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의는 비복음적인가?
사회 정의는 비복음적인가?
  • 신기성
  • 승인 2018.09.09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뉴스앤조이=신기성 기자]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와 익명의 고위 공직자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으로 워싱턴 정가가 혼란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즈에 글을 보낸 사람을 반역자라고 칭하며 찾아내라고 성화다. 단순히 고위 공무원 정도가 아니라 팬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까지 용의 선상에 올라있다. 남미의 한 도박사이트에서는 팬스 부통령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는 뉴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이번 11월 중간선거에 그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하원을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이 하원을 빼앗길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있는 가운데 이번 주 들어 처음으로 상원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혼란스러운 중에 오바마 전대통령은 지난 7일 일리노이 대학교에서의 연설을 통해 현정부의 ‘공포와 분노 정치’에 대해 비판했다. 후임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삼가던 전대통령의 관례를 따르던 그가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인들이 지난 수년간 부추겨왔던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이는 이미 미국 사회의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고도 했다.

CBS 뉴스가 전한 1시간 남짓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기억에 남은 장면 중 하나는 스스로를 ‘특권층’이라고 규정한 대목이었다. 그는 우리처럼 특혜를 받은 사람들(the privileged)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는 적어도 아픈 사람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수자, 약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주에 운전하다 앞에 서있는 픽업트럭의 트럼프 지지 스티커 옆에 “부는 나눠주는 게 아니야. 스스로 버는 거지(We don't redistribute wealth. You earn it)”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것을 봤다. 공공복지 축소와 부자 감세를 찬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든 자수성가 했든 자신들이 가진 부를 남들에게 나눠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돈 필요하면 직접 벌어!” 이런 메시지다. 공평한 것 같지만 이미 획득한 특권을 계속 누리겠다는 의미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가장자리에 위태하게 걸려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기어올라야 한다.

복음과 정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떤 기독교인들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을 이단적이라 규정한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는 성서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이유다.

이번 주에 일련의 기독교인들이 “사회정의와 복음에 관한 성명서(The Statement on Social Justice and the Gospel)”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를 주도한 사람은 최근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사회 정의의 위험에 관해 경고했던 존 맥아더 목사이다. 그는 사회 정의를 복음의 혼란 혹은 방해로 정의한다.

그들이 발표한 총 16개 항목 중 몇 가지만 인용해 보자.

보완적 성역할

...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각기 다른 특성과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차이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결혼 생활과 교회에서 보다 분명히 규정된다.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를 이끌고,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법이 허용하는 한 모든 면에서 순종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자격을 갖춘 남성만이 목사, 장로, 감독이 될 수 있고 전체 회중을 가르치거나 그들에게 설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남녀가 각각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된 역할에 복종할 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아름답고 충만히 표현된다고 믿는다. ...

남녀가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전제를 달지만 내용은 지극히 그리고 여전히 성차별 적이다. 여성은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리더의 위치에 서서는 안 된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성명이 왜 또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문화

... 특정 문화가 세계관 등에 관해 성서의 진리를 드러냄으로써 다른 문화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특정한 문화의 요소들은 장려되고 촉진되어야 한다. ...

과연 성서의 진리를 드러낸다는 특정 문화는 누가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일까? 어떤 문화가 권장되어야 하는 걸까? 오랜 동안 성서 해석과 가르침을 독점해 왔던 백인 중심의 서양 문화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 전통은 유럽과 미주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신앙과 신학에도 뿌리 깊게 배어 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임을 고백한다면 각기 다른 문화와 인종과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

인종/ 민족

... 인종은 성경에 나오는 구분이 아니며 우월과 열등의 개념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사회적 개념이다. ... 우리는 자신의 인종을 억압하는 특권층이나 혹은 억압받는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이지만 억압이나 피억압에 관한 감정은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불의한 행위나 억압 혹은 편견 등에 대해 유죄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인종 평등을 주장하는 듯하나 사실 아직도 인종간 차별과 억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된다. 누군가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 사람들을 억압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죄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불의를 불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바마 전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치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 성명서에는 존 맥아더 목사를 포함해 약 5,0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권 내려놓기로서의 정의

성명서의 내용 중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주장만을 요약하자면, 성별에 따른 역할 규정에서는 남성의 특권을 포기하지 못한다. 문화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서양이 이루어 놓은 물질문명과 문화가 성서적이고 다른 문화들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의식을 담고 있다. 인종과 민족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억압과 학대에 고통 받는 사람들, 민족들,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존 맥아더 목사가 복음주의권에서 얼마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미국 기독교 기득권층의 전체적인 신학적 성향은 위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전대통령은 특권층이 맞다. 미합중국 대통령까지 올랐으니 특권 중에서도 최고의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도 인종차별의 아픔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재임 중에도 차별적 언사를 당했었다. 그는 인종차별을 비롯한 다방면의 부정의를 비판하며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다함께 불의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가진 것을 나눠줘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정의에 관한 문제는 복잡한 측면이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빈부격차는 한 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가정에서는 성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백인들로부터 인종차별적 말을 듣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른 인종이나 민족을 무시했던 적은 없을까? 나보다 더 가난하거나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을 경시하지는 않았을까?

모든 영역에서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내려놓는 경우가 별로 없다. 사회적 약자들이 저항하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약자들의 저항과 연대가 성서적이고 정의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가르침에 저항하고 불의를 향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복음적이다. 바로 이 복음(gospel)을 소위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이 외면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