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와 미주 한인 정체성 전환, 어디까지 왔을까?
4.29와 미주 한인 정체성 전환, 어디까지 왔을까?
  • 김재영 목사
  • 승인 2022.05.01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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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목사 칼럼 "4.29, 30주년: 코리안-아메리칸 정체성"
김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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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흑인 폭동은 30년 전 현대 포니를 과속으로 몰면서 도주하던 흑인 로드니 킹을 교통경찰이 추격, 고속도로 위에서 무자비하게 폭행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후 법원의 무죄판결이 그동안 쌓인 흑인 커뮤니티의 울분을 폭발시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차별적인 판결에 대해 항의하던 흑인들은 길거리에 나와 차를 부수고 상점을 습격했을 뿐만 아니라 방화와 약탈까지 감행했다. 폭동이 점차 도시 중심부로 이동해 오자 경찰은 부유한 백인이 사는 베벌리 힐스 지역을 보호하는 방어선을 치고 남쪽 지역은 경찰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무방비 지대로 만들었다. 이에 폭동의 대열이 한인타운을 향해 올라오자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한인은 어쩔 수 없이 한인방송국을 통해 서로 연락하고 총으로 무장하여 자위대를 조직, 폭력적인 시위대와 대치하면서 자신의 가게를 지켜내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주요 텔레비전 방송은 이 사태를 한흑갈등으로 몰아갔다. 특히 얼마 전 벌어졌던 한인 상점 여주인 두순자 씨가 가게에 들어왔던 흑인 소녀와 다툼 끝에 총으로 살인하게 된 사건을 부각해 한인과 흑인 양쪽 사회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가했다. 실제로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면서도 흑인 사회 자체에 대한 기여도는 거의 없었던 한인들은 돈만 아는 수전노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백인주류 사회는 그러한 갈등상황을 부각하고 부풀림으로써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한인에게 돌리는데 잠시 성공했다. 이 때문에 한인 사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조작된 한흑갈등은 결과적으로 한인 사회가 미국사회와 역사에 더욱 적극 포함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로 미주 한인은 한국전쟁 이후 분단 상황을 피해서 나온 이주 난민으로서 언저리 더부살이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미국 사회 모순의 피해 당사자로서 미국 사회 전면에 등장한다. 한인 공동체도 기존에 주류 (백인중심의) 사회 진입을 위해 흑인과 히스패닉 사회를 발판으로 삼고 이용하려는 태도에서 천천히 벗어나 그들을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한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한인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던 한인 2세대도 4.29를 계기로 많은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4.29 당시 한인타운 (구글이미지)
4.29 당시 한인타운 (구글이미지)

하지만 4.29를 계기로 생긴 한인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각성은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인 2세만 하더라도 첫 이주자인 부모 세대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부모 세대와는 다른 조건에서 미국사회에 편입해서 자리 잡고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삶에 대한 문제의식도 다르다.

한인이민사회에서 소위 코리안-아메리칸(재미한인)은 그냥 하나의 정체성만 있는 것은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미주 한인이라 표현한다 해도 그 안에 여러 정체성Identities이 있음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같은 한국에서 온 한인이라 해도 각기 다른 지역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에 들어와서 여전히 서로 다른 자리에서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자리 잡고 살아나간다. 미국이라는 땅은 이런 여러 코리안들이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자리 잡고 생존하고 터 잡고 살아가는 플레이 그라운드 playground 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4.29가 가지는 의미와 그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4.29는 분명 엘에이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던 한인에게 직접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말은 4.29를 통해 불거져 나온 문제의식을 통해서 자각하게 된 미주 한인계층은 특수하며 제한적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뉴욕은 비슷한 조건 때문에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 정착한 한인이나 이러한 사건이나 인종차별 혹은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 및 협박 경험에서 벗어나 있는 한인이주민에게는 4.29로 깨어나는 코리안-아메리칸 아이덴티티 담론은 낯설 수 있다. 백인화와 백인사회편입을 지향하면서 한인 사회를 꺼리는 개인주의적인 한인 엘리트들에게도 역시 4.29 담론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백인주도사회의 틀 가운데서 흑인, 히스패닉, 한인, 가난한 자들과 낙후된 지역과 경찰들과 그들에게 보호받는 부유한 동네 및 편파적인 주류 방송이 부닥친 이 힘들의 교차지점은 한국출신 미주 한인 즉 코리안-아메리칸들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응축된 응집점이다. 코리안-아메리칸의 삶은 이 아픈 지점을 소용돌이로 해서 이루어지고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파되고 전염되는 역동적인 운동성을 가져야 한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코리안-아메리칸 정체성은 형성 중이면서 동시에 운동의 필요성을 지닌 주제다. 

그리고 코리안-아메리칸 정체성들 가운데서 4.29로 촉발되어 나온 생존권 투쟁과 다인종사회에서의 한인의 역할과 위상 및 자기 권익의 신장을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새로운 자각은, 다양한 배경과 삶의 자리로 갖게 되는 여러 정체성 가운데서도 중심을 차지할만한 자의식 혹은 아이덴티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한 세대를 넘어가면서 이제 30주년이 되어 그 사건이 여러 사람에게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지만, 사실 그 일이 터지게 된 여러 힘의 작용은 여전히 그대로인 이 미주사회에서 4.29를 발전기 삼아서 우리 자신을 독려하고 점검해 보는 일은 매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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