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을 싫어하는 한 가지 이유, "어느 목사의 찬양이 한심하다"
요셉을 싫어하는 한 가지 이유, "어느 목사의 찬양이 한심하다"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2.05.1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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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집사 칼럼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아들 요셉은 사실 내게는 넘사벽의 인물이다. 그는 유능하고 성실한 인물이었고 가는 곳마다 요긴하게 쓰임을 받았다. 게다가 이성의 강한 유혹을 이길 만큼 신의가 있고 충성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비록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애굽 왕 바로의 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집사로 일했고, 억울한 감옥살이에서조차 간수장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마침내 애굽의 2인자인 총리까지 되어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며 그 무서운 7년 기근을 해결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여정만 보아도 그가 정말 대단한 인물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개인적으로 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근이 심해서 온 백성이 죽게 되었을 때 요셉이 한 행동 때문이다.

처음엔 백성들에게 창고의 곡물을 팔아 애굽의 모든 돈을 거두어들여서 바로에게 주었다. 그다음에 백성의 돈이 다 떨어지니 곡물로 그들의 가축을 다 거두어들였다.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창47:16)."

마지막엔 같은 방법으로 백성들의 토지까지 다 거두어서 바로에게 바쳤다. 그래서 결국 애굽의 온 백성은 사실상 바로의 농노가 된 셈이다. 나는 사실 이 대목에서 요셉의 처사에 일말의 분노마저 느낀다.

요셉이 이처럼 곡물을 이용해서 기아에 처한 백성의 재산을 마구 빼앗지 말고 차라리 그냥 무이자나 낮은 이자로 7년간 곡물을 빌려주고, 나중에 기근이 끝났을 때 조금씩 갚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 요셉의 막강한 직위와 권력을 고려할 때 그렇게 못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백성들이 저처럼 무일푼의 농노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시대적 또는 사회적 배경의 차이를 고려한 여러 다른 의견도 있겠지만 요셉처럼 유능하고 의로운 인물이 왜 곡물 수매만은 그 뛰어난 지혜를 제대로 다 발휘하지 못했을까 하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는 배고픈 백성들의 한숨과 고통을 제대로 못 느끼고 단지 바로의 배만 채워주었는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는 마치 오늘날 일부 엘리트 공직자들이 그들의 재능을 사용할 때 백성의 입장이 되지 못하고 고작 기득권 권력자들의 편에 서는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아무튼 근자에 어느 대형교회의 유명 목사가 윤 대통령을 요셉에게 빗대어 찬양하고 아부하는 꼴을 보고 문득 예전에 창세기를 읽다가 답답했던 옛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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