서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일이 아닌 것은 당연합니다.
자비량사역의 형태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바울사도의 초기 자비량사역이 비성격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뿐입니다. 사역의 context에 따라 사역자의 먹을 것의 source는 사역자의 텐트메이킹노동을 포함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context 에서는 위 신성남님의 생각대로 자비량사역의 비율이 더 많아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성남님의 글을 비판하려면 자비량사역이 늘어도 무슨 무슨 이유로 한국교회의 부패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주장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비판 겸허히 읽겠습니다.
신성남씨의 글을 보면 비판은 실랄하나, 그 대안은 추상적이거나, 대안조차 없는 비난 뿐입닏다. 신성남씨 왜 이런 글을 쓰는 건가요? 대안 없는 비판, 의지없는 비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성남씨의 글 대부분이 비난 일색일 뿐, 정작 성경적이랍시고 제안하는 제도들은 오히려 현 시대에 맞지 않는, 또는 비성경적인(본인은 성경적이라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발 이런 식의 비난을 하려면 성경이라도 제대로 알고 비난해 주세요.
사도 바울조차도 처음엔 자비량으로 사역했지만, 나중엔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사역했다는 사실을 잘 아셨으면 합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9-10)
목사가 돈 때문에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은이나 전대가 없어도 사역한다. 그래서 목사는 자비량의 마음으로 사역한다. 언제든.
다만 그 사역지에서 목사가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마땅한 일이다. 그 일을 교회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자비량사역의 형태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바울사도의 초기 자비량사역이 비성격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뿐입니다. 사역의 context에 따라 사역자의 먹을 것의 source는 사역자의 텐트메이킹노동을 포함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context 에서는 위 신성남님의 생각대로 자비량사역의 비율이 더 많아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성남님의 글을 비판하려면 자비량사역이 늘어도 무슨 무슨 이유로 한국교회의 부패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주장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 비판 겸허히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