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교회는 백인들만의 것인가?
이머징 교회는 백인들만의 것인가?
  • 김성회
  • 승인 2010.06.08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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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서구 중심의 이머징 교회의 허상

<소저너스>가 다룬 이머징 교회 특집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전문을 번역 게재한다. 이 글은 <The Next Evangelicalism>의 저자이자, 노스파크신학대학에서 교회 성장학을 가르치고 있는 라승찬 교수와 노스파크신학교에 재학 중인 제이슨 마흐 씨가 작성했다. 이번 글에 대한 이머징 교회 운동 일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줄리 클러슨, 브라이언 맥클라렌, 데비 블루)의 의견은 별도로 실을 예정이다.(역자 주)


나(라승찬 교수)는 21세기가 시작되고 나서 곳곳에서 이머징 교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머징 교회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이머징 교회라는 것이 베이비부머 세대의 신학과 목회를 반영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머징 교회라는 것은 특히나 서구 기독교가 새로 대두되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맥락에서 자신의 위치를 짚어보려는 노력인 것이다.

백인 남자가 독식해버린 이머징 교회의 얼굴

이머징 교회가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보스턴에서 도심 다인종 목회를 하고 있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컨퍼런스에서 이머징 교회가 주제로 등장했던 시절이었다. 그중 일부 컨퍼런스에 참가해보니 이머징 교회를 대표한다는 모든 강사들은 백인 남성이었다. 이머징 교회 운동이라는 것이 백인 커뮤니티에 국한된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머징 교회의 세미나를 다니던 중 한 번은 아예 이머징 교회와 관련해서 유의미한 활동을 하는 유색인종은 없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다시는 없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이머징 교회가 소수인종에게는 문이 열린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교회 미래에 대한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강사가 멋진 안경과 옷차림을 한 29살 된 자신감 충만한 백인 남자를 단상으로 불러내 이머징 교회의 얼굴이라는 선언을 하는 광경을 보게 됐다. "이 사람이 미국 기독교의 미래를 대표하게 될 얼굴입니다." 나는 질려버렸다. 백인 남자들이 이머징 교회를 대표하는 얼굴을 독식해버린 것이다. The Who의 노래 가사 "새로 온 사장을 만나보니 예전 사장이나 매한가지네"처럼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이다.

젊고 쿨한 백인 중산층 교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이머징 교회

▲ 소저너스 5월호 표지. (출처 : 소저너스 웹사이트)
라승찬 교수가 <The Next Evangelicalism>을 쓰고 있을 때 그는 나에게(제이슨) 몇 몇 이머징 교회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라고 했다. 대다수의 이머징 교회의 목회자들은 20~30대의 백인들이었다. 목회자의 사진들은 멋진 셔츠에 스타일리쉬한 머리를 하고 패셔너블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머징 교회 운동이 먹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타일을 중시하는 백인 청년층이라면, 그들끼리 이머징 교회를 하게 두면 되지 않는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내가 계속 이머징 교회에 대해서 연구하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이란 것은 내가 백인 동네에서 교회를 다니며 '이것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신앙생활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갈구하던 시절의 안타까움이었다. 내가 처음 이머징 교회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동체에 모이는 것이 바로 그 교회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머징 교회에 대한 호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점차 사라져갔다.

이머징 교회의 핵심이라는 것이 내가 자라면서 겪어온 교회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 핵심은 젊고 쿨한 백인 중산층과 상류층들의 가치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머징 교회라는 것이 결국 우리 아버지 세대가 만들었던 근대사회 교회의 판박이 꼴이라는 것이다.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이머징 교회 운동

우리(라승찬과 제이슨)는 각자가 처한 문화적 맥락에서 지금 소개되고 있는 기독교의 미래상이라는 것이 교회가 변하고 있는 폭의 아주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변화라는 것이 단순히 서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차원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 간과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문제의 한 부분은 용어 정리였다. 이머징 교회라는 것이 서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대교체에 관한 모든 논의를 담고 있는 교회인 것처럼 소개되어왔다. 몇 몇 이머징 교회 목회자들이 회원을 모으고 웹사이트를 열었는데 이것이 "Emergent" 혹은 "이머전트 빌리지 (Emergent Village)"라는 브랜드로 소개되어 온 것이다. 언론은 이머징 교회를 소개하면서 대형 출판사가 찍어낸 "Emergent Village"의 책 세 권에 편향된 보도를 해왔다.

<The Next Evangelicalism>에 소개된 대로 2000년도에 미국과 영국을 통틀어 이머징 교회라 부를만한 것이 200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머징 교회라는 주제로 소개된 책은 50여 권이나 됐다. 반면에 아시안 아메리칸 2세들의 교회는 700여 개나 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개하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았다.

최근 서구 사회 일각에서는 "이머징 교회는 죽었다"는 선언마저 나와 혼란을 더하고 있다. 일례로 2010년 1월에 한 블로거가 이머징 교회의 부고를 알리는 사건이 있었다. 부고에는 이머징 교회가 이룬 수많은 진전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이머징 교회를 통해 교회가 이룬 발전으로는 문신, 공정무역 커피, 초, 예배당에 소파 놓기,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 토론, 맥주, 애플컴퓨터 사용하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블로거는 매우 뼈있는 농담을 던진 것이다. 이머징 교회의 죽음에 대한 선언마저도 서구 사회식의 표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머징 교회가 백인들만을 위한 교회라는 전제 하에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도 백인의 기준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 블로거가 이머징 교회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묘사하는 것도 "여성 이슈, 성 정체성에 대한 토론, 환경주의, 반 근본주의, 사회정의" 등이다. 이것도 역시 서구 사회의 주요 주제인 것이다.

이머징 교회라는 뜻의 정의를 이해하기 힘든 또 다른 예는 그 블로거의 대문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역사는 2009년을 이머징 교회 운동이 성숙기로 접어든 해라고 기억할 것이다"고 했다. 역사가 서구 국가들에게 그 중심의 장을 내준다는 말이다. 그 뒤 문장을 보면 "앞으로 몇 해간 이머징 교회 운동의 여러 갈래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2010년에 벌어질 이머징 교회 최대 이벤트는 브라질에서 열릴 것이고 참가자의 대부분은 중남미 사람들이 될 것이다"라고 돼있다. 이머징 교회의 흐름이 다른 곳에서 부흥하고 있다면, 왜 그는 이머징 교회 운동 전체가 죽었다고 선언했을까?

이머징 교회라는 게 사실 더 넓은 의미에서 교회 갱신 운동을 대변하는 의미로 사용돼야 한다. 그 의미가 지역과 세계 양 측의 다양성과 다인종 교회를 동시에 포괄하는 형태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머징 교회라는 용어는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에 의한 담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자 간의 균형을 찾아서

우리는 이머전트 빌리지(Emergent Village)에 속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정말 이머징 교회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머징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이머징 교회가 제시해야 하는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이머전트 빌리지(Emergent Village)의 참여자들은 모두 '이머징 교회는 죽지 않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인터뷰에 응했다. Metro Atlanta Emergent Cohort와 일했던 데이비드 박과 이머전트 빌리지의 간사 그룹 출신의 안토니 스미스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만약에 이머징 교회가 죽었다고 한다면, 그 죽은 것은 기독교 출판 산업이 부추겼던 새로움, 자극, 상업화다라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박은 "기독교 출판 산업이 이머징 교회를 굉장히 띄워줬다"고 했다. 레베카 시나몬 머피(Chicagoland Emergent cohort 공동 운영자)는 "이머징 교회에는 특별한 인물들이 몇 있었는데 이들을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기독교 출판 산업이었다"고 말했다. 레베카 씨에 의하면 이러한 출판 업계의 편향적 움직임 때문에 교회 변화를 위해 출판 매체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통로가 거의 막히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매체로부터의 소외는 오히려 이득이 됐다고 본다는 데이비드 박은 "이러한 무관심이 이머징 교회로 하여금 일 중심의 운영으로 체질 개선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했다.

시나몬 머피와 줄리 클러슨 등 이머전트 빌리지 임원회는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큰 변화들, 교회 갱신이라는 맥락에서의 변화 등에 대해 언급했다. 시나몬 머피는 "대형 교회의 담론은 신앙 중심 구조에서 관계 중심 구조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시나몬 머피의 관점으로 보자면 단지 특권층을 위한 이머징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해방 되고 진정한 변화를 불러올 이머징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클러슨의 말마따나 이머징 교회가 "쿨하고, 재미있고 유행에 민감한" 것의 집중에서 벗어나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깨닫는 가운데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머징 교회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잘 해나가고 있다면, 다음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종 간 화해라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머전트 빌리지 (Emergent Village) 운영회의 멜빈 브레이는 이머징 교회가 움직여야 할 방향이 "폭 넓은 목소리가 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머징 교회가 주변화 된 사람들의 매개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이머징 교회가 "과거 식민지 운영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토착 종교의 말살에 복무했던 서구 문명 중심의 신학"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토니 스미스는 인종 간의 화해에 대해서 말하려면 먼저 인종 간의 다양성과 인종 정의(正義)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소수 인종을 예배에서 한 자리 주거나 당회원으로 발탁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교회가 마치 다양성을 보장하는 곳인 것처럼 표면적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긴 하겠지만, 땜질 처방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머징 교회는 스미스가 표현한대로 "인종 문제에 대한 참회(racial penance)"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 간의 진정한 정의 확립을 위해 "서구, 백인 중심의 속박을 풀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참회라는 것이다. 스미스는 "회개를 위해서는 우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소외"라고 말했다.

이러한 콘셉트가 소통되는 것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앨리스 배리모어 목사(에마우스커뮤니티교회)도 자신의 교회를 이머징 교회라 정의한다. 앨리스 목사는 "이머징 교회가 신세대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와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인종 간 화해와 정의 확립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특히 흑인 교회 등 인종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소수 인종 교회에서는 더욱 깊은 관심이 요구 된다.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이러한 교회들이 새로운 언어와 도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클라우슨의 말처럼 "그 아이디어들이 해당 언어 구사자들에게 번역되지 않아서 함께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이머징 교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발전과 영적 성장에 장벽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머징 교회의 미래는?

이머징 교회 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이머징 교회가 앞으로 더 인종적 다양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교회 갱신 운동 내부의 관점의 변화가 있었나? 이머징 교회를 이끄는 주요 멤버들의 퇴장이 최근 자주 있었다. 이러한 인물들의 퇴장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이머전트 빌리지의 정체성 확립을 주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 백인 남성 중심의 이머징 교회가 쇠퇴해 가는 것이 틀림없다면, 교회 갱신 운동이 좀 더 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이머징 교회의 한 부분이 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이머징 교회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살아남으려면 그 의미는 재해석 되어야 하고 현재 사용되는 좁은 의미에서 해방돼야 한다.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

이 신생 이머징 교회가 다만 미국 기독교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세계를 향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더 넓은 차원의 맥락에서 접근되어야만 한다. 진정한 이머징 교회는 세계적인 교회이며 다인종 교회여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적이어야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성을 보장해야만 진정 깊고 의미 있는 세계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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