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가 곧 역사
나의 이야기가 곧 역사
  • 김세진
  • 승인 2022.02.04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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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겪은 가족 이야기 《기다림》을 10개국어로 펴낸 김금숙 만화가

 

《꼬깽이》,《아버지의 노래》,《지슬》,《비밀》, 《기다림》은 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한국사이기도 하다. 김금숙 씨가 그리는 만화가 그렇다.
《꼬깽이》,《아버지의 노래》,《지슬》,《비밀》, 《기다림》은 한 사람의 이야기인데 한국사이기도 하다. 김금숙 씨가 그리는 만화가 그렇다.

결례일 수 있지만, 처음 만난 만화가에게 대뜸 만화 그리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만난 것이니 이해하겠거니 했지만, 군인에게 무기고를 열어 달라고 한 건 아닌지 싶었다. 그렇게 말을 뱉어 놓은 사람은 오만 생각을 하는 사이, 김금숙 씨는 조금도 주저 없이 작업실에 들어가 토시를 꼈다. 그리곤 선 채로 붓을 쥐었다.

 

휙~ 무언가 지나가나 싶었는데 금세 산이 생기고 나무가 무성해지고, 장난꾸러기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만화가 김금숙 씨 손에 들린 붓이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팔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붓끝에 역동성이 있었다.

 

“만화를 그릴 때 서서 작업해요. 앉으면 에너지의 흐름이 끊기는 것 같더라고요. 몇 시간 동안 서 있어도, 작업할 때는 다리 아픈 줄 몰라요. 마치고 나면 그때야 피곤이 몰려온다고 해야 할까요?”

 

그 열정으로 그는 골목대장 소녀를 주인공으로 둔 자전적인 만화 《꼬깽이》를 그렸고,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며 눈이 먼 언니까지 돌보았던 힘든 가족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노래》에 담아냈다. 그러더니 덜컥 시야를 확장해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을 그렸다. 의뢰를 받아 작업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 이후 역사에 눈을 떴다. 그리고 길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냈던 개인에게 관심이 갔다.

 

가장 먼저 마음이 간 곳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였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의 인생을 《비밀》에 담았다. 비밀이라는 건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비밀 대하듯 하는 일본의 태도를 암시하기도 하고,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그들을 대했던 태도를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에 두고 상상력을 더해 부산의 한 가시나 ‘옥선이’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주인공 옥선이는 열여섯에 위안부로 중국으로 끌려간 뒤 끔찍한 일을 당하고, 평생을 떠돌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역시 낙인이 찍힌 채 신산하게 사는 인물이다. 작가는 그 한 맺힌 삶의 이야기에 《풀》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뽑혀도, 쓰러뜨려도,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의 생명력이 그들과 닮았다고 생각해서다.

 

무거운 진실을 가벼이 가져오는 예술, 만화

그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살던 지나간 시대의 한 작은 소녀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이 기록은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전쟁의 이야기를 담은 《기다림》은 지난 2021년, 한국어 외 10개 언어(러시아어, 보스니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영어, 이탈리아어, 체코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의 만화가 국제무대에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아버지의 노래》가 프랑스 몽벨리에 만화페스티벌에서 ‘문화계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언론상’을 받았고, 이어 2014년에 《비밀》이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열린 전시 ‘지지 않는 꽃’에 출품되었다. 이현세 씨 등 19명의 만화가와 함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만화를 그려 이 전시에 참여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맞아 앙굴렘국제만화축제는 전쟁을 고발하는 만화를 다뤘고, 그 하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집중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전시회가 더 주목받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극우 세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만화에서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고, 정치적 전시일 뿐이라고 성명을 발표했고 반대 운동을 하는 부스를 열었다. 이에 프랑스는 “누구나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예술작품에 대해 그렇게 반응하는 게 더 정치적”이라며 일본 측에 부스를 철회하라고 했다. 이 일련의 사건은 프랑스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로써 감춰져 있던 이야기가 다시 세계에 드러났다.

 

여기에 김금숙 씨의 활약이 있었다. 만화를 그린 것도 그것이지만, 그가 이 만화축제에서 했던 통역 역할도 한몫했다, 그는 관심을 보이는 프랑스인들에게 기꺼이 그리고 일일이 역사를 설명했다.

 

“프랑스 사람들도 위안부 존재를 알아요. 하지만 그들이 자원해서 간 걸로 알고 있더라고요. 강제로 끌려간 거라고 말하면 깜짝 놀라며 이제야 알았다고 해요.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공감하게 하는 게 만화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접근이 쉽잖아요. 그게 바로 만화라는 예술의 장점이에요.”

 

회화를 전공한 그가 만화를 하게 된 것은 프랑스 땅에서였다. 일찍이 그는 한국에서 회화 공부를 한 뒤, 설치미술을 배우러 프랑스로 떠났고, 2011년까지 17년 동안 프랑스에 살았다. 그때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부업거리를 찾다가 현지 한인신문에 만화를 연재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고, 그 작업이 의외로 재미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만화로 발을 들였지만, 그는 무척 만족한다. 앞으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담고 싶은데, 바로 거기에 역사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평범한 일상이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말해도, 그 안에 시대가 담겨 있고 작가의 시각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 이야기를 그린 것도 그래서예요"라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작가가 그린 어린 시절 놀이는, 지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게 새삼스레 와 닿았다.
“어떤 이의 평범한 일상이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말해도, 그 안에 시대가 담겨 있고 작가의 시각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 이야기를 그린 것도 그래서예요"라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작가가 그린 어린 시절 놀이는, 지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게 새삼스레 와 닿았다.

 

지금은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지만, 한땐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어머니의 삶이 1970년대를 살던 여성들 대부분의 모습인 것 같아요. 내 이야기지만 그게 단순히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랑받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어러운 시절 이기는 힘

김금숙 씨가 어떤 개인의 이야기로 역사를 풀어낸 것은 《꼬깽이》가 시작이었다.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기억을 모은 건데, 그 기억들은 김금숙 씨가 어려운 시절에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그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어린이잡지에 《꼬깽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다. 이 만화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연재 당시 아이들은 김금숙 작가를 만나면 신나서 꼬깽이가 정말 귀신을 보았었는지 등등 만화에 나온 내용을 물었다.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는 아주 작은 것에도 깔깔 웃고 맘껏 뛰어놀며 행복했었죠. 맘껏 흙장난하며 나뭇가지, 풀, 벌레들이랑 뒤섞여 뒹굴며 놀았어요. 신나게 뛰어노느라 해가 지는 줄도, 옷이 더러워지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죠.”

 

꼬깽이는 시골 이야기와 서울 이야기 편으로 나뉘는데, 김금숙 씨에게 시골과 서울의 삶이 너무나 달랐다. 시골에 살던 그 시절, 김금숙 씨는, 상상력이란 걸 비싼 장난감이나 어떤 프로그램이나 교구나 학원에서 얻은 게 아니라 자연에서 얻었다. 나뭇가지 하나가 아빠도 되고 엄마도 되고 왕자도 되고 나쁜 사람도 되었다. 그 덕분에 보이지 않는 것, 없는 것을 전혀 엉뚱한 것을 통해 상상하고 만드는 힘이 어렸을 때부터 생겼다고 생각한다.

 

내밀한 가족사에 담긴 현대사

그는 이어 《아버지의 노래》에서 가족의 아픔을 털어 낸다. 《아버지의 노래》는 아홉째로 태어난 주인공 ‘구순이’가 즐겁게 자라던 전남 고흥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한 뒤에 겪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노래가 들리던 날, 끊긴 날, 다시 시작한 날을 구순이는 선명히 기억한다.

 

마당 있던 집에서 뛰놀던 구순이는 서울로 이사한 후, 전혀 다르게 살게 된다. 11명 식구가 함께 단칸방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구순이 부모님은 시장에서 채소를 팔지만, 이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깨끗한 한국을 보여줘야 한다며 노점상을 단속했는데 구순이의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속반이 뜬다는 걸 아는 구순이는 행여 부모님이 다치지 않을까, 매일 마음을 졸인다.

 

‘서울에 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을까?’ 구순이는 친척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건지, 오로지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허세로 뱉은 말이었는지 의심한다. 외풍 부는 그 좁고 추운 집에서 일곱 형제와 부모님 사이에서 다닥다닥 붙어 칼잠을 자다가 깬 어느 밤, 구순이는 바깥에 내리고 있는 눈을 보면서 생각한다. 죽고 싶다고. 고작 아홉 살이지만 그 밤낮이 버거웠다.

 

시골에서 언제나 노래하던 아버지는 노래를 그쳤다. 일할 때도, 잔치에서도, 들리던 아버지의 판소리는 서울에서 사라진다. 아버지의 소리가 다시 살아난 것은 구순이 언니가 죽었을 때다. 당뇨병을 앓다가 눈까지 멀어 힘들게 살다가 죽은 언니는 어린 구순이를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요즘이면 죽을병까지 되지 않았을 당뇨가 당시엔 여러 사람을 죽였다. 구순이는 아버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묘한 기분을 느낀다. 오랜만에 아빠 노랫소리를 들으니 기쁘면서도, 사실은 그게 오열하는 곡소리를 대신한다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미어진다.

 

이 구순이는 어린 김금숙 씨다. 어른 구순이는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는 삶이 힘들고 지긋지긋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가진 것도 없고 말도 못하면서 덜컥 프랑스로 떠났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히려 뿌리를 찾았다. 거리를 두고 가족과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 보게 되었고, 할 이야기들이 샘솟았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만화로 출간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판소리도 배우기 시작했다.

 

해학이 담긴 판소리 같은 만화

피는 어디 안 간다더니, 그는 요즘 판소리할 때 가장 신명 난다고 한다. 처음 판소리에 눈뜬 것은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선생이 부른 ‘흥보가’를 듣고 나서다. 청승맞게만 들리던 소리가 새롭게 들리면서, 그걸 배우고 싶은 열망이 너무 강해졌다.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김금숙 씨는 덜컥 판소리를 배우려고 한 달 만에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침 프랑스인 남편 로익도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잠시 머무를 양으로 왔는데, 이렇게 잠시 온 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무엇에 빠지면 몰입하는 성격답게, 김금숙 씨는 만화 작업이 없을 때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열 시간 이상 판소리를 듣고 불렀단다. 아픈 자신의 이야기, 숨기고 싶은 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내고는 이제 나는 되었다는 듯, 아픈 시대를 살아 낸 옆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 지금, 그가 《아버지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판소리는 가도 가도 가야 할 길이 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판소리 같아요. 그림이나 만화야, 일주일쯤 놓아도 괜찮은데 소리는 하루만 쉬어도 달라요. 그래도 판소리에 귀가 열리고 들을 줄 알면 정말 행복해요. 거기게 민중의 삶이 묻어나 있는 걸요. 한만 풀어내는 거라는 편견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가사를 보면 얼마나 해학이 있는데요.

 

흥보가는 형제 이야기를 빗대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대해 말하고, 춘향가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고 신분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유머와 깊이가 너무 좋아요. 그 안에 울리고 웃기는 이야기도 있고. 나는 이렇게 판소리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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