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 목사가 누구지?”, LA한인교회가 잊은 최초의 구약성경 번역자
“피터스 목사가 누구지?”, LA한인교회가 잊은 최초의 구약성경 번역자
  • 양재영
  • 승인 2017.12.08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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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박준서 교수,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설립...한인교계 동참 호소
LA 패서디나 소재의 마운틴 뷰 공용묘지에 있는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묘지(왼쪽)과 아르메니안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 묘지(오른쪽)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사진: 박준서 교수 제공)

[미주뉴스앤조이=양재영 기자] 최초로 구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의 재조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한국과 LA의 학계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한국명 피득, 1871∼1958) 목사는 최초로 구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인물이지만, 현재 그의 묘지는 LA 패서디나 인근 공용묘지에 방치된 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7월 패서디나 마운틴뷰 공용묘지(Mountain View Cemetery)에 안장되어 있음을 직접 찾아내고 방문했으나 찾는 이 없이 방치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박 교수는 “LA의 많은 한인교회들의 목사들이 피터스 목사를 알지도 못했다”라며 “성경없는 한국교회는 생각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최초로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주신 피터스 목사님을 한국교회가 이렇게 대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두 번째 부인 에바 필드 여사, 두 아들과 찍은 가족 사진(오른쪽 사진).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1871년 유대인으로 러시아에서 출생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는 1895년 권서인(勸書人)로서 한국에 입국했다. 3년여간 한국어를 읽힌 피터스 목사는 1897년부터 시편 번역을 착수하여 1898년 62편의 시편을 번역하여 <시편 촬요>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구약성서를 번역했다.

이후 맥코믹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02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성서 개역에 참여했으며, 1937년 구약성서 완성에 공헌했다. 그는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찬송가의 작사자이기도 하며, 서울에 강남구 세곡교회 등 10여개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1941년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와 1958년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풀러신학교에서 연구교수 생활을 했던 박준서 교수는 한국교회가 피터스 목사에 대한 관심을 회복해야 하기위한 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기념사업회는 현재 공용묘지에 세울 기념비 제작과 풀러신학교 주최의 피터스 목사 기념강좌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박 교수는 “피터 목사의 묘지에 가본 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계와 학계가 힘을 모아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를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목사님들 중에서 저를 향해 구약교수가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교수님 책임도 크다고 말하는 분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든지 피터스 목사님을 한국사회와 교계에 알리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일을 해야되겠다고 결심했다. 묘지가 LA지역에 있는 만큼 LA지역 한인교회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며 LA지역 미주 한인교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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