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구지배 세력이 '순수한 이웃'이었나?
이스라엘 구지배 세력이 '순수한 이웃'이었나?
  • 송병주
  • 승인 2010.03.11 17: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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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김진호 목사의 시평을 읽고…이스라엘 구지배 세력과 느헤미야

그간 많은 논란을 불렀던 로버트 박 씨의 방북 사건에 대해서 '제3세계그리스도교연구소'의  김진호 목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김 목사는 로버트 박 사건을 통해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예언자적 영성이 불러오는 위험성을 성경 속에 나오는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사례를 통해 지적했습니다.

반면, 송병주 목사(LA 선한청지기교회)는 천진한 예언자적 영성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김 목사의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무분별한 배타적 민족주의자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로버트 박의 방북 사건으로 시작해, 해석학 논쟁으로 발전하긴 했지만, 독자들의 성서 해석을 돕기 위해 김진호 목사와 송병주 목사의 글을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편집자 주)

김진호 목사님의 시평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실눈 뜨고 사는 우리에게 탁월한 신학적인 안목과 시대적인 안목으로 우리가 보지 못한 시대정신과 흐름을 두 눈 부릅뜨고 다시 보게 하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눈 질끈 감고 기도할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번 로버트 박의 방북에 갖는 의미와 문제점에 대한 시론은 오늘 이 시대의 '순수'란 방패 뒤에 숨으려는 '순진함'의 위험성, 아니 그 순진함을 이용하려는 음흉한 미소를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평에 대한 성경 속의 예증으로 제시된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대한 평가는 다른 관점을 발견하게 되어 자유로운 소통과 대화를 위해 생각을 나눕니다.

단지 이 토론이 김진호 목사님이 쓰신 로버트 박의 방북 사건이 갖는 시평에 대한 본말은 잃어버린 채 해석학 논쟁으로 치우치지 않기를 기대하며, 이 열린 토론이 성경을 이해하는 성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관점이 어떻게 서로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느헤미야나 에스라는 단지 순수하고 순진한 열정의 사람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국의 장관까지, 황제의 명을 받아 온 사람들이라면 만만치 않은 정치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철저한 페르시아 통치 철학의 집행자로서 볼 수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페르시아의 전략을 잘 이용하여 그 틈바구니에서 오랜 제국의 식민 통치 아래에 잃어버린 민족 정체성을 회복한 지혜로운 사람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진호 목사님의 깊은 의도와 생각은 분명코 이스라엘에 일어난 반사마리아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출발로서 나쁜 정치의 영향력을 오늘 본문을 통해 설명하시려고 하셨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구지배 세력을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규정하고,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순수한 생각 없는 무분별한 배타적 민족주의에 근거한 나쁜 정치로 보는 목사님의 견해에 동의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 에즈라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기도하는 장면 (출처 : http://breadsite.org)
앗수르와 바벨론의 식민 통치 전략 이해

항상 제국에 대한 저항의 주체 역할을 해온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도 세력인 이스라엘은 성가신 존재였습니다. 강력한 단일민족, 단일 종교 체제를 가진 이들에 대해 제국의 지도자들은 신경질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제국은 유대인들의 재기를 막고 저항성을 약화시키는 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단일민족, 단일종교의 성향을 없애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도 겪어왔던 문제였던 것처럼 단일민족의 특징을 깨뜨리는 것이 단일 종교적 특성을 깨뜨리는 도구로 인식되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며 강력한 혼혈, 혼합 정책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한 의도보다 식민통치 전략의 일환으로서 단일 종교에 기초한 해방 정신과 저항 정신을 약화시켜 독립을 추구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파악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착실한 식민지 백성으로 동화되는 현상을 낳았고, 저항은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남쪽도 바벨론에게 멸망했고, 이런 성향은 동일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도자급과 그 자녀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가서 바벨론의 박수와 무당이 되게 만드는 신학 교육과 창씨개명은 저항 의식을 일으킬 모든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초토화시켜버리는 시도였고, 그런 상태에서 이방 결혼의 권장은 더불어 이웃과 사는 것이라기보다 의도적 통치 전략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메대 바사 제국의 출현과 변화된 식민 통치 전략

신흥 세력으로 일어난 메대 바사 제국의 출현은 과거 앗수르와 바벨론이 해온 식민 통치 지역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바벨론을 함락한 불가사의한 신흥 제국인 메대 바사는 소수민족이었기에 역대 다른 제국과 통치 전략이 같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 민족의 고유한 종교와 민족성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해방자를 자처함으로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헤게모니 전략을 수렴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민족의 고유 종교를 회복하는 조치를 취하여 이 정신을 함께 지배 집단들을 포로 귀환시킴으로 새로운 제국의 질서를 재편하려고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비록 외국의 도움을 받은 미완이지만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해방의 기쁨을 모든 식민지들은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의 구지배 세력과 느헤미야를 보는 관점 차이

그렇다면 사마리아 지역에서 지속적인 방해 작업을 벌인 구지배 세력을 순수하게 얽히고설키며 살아간 민중 세력으로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저항 정신을 잃어버린 구식민지 통치 전략에 철저하게 순응된 반해방 기득권 세력으로 여겨집니다. 앗수르의 영향 속에 있었던 자들로서, 작고 보잘 것 없던 신진 세력인 페르시아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지배 권력은 바로 앗수르의 식민 정책의 순응으로 얻게 된 자리였기에 더더욱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더구나 페르시아가 해방자를 자처했기에. 그래서 구지배 세력들은 해방자로 자처하고 들어오는 느헤미야에게 반 페르시아적 태도를 보이며, 해방에 대한 저항과 반대 세력이 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구지배 세력인 사마리아 세력과 대립각을 세운 느헤미야를 과연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식민주의 공고화 세력과 해방 세력의 대립으로 보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해방을 빙자한 식민주의 전략을 페르시아도 가지고 있었기에 느헤미야를 절대 선으로 보자는 말은 아니지만, 구지배 세력인 사마리아 세력을 쉽게 '순수한 이웃을 형성해온 민중 수준'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페르시아도 소위 순수하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다른 세력이 그리스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페르시아 입장에서 자력으로 국경 지역을 관리하고 모든 바벨론 영향권을 포섭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페르시아는 이런 전력을 통해 모든 국경 식민지가 페르시아의 용병이 되어 소극적 '용병 방어'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친 페르시아적 태도로 그리스에 대해 자국 영토를 지키는 열정으로 '자국 방어'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의 성벽 재건 사업을 적극 지지함으로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는 win-win 전략을 사용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구 사마리아 세력은 분명코 친 그리스 세력의 위험성으로 비춰질 것도 분명한 일일 것입니다. 페르시아는 분명코 순수와 비순수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한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문제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정치적으로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정치적, 국제정세적 배경 속에서 일어나지만 이런 방식의 해방을 이스라엘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자력으로서가 아니라 외부세력의 도움으로 얻게 된 비록 미완의 해방이지만, 이것은 분명한 해방이었고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친 페르시아로서 해방과 민족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귀환했다고 봅니다. 비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 수준은 아니지만, 이승만 대통령처럼 친일 세력과 결탁한 것은 분명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와 사마리아 세력의 갈등은 자력해방이 아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족 해방 세력과 반해방 세력의 갈등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에스라의 가정 파괴에 대한 이해

물론 에스라의 종교적 인종적 순수를 위한 "가정 파괴 전략"에 대해서는 쉽지 않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비유로 본다면, 이것을 프랑스의 역사 청산과 궤적을 같이한다고 볼 수 없을까요? 우리가 한국의 역사적 친일파의 청산에 있어서 항상 반대 예로 드는 것은 프랑스의 독일에 붙었던 자들에 대한 분명한 청산 태도입니다. 이런 형태의 청산에 과도함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진호 목사님의 평가처럼 이것을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보신다면 이스라엘과 유대의 구 지배 세력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권력을 가진 자들 안에서 더 많이 일어난 혼합 결혼 상황은 이것이 얼마나 그들이 구제국 세력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는지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나 그런 사람들일수록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비록 외국의 도움으로 얻은 미완의 해방이지만, 분명한 청산을 시도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 한국의 식민 해방의 과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구지배 세력을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규정하고,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순수한 생각 없는 무분별한 배타적 민족주의에 근거한 나쁜 정치로 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에스라에서 나타나는 식민 세력과 해방 세력의 대립을 본다면, 비록 큰 논란을 함유하지만 특히 이방 결혼에 빠진 권력자들을 향한 "과도함"도 이해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목은 유대를 향한 것만이 아니라, 귀환 세력 자신들을 향한 동일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즉, 자신들도 바벨론 포로생활의 문제점을 같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굴러온 돌들이 박힌 돌을 괴롭히고 무장해제시키는 도구만이 아니라, 굴러 온 세력들까지 포함되어진 일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에스라의 조치는 귀환 세력들에게도 동일한 부담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 송병주 목사.
이처럼 이상의 상황을 종합할 때 에스라의 조치도 단순한 종교적 열정으로만 보기보다는 충분한 정치 질서 재편이라는 정치적 조치도 아우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에스라는 맹목적 종교적 열정에 빠졌다기보다는 자신의 이 조치가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충분히 정치적 함의를 띄고 있음을 잘 아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김진호 목사님께서 강조하신 의도는 이해가 갑니다. 이방 혼인이 일어나서 공존하게 된 배경에 대한 관심보다는 공존에 무게를 실으신 것이 저와 견해 차이의 발생 시점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반사마리아 혐오주의의 시작과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의의 씨앗을 보신 것은 아주 적절한 통찰입니다. 비록 다른 견해가 있지만, 서로의 생각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의 차이에 대한 의견 교환이 날카롭지만 유익하고 유쾌하길 기대합니다.

송병주 / LA 선한청지기교회

* 송병주 목사의 개인 블로그(http://hanada386.tistory.com/)에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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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02 2010-09-02 16:08:59
믿음이 그렇게 복잡한것일까?
일어난 사건과 표적, 징조들에만 관심을 갖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논쟁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칭 영적지도자들...
그것이 안식일을 범하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갖는 율법주의자들...

북한의 생명, 영혼들의 영혼이 더욱 우리가 바라봐야할 대상이 아닐까?
언제까지 "때"만을 기다릴것인가? 다죽고 나서,
아는 만큼 행하고 믿는 만큼 볼수있다. 그런데 우린 아는 만큼 말만 더많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