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다시 보기
이완용 다시 보기
  • 최태선
  • 승인 2019.07.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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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목사가 지난 6월 약 20억 원의 교회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돼 곧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는 활빈 목사라 불릴 정도로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고, 한때는 민주화와 인권 운동의 대명사였다. 그런 그가 권력에 안주하며 수구 세력의 대변자로 자리바꿈하더니, 마침내 헌금 횡령으로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는 김진홍도, 조용기도, 김삼환도, 오정현도, 최근 장애아를 필리핀에 버린 부모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맡아준 선교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돈의 노예가 되었다. 요즘 핫이슈가 된 세습이 불의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다. 세습은 그들의 열매일 뿐이다. 세습이라는 불의한 열매를 제거해도 그들은 또 다른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내가 늘 세습 반대 시위와 같은 것을 하지 마시라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잘못을 제거한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런 열매를 맺는 그들의 정체성이 이미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잘못된 열매를 제거한다고 해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요즘 우리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 정도로 이해한다. 그럴 만도 하다. 실제로 한국은 일본의 경제 식민지였다. 징용 배상 판정에 속이 뒤틀린 일본이 한국에게 그걸 확인시키려는 것이다. 일본이 그 카드를 뽑아든 것은 아직도 한국에는 이완용 닮은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완용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한말의 민족 반역자, 친일파, 만고의 역적 이완용.’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역사적으로 그처럼 욕을 먹는 이도 드물 것이다. 이완용은 고종에게 칼을 들이대며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한 '을사5적'의 가장 핵심 인물이다. 그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아 식민치하에서 부귀 영화를 누렸다. 심지어 며느리와 사통한 패륜아로도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삶의 궤적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는 6살 때 천자문, 7살 때 효경, 8살 때 소학을 뗀 신동이었으며, 25세에 문과에 급제한 명문가 출신의 정통 관료였다. 최초로 영어와 신학문을 공부하여 서구 사회의 장점을 수용하고자 한 개혁주의자이기도 했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왕실과 척족에 대해 변함없는 충성을 바친 신하였고, 고종의 총애를 받는 충신이었으며, 독립문의 현판을 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필로 통하던 사람이었다.

모든 이의 부정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의외의 요소들이 많다. 가장 두드러진 것 중에 하나는 그가 독립협회의 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위원장이었던 시절 그는 조선의 왕이 직접 나가 중국의 사신들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영은문은 조선 역사의 수치였다. 그것은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라는 표시였다. 그래서 중국의 사신으로 오는 관리들의 거만함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개는 환관들이 사신으로 왔는데 그들을 접대하기 위해 마련된 술 자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치했으며, 그들에게 성대접을 하는 관기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칠 정도로 중국 환관들은 변태적이고 가학적이었다. 중국의 사신들이 오면 대개는 중국 황실에 바치는 궁녀들의 징발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정승들의 딸까지도 징발할 정도로 그들의 권력과 횡포는 심했다. 그래서 중국 사신들이 도착하면 길거리에 다니는 여인들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이완용은 바로 그 치욕의 현장에 독립문을 세운 중심 인물이었다.

정말 의외의 일이 아닌가. 그의 정치적인 행보도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는 친러, 친미를 거쳐 친일파가 되었다. 그러한 그의 행보는 현실을 정확히 볼 줄 아는 역사적 안목의 표출이었고, 조선을 위한 현실적인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던 그의 충정의 산물이었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그런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이완용이 재물에 현혹되지 않았다면 그는 아시아 최고의 정치적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역량과 경륜을 가진 당대 최고의 정치가였다. 그러나 그는 재물에 현혹되고 말았다. 만일 그가 재물에 현혹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만고의 역적이 아니라 만고의 충신이 될 수도 있었다. 

이완용에게는 개인적인 열심과 성실한 노력이 있었다. 왕과 왕실에 대한 충성과 조국의 장래를 위한 충정도 있었다. 그러나 이완용을 충신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 분명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완용의 이야기가 한국교회에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란다.
 
이완용이 친일파 매국노, 만고의 역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도대체 교회에 대해서는 왜 그리도 무지한가.
 
세습이 문제가 아니다. 헌금 유용이 문제가 아니다. 성령을 제멋대로 부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성범죄가 문제가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은 다만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열매일 뿐이다. 그 열매를 모두 제거한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것들을 제거하다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고 그런 일을 하는 자신에 매료될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돈이다. 그들은 맘몬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가 아니라 꿀이 발려져 있는 맘몬님의 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이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이 맺는 열매가 아니라 그들이 붙어있는 나무다!!!

맘몬의 가지들 곁에는 다가가지도 말라. 그냥 내버려두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결국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가 세상의 소금이고 빛임을 입증할 것이다. 그런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과 정의가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복음이 아닌가. 그리스도인들이여, 이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그것이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이다.

최태선 목사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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