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들고 동네 한 바퀴 돌면 복음화 되나?'
'십자가 들고 동네 한 바퀴 돌면 복음화 되나?'
  • 이승규
  • 승인 2010.09.21 15:47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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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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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2010-10-01 07:54:24
먼저 기자님께 가끔 신문에 나오는 게이들의 행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걸보고 화를 내시거나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 반대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게 핍박받는 존재들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약자들이 용기있게 거리로 나온 모습을 기자님은 분명 박수를 보내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저런 퍼레이드들이 이곳 미국에 많이 있습니다. 다 경찰의 보호도 받고 지지하는 시민들의 박수도 받고 그럽니다. 근데 유독 기독교의 퍼레이드는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들이 기자님의 마음에 부끄러운 것입니까? 전단지를 나눠주는 행위가 부끄럽습니까? 그건 어떤 종류의 시위에서도 다 하는 일입니다. 게이들의 퍼레이드는 쿨해보이고 기독교의 전도행진은 촌스럽고 부끄럽습니까?

혹 복음을 부끄러워 하는지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비리들을 성토하고 욕하고 업신여기는 자리에서 내가 바로 기독교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우리 인간들을 보면 참 답이 안나옵니다만… 그런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선포해야 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형벌은 당시 가장 저주받은 치욕스런 형벌이었지만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노방전도를 욕하려거든 먼저 바울을 욕하십시요. 그가 한 전도의 방법중 하나가 바로 노방전도입니다. 물론 회당에 가서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수단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옛날 소피스트들의 괘변이 판을 치던 시절에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열심히 선포했습니다. 현대에도 물론 너무 공격적이어서 욕을 먹는 전도도 있기는 하지만 노방전도나 이런 퍼레이드를 하는 자체가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전도로 하나님께로 오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헐뜯는 일 멈추고 이젠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로 묵묵히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신 십자가대행진의 성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insight 2010-09-28 16:31:38
이런 식의 전도 방법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런 전도를 하는 분들의 순수한 동기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전도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를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자신들의 전도방법과 행위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은지 분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순수한 동기와 하고자 하는 열정만 가지고 전도/선교를 논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동기와 열정의 수준만큼 과정과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상당히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전략과 선교훈련 등이 요구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가지 예를 들자면, 최근에는 수십 년 동안 해온 서구 사람들의 선교 방식에 대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거론되었고, 그들의 잘못된 선교 방식을 회개하며 그 전략들을 수정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와 물질의 풍요를 앞세워서 선교지에 쏟아붓기식의 선교를 해왔습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눌러 않았습니다.
가르치고 제자화 시켜서 자기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데, 눌러 않아서 주인행세를 한 겁니다.

이런 형태는 지속되었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데 독립할 힘이 없어 서구 선교사들이 던져주는 것만 바라보고 자라나지 않게 된 결과를 낳게 된거죠.

그래서 쏟아붓기식의 선교방법과 전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쏟아붓기 선교는 선교를 하는 쪽에 촛점이 실린 방법이었다면, 그 나라 사람들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세워주고 자리를 내어주는 선교는 상대방 쪽에 촛점을 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선교(전도)는 선교를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 서서 그 방법과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선교의 상황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과성을 따져서 전도/선교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효과성이란 수학적 통계나 산술적 수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씀 드린 상황화 입장에서의 효과성입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저는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리스인들이 알아듣게 설교했던거 밖에는 생각이 안납니다.)

쳣 번째로, 지역에 따른 선교전략 입니다.
바울은 각 나라의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습니다.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등등...)
주요 도시의 성격은 인구수, 경제의 발전 수준, 종교와 정치의 영향력등 입니다.
그럼 왜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았을까요?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울이 소망한 대로 로마에 가게 되고 그곳을 발판으로 4차 선교 여행과 선교후원을 받아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가는 도시마다 처음 찾아 간 곳은 회당입니다.
회당은 Diaspora 유대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 드리고 교육을 하며 공동체 모임을 가졌던 장소입니다. 그럼 왜 먼저 회당을 찾아 갔을까요?
이것도 또한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고 구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많은 유대교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담당하게 됩니다.
또한 회당에는 이방인 유대교인(God-Fearer)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복음전파에 속도가 붙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로, 바울과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복음이 무엇이냐를 설명할 때 복음의 원색적인 부분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도시 상황(문화, 종교, 정치, 세계관 등...)과 교회마다 처한 문제들을 배경으로 하여 독자들을 설득해 나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복음을 듣고 받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이것 또한 중요한 상황화의 한 부분입니다.

구체적인 실 예를 들자면 책 몇 권을 써야 합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셨듯이 전도와 선교의 결과는 인간의 연구와 계산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뜻이 인간이 져야 할 책임도 소홀이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더 효율적이게 상대방 입장에서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그 방법 면에서 덜 효율적이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전도와 선교는 하는 사람의 동기와 열정과 상관 없이 중단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도/선교 더 좋은 전략과 방법이 있다면 인간이 책임져야 하고
그 나머지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겁니다.

insight 2010-09-28 16:29:29
이런 식의 전도 방법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런 전도를 하는 분들의 순수한 동기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전도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를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자신들의 전도방법과 행위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은지 분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순수한 동기와 하고자 하는 열정만 가지고 전도/선교를 논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동기와 열정의 수준만큼 과정과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상당히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전략과 선교훈련 등이 요구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가지 예를 들자면, 최근에는 수십 년 동안 해온 서구 사람들의 선교 방식에 대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거론되었고, 그들의 잘못된 선교 방식을 회개하며 그 전략들을 수정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와 물질의 풍요를 앞세워서 선교지에 쏟아붓기식의 선교를 해왔습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눌러 않았습니다.
가르치고 제자화 시켜서 자기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데, 눌러 않아서 주인행세를 한 겁니다.

이런 형태는 지속되었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데 독립할 힘이 없어 서구 선교사들이 던져주는 것만 바라보고 자라나지 않게 된 결과를 낳게 된거죠.

그래서 쏟아붓기식의 선교방법과 전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쏟아붓기 선교는 선교를 하는 쪽에 촛점이 실린 방법이었다면, 그 나라 사람들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세워주고 자리를 내어주는 선교는 상대방 쪽에 촛점을 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선교(전도)는 선교를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 서서 그 방법과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선교의 상황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과성을 따져서 전도/선교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효과성이란 수학적 통계나 산술적 수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씀 드린 상황화 입장에서의 효과성입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저는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리스인들이 알아듣게 설교했던거 밖에는 생각이 안납니다.)

쳣전 째, 지역에 따른 선교전략 입니다.
바울은 각 나라의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습니다.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등등...)
주요 도시의 성격은 인구수, 경제의 발전 수준, 종교와 정치의 영향력등 입니다.
그럼 왜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았을까요?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울이 소망한 대로 로마에 가게 되고 그곳을 발판으로 4차 선교 여행과 선교후원을 받아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가는 도시마다 처음 찾아 간 곳은 회당입니다.
회당은 Diaspora 유대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 드리고 교육을 하며 공동체 모임을 가졌던 장소입니다. 그럼 왜 먼저 회당을 찾아 갔을까요?
이것도 또한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고 구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많은 유대교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담당하게 됩니다.
또한 회당에는 이방인 유대교인(God-Fearer)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복음전파에 속도가 붙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로, 바울과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복음이 무엇이냐를 설명할 때 복음의 원색적인 부분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도시 상황(문화, 종교, 정치, 세계관 등...)과 교회마다 처한 문제들을 배경으로 하여 독자들을 설득해 나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복음을 듣고 받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이것 또한 중요한 상황화의 한 부분입니다.

구체적인 실 예를 들자면 책 몇 권을 써야 합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셨듯이 전도와 선교의 결과는 인간의 연구와 계산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뜻이 인간이 져야 할 책임도 소홀이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더 효율적이게 상대방 입장에서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그 방법 면에서 덜 효율적이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전도와 선교는 하는 사람의 동기와 열정과 상관 없이 중단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도/선교 더 좋은 전략과 방법이 있다면 인간이 책임져야 하고
그 나머지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겁니다.

insight 2010-09-28 16:27:02
이런 식의 전도 방법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런 전도를 하는 분들의 순수한 동기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전도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를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자신들의 전도방법과 행위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은지 분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순수한 동기와 하고자 하는 열정만 가지고 전도/선교를 논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동기와 열정의 수준만큼 과정과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상당히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전략과 선교훈련 등이 요구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가지 예를 들자면, 최근에는 수십 년 동안 해온 서구 사람들의 선교 방식에 대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거론되었고, 그들의 잘못된 선교 방식을 회개하며 그 전략들을 수정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와 물질의 풍요를 앞세워서 선교지에 쏟아붓기식의 선교를 해왔습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눌러 않았습니다.
가르치고 제자화 시켜서 자기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데, 눌러 않아서 주인행세를 한 겁니다.

이런 형태는 지속되었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데 독립할 힘이 없어 서구 선교사들이 던져주는 것만 바라보고 자라나지 않게 된 결과를 낳게 된거죠.

그래서 쏟아붓기식의 선교방법과 전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쏟아붓기 선교는 선교를 하는 쪽에 촛점이 실린 방법이었다면, 그 나라 사람들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세워주고 자리를 내어주는 선교는 상대방 쪽에 촛점을 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선교(전도)는 선교를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 서서 그 방법과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선교의 상황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과성을 따져서 전도/선교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효과성이란 수학적 통계나 산술적 수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씀 드린 상황화 입장에서의 효과성입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저는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리스인들이 알아듣게 설교했던거 밖에는 생각이 안납니다.)

1. 지역에 따른 선교전략 입니다.
바울 - 각 나라의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습니다.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등등...)
주요 도시의 성격은 인구수, 경제의 발전 수준, 종교와 정치의 영향력등 입니다.
그럼 왜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았을까요?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울이 소망한 대로 로마에 가게 되고 그곳을 발판으로 4차 선교 여행과 선교후원을 받아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가는 도시마다 처음 찾아 간 곳은 회당입니다.
회당은 Diaspora 유대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 드리고 교육을 하며 공동체 모임을 가졌던 장소입니다. 그럼 왜 먼저 회당을 찾아 갔을까요?
이것도 또한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고 구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많은 유대교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담당하게 됩니다.
또한 회당에는 이방인 유대교인(God-Fearer)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복음전파에 속도가 붙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로, 바울과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복음이 무엇이냐를 설명할 때 복음의 원색적인 부분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도시 상황(문화, 종교, 정치, 세계관 등...)과 교회마다 처한 문제들을 배경으로 하여 독자들을 설득해 나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복음을 듣고 받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상황화의 한 부분입니다.

구체적인 실 예를 들자면 책 몇 권을 써야 합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셨듯이 전도와 선교의 결과는 인간의 연구와 계산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뜻이 인간이 져야 할 책임도 소홀이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더 효율적이게 상대방 입장에서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그 방법 면에서 덜 효율적이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전도와 선교는 하는 사람의 동기와 열정과 상관 없이 중단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도/선교 더 좋은 전략과 방법이 있다면 인간이 책임져야 하고
그 나머지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겁니다

insight 2010-09-28 16:25:33
이런 식의 전도 방법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런 전도를 하는 분들의 순수한 동기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전도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를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자신들의 전도방법과 행위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은지 분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순수한 동기와 하고자 하는 열정만 가지고 전도/선교를 논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동기와 열정의 수준만큼 과정과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상당히 많은 선교단체와 선교전략과 선교훈련 등이 요구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가지 예를 들자면, 최근에는 수십 년 동안 해온 서구 사람들의 선교 방식에 대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거론되었고, 그들의 잘못된 선교 방식을 회개하며 그 전략들을 수정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본주의와 물질의 풍요를 앞세워서 선교지에 쏟아붓기식의 선교를 해왔습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눌러 않았습니다.
가르치고 제자화 시켜서 자기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데, 눌러 않아서 주인행세를 한 겁니다.

이런 형태는 지속되었고,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데 독립할 힘이 없어 서구 선교사들이 던져주는 것만 바라보고 자라나지 않게 된 결과를 낳게 된거죠.

그래서 쏟아붓기식의 선교방법과 전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쏟아붓기 선교는 선교를 하는 쪽에 촛점이 실린 방법이었다면, 그 나라 사람들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세워주고 자리를 내어주는 선교는 상대방 쪽에 촛점을 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선교(전도)는 선교를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 서서 그 방법과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선교의 상황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과성을 따져서 전도/선교한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효과성이란 수학적 통계나 산술적 수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씀 드린 상황화 입장에서의 효과성입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저는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리스인들이 알아듣게 설교했던거 밖에는 생각이 안납니다.)

쳣전 째, 지역에 따른 선교전략 입니다.
바울은 각 나라의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습니다.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등등...)
주요 도시의 성격은 인구수, 경제의 발전 수준, 종교와 정치의 영향력등 입니다.
그럼 왜 주요 도시를 타겟으로 삼았을까요?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울이 소망한 대로 로마에 가게 되고 그곳을 발판으로 4차 선교 여행과 선교후원을 받아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가는 도시마다 처음 찾아 간 곳은 회당입니다.
회당은 Diaspora 유대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 드리고 교육을 하며 공동체 모임을 가졌던 장소입니다. 그럼 왜 먼저 회당을 찾아 갔을까요?
이것도 또한 복음전파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고 구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많은 유대교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담당하게 됩니다.
또한 회당에는 이방인 유대교인(God-Fearer)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복음전파에 속도가 붙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세 번째로, 바울과 사도들의 서신서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복음이 무엇이냐를 설명할 때 복음의 원색적인 부분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도시 상황(문화, 종교, 정치, 세계관 등...)과 교회마다 처한 문제들을 배경으로 하여 독자들을 설득해 나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복음을 듣고 받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이것 또한 중요한 상황화의 한 부분입니다.

구체적인 실 예를 들자면 책 몇 권을 써야 합니다.

벨라님이 말씀하셨듯이 전도와 선교의 결과는 인간의 연구와 계산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뜻이 인간이 져야 할 책임도 소홀이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더 효율적이게 상대방 입장에서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그 방법 면에서 덜 효율적이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전도와 선교는 하는 사람의 동기와 열정과 상관 없이 중단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전도/선교 더 좋은 전략과 방법이 있다면 인간이 책임져야 하고
그 나머지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