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에서 읽는 여성중심적 내러티브
룻기에서 읽는 여성중심적 내러티브
  • 정한욱
  • 승인 2017.08.08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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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나누는 성경 읽기의 가치
손으로 밀을 수확하고 있는 모압지방(요르단 중부)의 들텩 풍경은 룻기를 느끼게 한다.

“성경의 숨겨진 보물들”의 세 번째 주제인 룻기를 청년들과 함께 나눴다. 매 주마다 성경공부를 위해, 흔히 선택되지 않는 범상치 않은 본문들을 공부하고 그 핵심을 뽑아내 교재로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열정에 넘치고 총명할 뿐 아니라 인도자의 미숙함까지 넉넉히 품어주는 훌륭한 청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아무쪼록 함께하는 청년들에게도 이 공부가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룻기는 흔히 “하나님나라의 모델을 보여 주는 소우주”라 불린다. ‘가부장적 시선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당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이번 본문 연구를 통해 시도한 일은 룻기의 본문을 남성의 관점과 여성의 관점에서 쓰인 내러티브로 나눠 보는 것이었다. 성경 공부에 함께한 이들이 서로의 주제와 관심사를 비교해보며, 각각의 내러티브가 룻기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소우주”를 만드는 데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리처드 보컴의 <성경은 남성적인가?>나 필리스 트리블의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과 같은 책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청년들과 함께 룻기 본문을 열심히 탐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있다. 룻기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그리고 동력)에 관한 것이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두 여인(룻과-나오미)과 그들이 이끌어가는 여성 중심적(gynocentric) 내러티브라는 것이다. 이 둘은 가부장 사회에서 남편과 아들의 부재로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다. 그렇지만 서로 연대하여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고 과감한 모험을 감행한 끝에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생명을 얻어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모압 들녁과 베들레헴 들녁은 요단강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아마도 룻은 해가 뜨는 모압 들녁을 아침마다 마주하면서 어떤 감회를 느끼곤 했을까? (구를 지도 화면 갈무리)

물론 그 시대의 가부장제가 룻기에 담겨있다. 가부장 체제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인애(hesed)를 통해 두 여인을 곤경에서 구해낼 힘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결혼을 통해 기꺼이 그녀들의 구속자(goel)가 된 ‘범생이 율법준수자’ 보아스와 그가 대표하는 남성 중심적(androcentric) 내러티브가 담겨 있다.

이야기 자체의 구조로만 보자면 룻기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여성 중심적인 내러티브이고 남성 중심적 내러티브는 여성 중심적인 내러티브에 대한 반응으로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현실 속에서는 족보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적 내러티브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룻기의 대단원을 장식하며 남편 중심적 내러티브를 대표하는 마지막 족보는 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이끌어 온 놀라운 여성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삭제’한다. 룻기 전체를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라는 단 한 마디의 문장으로 요약해 버린다. 그리고 당대의 강고한 가부장체제 하에서는 이 주체적이고 멋진 여성들마저 결국 ‘생명’을 얻기 위해 그들을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성인 남성 구속자, goel)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두 여인은 사사기의 마지막 장들에서처럼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막장 사회에 살고 있었다. 만약 이 두 여인이 보아스와 같이 그들을 구원할 힘을 가진 모범적인 가부장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과연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이것은 그런 만남을 누리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는 아니었을까?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의 원리가 가부장제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성경속 가부장제는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닌 당대 현실의 반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할 기회와 권리를 영원히 얻지 못한 채, 오직 모범적이고 훌륭한 남성이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과 목사와 대통령으로, 즉 그들에게 헤세드를 베풀어줄 고엘(구속자)로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타락 이후에야 가시화(창3:16)되고, 예수께서 친히 천국에서는 소멸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눅20:29-36)것이 가부장제 질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근거한 “여성안수금지”를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하면서도, 미혼 여성 대통령에게는 몰표를 던지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행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글을 쓰다 보니 "하나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은 하나님이다"라는 여성신학자 메리 데일리의 일갈이 자꾸 떠오른다.

스스로 발견하고, 숙고하고, 상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성경공부야말로 뜻깊은 말씀 묵상이다.

글쓴이 정한욱 님은, 우리안과 원장(https://www.facebook.com/wjdwkqtk)으로 일터에서 복음을 품고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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