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요. 다시 사월이 올 거예요”
“나를 잊지 말아요. 다시 사월이 올 거예요”
  • 김세진
  • 승인 2022.04.17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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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을 기억하는 노래들

 

“봄이 오는 신호가 보이면 어김없이 너희들 생각이 나. 벚꽃잎이 흩날리면 그곳에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라. 근데 요즘 벚꽃을 보면 좀 힘들어지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저 피고 지는 것이 아름답기만 한 꽃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올해 스물여섯이 된 장애진 씨는 벚꽃이 흐드러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너희도 살았다면 나처럼 성인이 되어 대학 생활도 즐겼을 테고, 시리게 아름다운 이 무렵이면 사진도 찍으며 좋아했을 텐데. 원래 유아교육과에 진학하려고 했던 그는, 그날 그 사건 이후로 응급구조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는 전복했고, 그 커다란 배가 물속에 가라앉는 장면을 전 국민은 생중계로 속절없이 보고 있었다. 학생들 250명을 포함해 304명은 배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마땅히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뭐라도 해야 했는데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구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이, 그들을 구할 수 있던 골든타임이 그냥 지나버렸다.

세월호 전복 당시, 독일에 있던 권은비 작가는 어떻게든 세월호를 들어 올리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에 울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오마이뉴스)
세월호 전복 당시, 독일에 있던 권은비 작가는 어떻게든 세월호를 들어 올리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에 울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오마이뉴스)

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그동안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부모들은 그저 팽목항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며 쓰러지며 악을 쓰며 버텼다. 시신만이라도 수습해 달라고, 실종 상태인 우리 아이를 발견해서 차가운 몸에라도 담요를 덮어 주고 싶다고, 이제 내 소원은 유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유가족 되는 게 소원이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며 울부짖었다.

그후 8년이 지났지만 5명은 몸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 그때 왜 그들을 구할 수 없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 채로 그 배 이름처럼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국가에 배신을 느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에 스스로 생채기를 입었고, 아이들에게 말을 잘 들으라고 가르쳤던 것에 어른으로서 죄책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할 수 있는 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뭔가가 너무 늦어버려서, 그제라도 광장에 나왔다.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었던 그 광화문 광장에, 이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울려 퍼졌다. 순간 그 많은 사람들이 조용해졌고 순식간에 숙연해진 그 공간에 미풍이, 아주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그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 나는 그게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가사처럼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라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눈물이 차올라 삐져나올 것 같았는데, 그걸 유족들에게 보이기엔 너무 죄스러웠다. 나도 몰래 코에 손끝을 가져다 댔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고 있으면, 아주 잠시 동안은 눈물을 미간에 가둬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가둘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눈 뜨는 게 괴로웠을 하루하루의 세월을 견뎌온 유족들은 2014년 겨울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몇몇 시민들과 함께 모여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위로가 되기에, 약속 시간 전부터, 서로가 보고 싶어, 달려오곤 했다. 이들 416 합창단은 함께 연습한 노래를 들고 다른 아픈 이들에게 갔다. 부당해고를 당한 KTX 승무원을 찾아가,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을 찾아가, 휴대전화 부품을 만들다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노동자들을 찾아가 위로했다.

그러더니 2020년,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이라는 앨범을 책과 함께 발간했다. 최순화 씨(고 이창헌 군 어머니)는 특히 ‘너는 어느 별이 되었을까’를 부를 때, 아이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부른다고 했다. “마음을 휘젓고 다니던 말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나 노래가 되었을 때, 만나지 못하게 된 아이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했다. 먹먹하다.

지난해, 416 합창단의 창작곡 ‘너’를 랜선으로 함께 부를 합창단을 3월 8일부터 21일까지 모집했고, 어떻게 참여할지를 영상으로 안내했다. 국내 193명, 해외 25명, 단체 24곳에서 참여했다. 이 랜선 시민 합창 ‘너를 부르다’를 보면 어린아이와 어린,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참여했고, 누구는 책장 앞에서, 누구는 옷장 앞에서, 누구는 소파 위에서, 누구는 문 앞에서, 누구는 교실에서, 누구는 사원 앞에서, 또 더러는 애완동물을 안은 채로 한목소리를 냈다.

“태어나던 날 처음 잡던 손, 목소리를 알아듣던 너…열 살 적 같이 본 노을 엄마 늙지 말라 하던 너…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자녀가 자라는 순간을 되짚어 그려보는 이 가사를, 그 아이가 곁에 있어도 코끝이 찡할 이 가사를 부르며, 때로 눈을 질끈 감고 때로는 먼 하늘을 응시하지만, 대체로 담담하고 차분히 부르는 부모들을 보면서, 그렇게 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먹먹한 가슴으로 오열하고 삭혔을지, 몇 번을 거듭해 가슴에 묻었을지, 상처가 노출되며 어떻게 굳은살이 박이고 어떤 모양으로 여린 살덩이가 그대로 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앨범의 음악 감독, 류형선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분들에게는 어쩌면 노래라는 것이 가진 가치의 온전한 실체를 진정성 있게 맛보고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저 정도로 노래와 자기 삶이 온전하게 일치된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이라면, 음악의 사랑을 듬뿍 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음악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을 것인데 그런 기회를 주는 합창단이 아닐까.”

음악이 이들을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416 합창단을 넘어, 가스펠 뮤지션부터(진보라  '아이야, 엄마야'), 재즈 뮤지션(이지혜 <April>), 포크 뮤지션(강승원, 김목인 등의 앨범 <다시, 봄>), 힙합 뮤지션 [치타*장성환 ‘옐로 오션’(Yellow Ocean)], 아이돌(THE ARK ‘빛’)들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며 노래하고 연주했다. 나티의 ‘불망’(不忘)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유의 ‘이름에게’와 BTS '봄날'도, 그들이 그렇게 말하진 않았으나, 팬들 사이에서 세월호 추모곡이라고 여진다. 이탈리아의 아미, 안젤라 풀 비렌 티는 ‘봄날’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세월호 참사를 접했고, 이 뮤직비디오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은유하고 있는지 분석해서 영상을 만들고, 또 안산의 단원고를 방문해 유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지혜 씨의 세월호 추모 앨범 <April>은 버클리 음대 교수들로 구성된 20인조 밴드가 함께 녹음했다. 2천만 원 가까운 제작비는 ‘킥스타터’라는 소셜펀딩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300여 명의 펀드로 마련했다고 한다. 그의 'Deep Blue Sea'를 들으면 마음이 참잠해진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서, 걸으면서 또 때로 경찰에 막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우리는 이 짧은 노래를 외치듯 부르며, 세상에 선포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사실이어서 우리는 당당했고, 진실을 침몰하지 않을 것을 소망해서 힘이 났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서로 다독였다. 그래서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희망이 있었다.

<겨울, 그리고 봄>에 실린, 말로의 ‘잊지 말아요’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남쪽 바다 멀리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때 노래하며 올게요”, “눈부신 초록이 번져갈 때 손 흔들며 올게요. 나 싱그러운 이파리 되어”라는 가사에는 더 이상 울음이 없다. 남겨진 우리에게는 슬픔과 여한과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훌훌 떠난 이는 가뿐하다. ‘벚꽃만 보면 힘들다’는 친구에게, 매년 4월 16일이라는 날짜가 돌아오는 걸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때마다 더 몸부림치는 부모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이는 “햇살 가득 사월이 올 때까지 그대. 울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계절이 돌고 돌 듯

슬픔이 웃음으로 돌고 돌아

영원히 만날 거예요 우린

따뜻한 이별 안에서."
 

- 말로의 ‘잊지 말아요’ 중에서

 

* 이 글은 독립 음악잡지 <gem megazine>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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