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실종
믿음의 실종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2.02.06 0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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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일이었다. 그리스도교는 말의 종교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말은 잘 한다”고 한다. 특히 개신교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청산유수로 기도도 잘 한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늘 개신교 신자들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한다. 관습의 차이도 있지만 특히 개신교가 더 말의 종교가 되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이사를 갔을 때 5층에 사시는 분이 찾아왔다. 무언가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특별히 필요한 부분이 없어 그분은 그냥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그분이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분은 순복음교회 구역장이었다. 그러니까 전도를 하거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자기 교회로 인도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목사라는 사실은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도 가급적 밝히지 않는다. 선입관 없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지금도 나는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라면 집사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목사와 집사가 만나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또 비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솔직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유불리를 떠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도 특히 목사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루는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구역장이신 그분을 만났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암시와 함께 그리스도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분은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도망치듯이 내 곁을 떠났다. 그렇게 용감하게 새로 이사 온 집을 찾아왔던 분이 개인적인 대화나 교제를 어려워하는 분이었다. 훈련된 행동은 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만남이나 교제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생각과 달리 배운대로의 정해진 말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다,

오늘날 교회들은 거의 강압적으로 선교나 전도를 의무적으로 강요한다. 심지어 “전도폭발훈련”이라는 이름까지 있다. 결국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토록 우려했던 말로 복음을 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줌마 전도왕이나 고구마 전도왕 같은 전도왕들이 등장했고 사영리라는 전도 공식까지 만들어졌다. 신학생들은 그것을 외우고 또 외운다. 그것으로 교인수를 불리려는 것이다. 자기 교회의 성장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정말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유명했던 로버트 슐러 목사의 수정교회를 생각해보라.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던가. 아니 그것이 하나님과 무슨 연관이 있었는가.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런데 그런 수정교회가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의 흠모의 대상이었고 일순위 방문지였다. 지금 그 교회는 가톨릭교회가 되었다. 가톨릭은 왜 그처럼 욕망 덩어리의 결정체인 그 건물을 샀을까.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시대가 특별히 더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변질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말의 종교가 되어버린 그리스도교가 더 이상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악한 자들을 모방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인내와 온유함으로 모든 이들을 수치와 악한 열망으로부터 끌어내기를 바라셨다. 우리는 이것을 한때 당신의 편에 머묾으로 폭력과 횡포의 길에서 돌이킨, 그리고 이웃의 일관성 있는 삶을 지켜봄으로써, 혹은 자신들의 상처 입은 지인들의 낯선 인내를 주목함으로써, 혹은 그들이 자기들과 사업하는 방식을 경험함으로써 그 길을 극복한 많은 이들의 경우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유스티누스의 변증서1에서 p.174)

이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단어가 무엇인가. 보는 것이다. 유스티아누스는 행위를 강조했다. 그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오래 참고 모든 이에게 종이 되라는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어떤 이가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뺨을 돌려대고, 어떤 이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그와 함께 십리를 가야 하고, 화를 내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행위들이 선교 행위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선행이 사람들 앞에서 빛나게 하라.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하늘에 계신 당신의 성부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 하도록!”

그렇다. 아테나고라스에 따르면, 개별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은 말보다는 사람들의 습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반사적 행위를 통해 말을 연습하지 않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선행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선한 일을 수행하는 태도는 의도적인 형성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실천이 유전적으로 습득되거나 이교 사회로부터 흡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0년경의 그리스도교 지도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오늘날 우리가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을 남겼다.

“그리스도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초기교회의 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고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실종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성장했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정에서 위엄(혹은 권위, dignitas)은 하나의 구성 원리였다. 그리고 궁정에서 콘스탄티누스는 매우 특별한 사람, 즉 서방의 황제인 콘스탄티우스의 아들이었다. 그런 사람으로서 그의 삶은 위험했다. 성장하는 동안 그는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고 조심스러워야했다. 콘스탄티누스의 아비투스는 투명성과 사랑이 아니라 의심과 반사적 보복의 아비투스엿다. 콘스탄티누스는 또한 근대 안에서 성장했다. 아이 시절에 그는 군사적 영웅들의 무공일 기렸다. 십대 때 그는 이집트와 페르시아에 대한 군사적 원정에 참여했다. 그가 군인으로서 습득한 아비투스에는 기민함, 용감함, 위협 등이 포함되었으나,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섬기는 것은 포함되지 않았다.”(p.418)

콘스탄티누스가 환상을 보고 영적인 체험을 했음에도 세례를 받을 수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콘스탄티누스의 성장 배경과 그에게 형성되었던 아비투스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 콘스탄티누스는 아비투스의 변화라는 도전에 직면했던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범”을 따라 성장하고자 했던 모든 잠재적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되는 도전이었다. 후보자들의 성장 배경이 무엇이든, 그들 모두는 세례 후보자의 과정에서 그들의 아비투스가 거론되고, 이해되고, 잊히고, 변화되는 과정에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위엄으로써 그것을 거부했다. 그런 그의 행위는 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사변적으로, 그리고 사변적이 된 그리스도교는 행위가 아니라 말을 강조하는 종교를 만들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믿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루터가 말한 것처럼 “지푸라기 복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되살려내야 할 믿음의 가장 소중한 텍스트이다. 거듭난다고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저절로 변하거나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시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을 곱씹고 되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그리스도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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