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맘몬 숭배'가 배태한 '삼성숭배교'
한국 사회의 '맘몬 숭배'가 배태한 '삼성숭배교'
  • 김회권
  • 승인 2010.04.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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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삼성숭배교'에 맞설 예언자적 지식인이 절실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국토 훼손에 착수했고, 언론 장악 및 검찰과 사법부 장악 시도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쉼 없이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사장 및 이사장의 인사권을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한 결과, 공영방송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모든 기사들을 외면하고 올림픽 경기, 범죄 현장에 대한 도가 넘는 선정적인 취재 및 보도 등에 몰입해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더 나아가 여러 가지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려 야당과 비판적인 시민들의 전열을 흩트려 놓고 전 국민의 탈정치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땅의 가난한 시민들을 폭압적으로 다루고도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법이 거의 없다. 태안 앞바다 유조선 충돌로 생업의 터를 잃은 어민들이 부르짖어도, 용산 재개발 지역 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철거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에게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와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운하 사업의 추진 가능성이 막히자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꾼 참혹한 대토목공사를 벌이는 정부의 무리하고도 강압적인 일 방식 앞에 양식 있는 국민들은 민주주의 역사가 급격히 후진하고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인다. 그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외골수로 자기 길을 가며 국토를 불가역적으로 훼손해 가는 정부를 보면 탄식과 불안은 깊어 간다.

그러나 이런 명시적인 실정 외에도 이명박 정부가 끼친 더 지속적인 폐해는 몰윤리적 금권숭배, 물신 숭배 풍토를 전 국민적으로 확산시킨 일이다. 경제 성장과 부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을 등에 업고 등장한 이 정부는 한 나라의 근본인 공평과 정의의 토대를 무너뜨릴 기세를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라의 근본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국민에 대한 친절과 배려, 돌봄임과 동시에 불법적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떨치는, 범람하는 권력 계층들을 공명정대함으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적은 복지 예산을 갖고 있는 주제에 그 작은 복지 예산마저 삭감하고 강한 자 중심의 국가 운영에 전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정부는 지난 연말에 이건희 삼성 회장만을 단독으로 사면했다. 이건희는 여러 가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년도 안 되어 사면된 것이다. 이건희의 사면에 의혹의 시선을 보낸 국민들에게 그 사면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청와대 당국자는 삼성의 평창올림픽 유치 지원이나 삼성의 세종 시 입주 및 투자를 암시적으로 요구하는 논평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삼성이 갖는 경제력을 믿고 정의감과 법적인 형평의 원칙을 아주 손쉽게 내팽개쳐 버렸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어떤 가치와도 다툴 수 없는 초월적 신성 구역에 존재하는 일종의 종교적 성소처럼 보인다. 삼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한 국민의 민족정신과 얼의 집결체요 삼성의 성취는 현대 한 국민의 국가적 성취의 집약물이라는 생각이 많은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이 이룬 모든 것, 그것은 50여 년 전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루고자 했던 바로 그 꿈이었다고 보는 통속적인 국민 감정을 호소하여 삼성을 비호한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정부의 사면은 돈만 있으면 정의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국민에게 심어줌으로써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 둘 사이에 있는 모순의 괴이함을 전혀 감지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정희식 조국 근대화와 '잘 살아보세'의 귀착지, 삼성

▲ 삼성이 겉으로는 국가대표급 기업이지만 우리 사회의 근본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극히 반공동체적인 암적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출처 : 위키피디아)
삼성과 같은 재벌 그룹은 엄격하게 말하면 특정 기업가 가문이 키운 순수 사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관치금융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의 각종 지원과 특혜 속에 성장했다. 그것은 “5000년 가난을 떨쳐보자”며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부가 양육한 기업이며 사주 기업가 가문의 창의 경영이나 공세적인 기술 개발로서만 아니라 온갖 악조건에 저임금을 참고 불리한 노동 여건을 견뎌가며 일해 준 직원들과 삼성에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들, 중소기업에 속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일어선 기업이기도 하다.

삼성은 결국 우리 조국의 슬픈 근대화 역사에서 태어난 한국민의 정신적 열망의 집약적 외화물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민주주의 가치와 물질적 번영과 부에 대한 추구가 각축하는 전장이었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후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경제 성장과 번영을 위해 모든 국가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정의와 평등, 자유와 안식권을 포기했다.

이런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향한 질주는 박정희 군사 정권 이래 권력과 견고한 동맹을 맺어온 전근대적인 재벌 기업들에 의해 추동되었다. 그 한복판에 삼성이 있다. 삼성은 국민 기업이 아닌 다국적 자본들에 의해 움직이는 다국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성이 대한민국의 국민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기실 알고 보면 4%의 지분을 갖고 있는 창업 주 가족들의 출자순환이라는 독특한 제도와, 얼마 전까지 존치되었던 그룹기획구조본부실이라는 기관의 음험한 기업 공학적 경영을 통해 전체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세습왕조적인 기업(dynastic enterprise)이다. 세습왕조라는 틀 때문에 그 내부에서 어떤 비리가 자행되어도 공개적인 비판과 감시를 받지 않으며 공식 회계 장부에는 드러나지 않는 천문학적 비자금을 운영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으려고 삼성은 그 비자금을 갖고 정부 기관, 고위 공무원, 검찰의 기소권, 법관의 판결, 지식인의 날카로운 펜, 언론, 그리고 종교적 양심까지 매수한다. 비자금의 힘으로 사로잡고 아우르고 거느리고 마침내 지배하는 일종의 신적인 영향력을 무소불위로 행사하는 신성한 지휘부로 올라선 것이다. 
   
이 세습왕조적 재벌 그룹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과 반도체 등 주력 기업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총생산 22%를 담당하는 국가대표급 기업, 삼성반도체나 전자 제품을 통해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제고하는 국가대표급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삼성의 불의와 불법을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세계를 상대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무역으로 외화를 획득하여 국부를 증가시켰고 한국 경제의 파이를 늘린 선구자적인 기상을 과시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7년 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전 삼성구조본 소속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3대 죄악을 폭로하고 고발했다. 사제단과 김용철이 밝힌 삼성의 죄악은 첫째,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과 탈세를 위한 회계 조작, 둘째 용인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수를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및 법정 증거 조작, 셋째, 정관계·학계·법조계·종교계·언론계를 대상으로 한 로비를 통한 양심 매수 행위다.

정치권은 삼성 비리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을 임명했으나 특검은 도리어 삼성에 면죄부를 주는 지극히 미약한 기소로 종결되었다. 약 2년 이상 끌다가 작년 연말에 이뤄진 삼성 불법 승계 관련 일반 재판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고, 정부는 급기야 이건희를 작년 성탄절 단독사면으로 기업 일선에 복귀시켰다. 이건희 복귀는 세종 시 기업유치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써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이뤄진 거래라는 것이 언론과 시민들의 판단이었다.
   
삼성은 이른바 떡값 검사 파동에서 밝혀진 것처럼 검찰에 엄청난 양의 돈을 뿌려 장학생들을 키우고 있으며 <중앙일보>를 통해 언론계로부터 오는 간헐적인 공격을 막아낼 방어진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고급호텔 숙박권으로 사람들을 매수하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장면도 나온다. 삼성은 한국의 지휘부를 돈으로 매수하여 지배한다.

그 결과 삼성의 가족으로 입적된 사람들은 보편적인 공익이나 대의가 아니라 삼성 기업의 사적 이익에 우선 복무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지휘부·언론·지식인·사법부 모두가 삼성 앞에서는 작아진다. 일반 국민들도 삼성의 경제적 위력이 내뿜는 아우라에 의해 삼성 숭배에 쉽게 빠져든다. 삼성은 도덕·윤리·정의·인권가치 등을 삼켜버리는 무저갱이며, 부·풍요·국가적 자부심·국가주의의 상징이다.
 
삼성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타운 본관. (출처 : 위키피디아)
전 삼성그룹 구조기획본부의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를 읽어보면, 삼성 문제가 단지 정치와 경제 영역의 일탈이나 불법이라는 단순한 악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정밀한 신학적 성찰을 요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삼성의 경영지휘부는 로마제국의 멸망기에 나타나는 흥청망청한 부패한 귀족들과 달리, 아주 영악하게 깨어 끊임없이 정복지를 찾아나서는 민첩성과 공격성으로 잘 무장되어 있다.

분별력을 잃고 유흥과 쾌락에 탐닉하여 자기 파멸로 치닫는 명백한 악이 아니라, 작은 일에는 선을 도모하면서 더 큰 악을 범하는 교묘하게 위장된 악이다. 스스로도 자기가 하는 일들이 악임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삼성 지휘부는 확신에 차 판사를 30억으로 매수할 생각을 하고 국회의원에게 돈다발을 갖다 줄 생각을 스스럼없이 실행한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모든 중요한 요소에 자기들의 에이전트(대리자)를 심어둔 거대한 왕국인 것이다. 대형 법률회사를 능가하는 300명 이상의 변호사들을 거느리고 국가 정보기관에 비해 손색이 없는 정보망을 구축한 경제연구소와 비선 정보 구축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의식 있는 시민들은 삼성 문제를 알지만 그 위세에 눌려 무력감 속에 방치하거나 외면해 왔다. 삼성의 문제에 문제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김용철 변호사는 이 책을 통해 삼성의 조직적 비리를 폭로하고 삼성이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이건희 일가의 자기보존을 위한 원색적인 금권정치공학에 관한 이야기이며 무슨 이유인지 삼성의 쟁송을 분별 있게 다룰 능력을 박탈당한 무능한 검찰과 사법부 이야기이고,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언론의 이야기다. 그는 책에서, 삼성이 이렇게 큰 죄악들에 연루된 기업이면서도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라는 물신을 위해 오늘날 모든 가치를 뒤로 미루는 이른바 국민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86쪽). 떡값 검사나 기자들, 학자들도 이런 국민 정서의 뒤에 숨어 삼성비리를 은닉하거나 모른 체한다고 볼 수 있다. 김용철이 이 책에서 부각시킨 삼성 비리 중 하나는 삼성 왕조의 경영권 세습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증언이다.
 
이 책이 폭로하는 또 하나의 삼성의 대국민 위장 비리는 <중앙일보>의 삼성 계열 분리 선언 책동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99년에 <중앙일보>는 삼성으로부터 계열 분리하겠다고 대국민선언을 하지만 그것은 음험한 거짓 술책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앙일보>의 삼성 계열 분리는 위장이었고, <중앙일보> 편집국 내부 정보 보고가 하루 두 차례씩 삼성 구조본에 전달되었다”고 폭로했다. 
  

▲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담은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또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한다.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면 어떻게 되는지 전 삼성노조 위원장 ‘김성환’의 고난에 찬 인생 역정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직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공무원의 철저한 매수로 인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왜 삼성은 노조를 무서워할까? 삼성 직원들의 급료가 다른 회사들의 급료보다 월등이 높다는 사실을 보면, 삼성의 노조 포비아의 원인은 임금 협상 때문이 아니라 딴 데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비자금 경영, 불투명 경영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노조는 너무 투명한 공조직이라서 뇌물로 매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노조가 있다면 이건희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자기 아들에게 삼성그룹 전체를 넘겨주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불법적 경영권 승계 행위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한 회사의 노조는 단지 임금 협상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기업의 공적인 본질을 지키려는 기업 자체의 자기 검증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은 자기반성과 점검을 수행할 기관이 없는 윤리와 도덕의 사각지대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성취해 온 것이다. 삼성은 돈의 신적 위력을 가장 신실하게 신봉하는 물신 숭배교종단인 것이다. '돈이 충성을 낳는다'는 삼성식 보상 원칙은 종교적 구원론처럼 잘 작동하고 있다. 실적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삼성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직원들에게 뿌듯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심어준다. 이것은 삼성 숭배자가 누리는 일종의 유사구원감인 것이다(참조. 마 6:22~24). 
  
이처럼 돈에 위력에 토대를 둔 삼성의 금권숭배적 구원관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 더러는 삼성 비자금을 한국 기업의 특수 상황에 비추어 설명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다국적 기업 삼성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비책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비자금은 단지 회장 개인이나 가문의 축재의 일환이 아니라 기업으로서의 자기 존속을 영속화하려는 비책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 자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와중에서 여차하면 몰락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고도의 기업경영 방식의 일환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삼성의 비자금 의존적인 기업 유지나 확장 노선이 그 안에 엄청난 반기업적 불의와 죄악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건희가 운용한다고 알려진 비자금 4조 5,000억 원은 대부분 사원들과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임금,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금, 고객들이 맡겨둔 보험금 등에서 갈취한 자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자금은 횡령과 배임을 통해 생긴 돈인 셈이다. 엄연히 주식회사인 삼성이 주주들과 사원들을 오랫동안 속인 결과 그렇게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용철의 책에서 밝혀졌듯이, 삼성의 비자금은 불투명하고 어두운 용처를 위해 비축되었던 돈이다. 지식인, 언론인, 공무원, 그리고 법조인의 영혼을 사는 데 뇌물로 사용된 돈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 50위권 대기업이 비자금을 갖고 대한민국의 양심을 매수하고 자기 이익에 복무하도록 역사한다는 사실은 무섭고도 서글픈 일이다. 결론적으로, 김용철은 삼성 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임이며 그 비자금의 용처는 인격(영혼) 매수임을 분명하게 밝힌다(346쪽).

대한민국 국민의 물신 숭배가 바로 삼성 숭배교의 발상지

19세기 미국의 기독교정치 사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서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전 국민적 존경도 누리는 권력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권력자가 타락한 자라면 국민의 도덕성도 함께 타락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라고 말한다.

삼성 이건희를 존경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민 기업가로 추켜세우며, 엄중한 죄를 짓고 유죄 판결을 받은 지 1년도 안된 사람에게 사면을 단행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성이 덩달아 급격하게 타락하게 된다. 삼성이 겉으로는 국가대표급 기업이지만 우리 사회의 근본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극히 반공동체적인 암적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박 정부와 삼성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맘몬 숭배(Mammonism)라는 한 배에서 태어난, 쌍생아(雙生兒)처럼 제휴하여 국민성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숭배하고 성공과 쾌락을 갈망한다. 삼성과 이명박 정부, 돈을 숭배하고 수단 방법을 불문하며 성공과 쾌락을 타락한 국민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당기는 동맹자들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삼성,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우리 국민들, 우리 자신들의 타락한 인간성, 뒤틀리고 왜곡된 기독교신앙을 문제 삼는 행위임이 드러낸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경배하는 것이 물신 숭배다. 이 물신 숭배의 근본은 구매력, 욕망 충족력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욕망이다. 돈 숭배는 결국 영적 존재가 자기의 욕망을 신격화하고 무한히 확장하려는 데서 생겨난다. 자기의 안전과 영원한 존속 욕구를 신격화하는 것이다. 삼성 자체가 비자금을 비축하는 이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안정욕구의 신격화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물신 숭배는 조직이나 기업의 멸망을 가속화시키는 원천이다. 한 기업의 영속적 존속은 비자금에 의해 가능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공평과 정의를 보좌로 삼는 하나님나라와 견고한 동맹을 맺음으로써 성취되지 돈을 통한 권력 매수, 양심 매수를 통해 결코 성취될 수는 없다. 또한 가난과 불편을 견디는 능력이 있다면 ‘돈 숭배교’에 빠지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물신 숭배의 본거지인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그리는 묵시록이다. 여기서  두 번씩이나 “무너졌도다”라는 선고를 받은 나라는 큰 성 바벨론이다.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본거지며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동굴이라고 불린다(2절), 바벨론은 땅의 왕들과 음행하여 정절을 더럽힌 음행의 대가로 받은 부로 땅의 상인들(23절에 따르면 왕족들)을 치부케 했다는 명성을 들었다(3절).

그러나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 바 되었다(5절). 음녀 바벨론은 땅의 상인들로부터 온갖 상품을 사들였는데 그 상품 목록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 상품들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었다(12~13절). 사람들의 목숨, 영혼, 인격이 바벨론이 매입한 상품이었다. 이 구절은 바벨론이 인격과 영혼을 매입해 노예 무역을 했다는 말로 이해된다. 동시에 그것은 바벨론체제에 저항하는 의인들의 목숨을 빼앗는 살상 행위를 함의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음녀 바벨론 중에서 발견되었다(24절). 바벨론은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외치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죽이고 부를 탐하고 축재하고 사치와 번영을 누린 도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성 바벨론을 하나님께서는 파괴시킴으로서 심판하셨다(20절; 계 14:4~5, 8). 음녀 바벨론은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으로서(14:15~18)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대변하는 예언자들과 성도들을 죽여버림으로써 방해받지 않고 얻은 부로 자기영화화, 자기영속화를 꾀하며 땅의 왕들과 견고한 동맹을 이루었으나, 하나님은 홀연히 그 바벨론을 파멸시켜 버렸다. 사람들의 영혼까지 매수하여 노예화하는 음녀 바벨론을 하나님은 처참하게 심판하셨고 파멸의 바다로 집어던지셨다.

이것이 물신 숭배자의 말로다. 물신 숭배의 본거지 음녀 바벨론은 자신이 범한 죄악과 음행의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영원히 번영할 것 같은 부를 손에 넣었으나 홀연히 망한다. 돈의 힘으로 영혼을 사들이고 국가 기관의 양심을 통째로 매수하는 재벌 기업의 불법 행위와, 가난한 자들이 내지르는 아우성에 전혀 응답이 없는 불의한 정부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홀연히 망하는 운명이 엄습한다는 것이다.

삼성 숭배 마법 깨울 예언자적 사명자

삼성 숭배의 마법에서 국민을 깨워야 할 사명자로서의 예언자적 지식인의 분발을 기대하며 장 폴 사르트르(<지식인을 위한 변명>)와 에드워드 사이드(<권력과 지식인>)에 따르면, 지식인의 핵심 조건은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거부하는 비판 정신이다. 특히 사이드는 지성인은 언제나 자신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분명하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절대적으로 권력에 흡수 고용되지 않고 언제나 주변에 머물러야 하며 어떤 권력이나 권위라도 그들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들 만큼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장한다.

사이드는 지성인들은 애국적 민족주의와 집단적 사고, 그리고 계급적·인종적·성적인 특권의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며, 보편적 진리를 확산하기 위하여 특정 인간들을 특권적으로 우대하는 안이한 확신들을 초월하기 위해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의 사명을 수행할 용기는 인간 스스로에게서 연원될 수 없다. 하나님의 절대적 구원을 경험한 지식인들만이 이런 의미의 고독한 그러나 보편적인 지식인의 기개를 획득할 수 있다. 
   

▲ 김회권 목사.
현대 사회는 점차로 기업체, 국가 기관, 정당 등의 권력에 고용된 유기적인 지식인들로 가득 차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주장을 각종 논리와 통계와 전통적 지혜의 이름으로 주창하고 있다. 이런 지식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지식인의 구원은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영적 개안을 의미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계급, 국가적 기업적 특권으로부터의 창조적 탈출을 통해 보편적인 진리를 설파하는 사명인으로 거듭나는 경험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폐쇄적이고 자기복무적인 삼성 같은 조직체들로 가득 차 있다. 당파적 이익을 초월하는 진리를 말하는 의인들이 씨가 말라가고 있다. 모두 다 정신적으로 삼성지향적인 기생적인 인간형으로 변질되어 간다. 물신 숭배적 자기 조직 존숭에서 벗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무한증식적 자기확장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예언자적인 지식인이 더없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런 예언자적 지식인은 삼성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국가 기관에서도, 다른 기업체들에서도, 그리고 세속화되어 짠맛을 잃어버린 교회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김회권 / <복음과상황> 발행인, 숭실대 기독학과 교수

<기독교 사상> 4월호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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