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집착한 일본인, 총에 집착하는 미국인
칼에 집착한 일본인, 총에 집착하는 미국인
  • 김동찬
  • 승인 2022.06.15 0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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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격 살인 사건은 미국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총기 소지권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총에 집착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의 칼에 대한 신봉과 집착도 만만치 않았다.

에도 시대 중기를 넘어서면서 긴 칼인 ‘카타나’와 짧은 칼인 ‘와키자시’를 허리에 차는 것이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정착되었는데, 도시인인 ‘쵸오닌’과 농민들 역시 외출할 때 와키자시를 차고 다녔다. 그리고 여행자들도 ‘도오추자시’라는 소도를 가지고 다녔다.

1828년 인구조사에서 당시 일본 인구가 2천 7백만 명 이상이었는데 그중 남자가 1천 4백만 명이었다. 일본 남자들 1명이 긴 칼이나 짧은 칼을 한 자루씩만 가지고 있었다고 쳐도 일본 전역에 1천만 자루가 넘는 칼이 존재했을 것이고, 집에 있는 식칼까지 친다면 일본의 칼 산업은 수천만 자루의 고정 수요를 가진 엄청난 시장이었다.

그러나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 지배했던 막부는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난 후 일본인들의 칼에 대한 집착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에게 신분이나 부적 같았던 칼이 늘 반란의 무기가 될 수 있었고, 또 사소한 다툼도 칼로 해결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늘 지배자들은 국민에게 칼을 빼앗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 시도가 바로 ‘카타나가리’(칼 사냥)라는 정책이었다. 100여 년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가 1588년 포고한 카 타나가리 명령이 첫 번째였고,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유신 후 일본 정부가 1876년 포고한 폐도령이 두 번째 카타나가리다.

도요토미는 종교적인 방법으로 무기를 녹여 대불전 건립을 한다면서 농민들의 무기 반납을 꾀했다. 그러나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카타나가리 정책을 계승하지 않았다. 그리고 1876년 유신 정부는 “군인, 경찰, 관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칼 착용을 금지한다”는 폐도령을 포고했다. 물론 이 법령도 착용을 금지한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게 소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칼을 자신의 명예로 차고 다니던 사무라이들과 가문의 부적처럼 차고 다니던 사람들은 모두 칼을 빼앗겼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칼을 차고 나갔다가 빼앗기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이 정책으로 일본의 사무라이도 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총을 사랑하는 미국인 보다 더 했던 일본인의 칼 애착 문화를 바꾸는 데 거의 200년이 걸렸다.

미국인들의 총기 소지는 영국 식민지 시절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권리로 여겼고, 영국과의 독립전쟁 시기인 1776년 “국민은 자신과 국가를 방위하기 위해 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헌법에 명시적으로 포함했다.

식민지 시절에는 식민지 정부의 치안 능력의 문제로 총이 용인되었고, 독립전쟁 당시는 전쟁을 위한 무장으로 총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치안 능력을 갖춘 가장 현대적인 국가이고 또 외국의 침략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법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은 매년 11만 명 이상이 총상을 입고, 이중 3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아군도 적군도 없는 심각한 내전의 수준이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은 무엇이든지 돈이 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미국 인구보다 더 많은 총을 가진 미국인들의 총기 집착은 어마어마한 총기 산업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총기협회(NRA)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매년 4백만 달러 이상을 정치인에 대한 로비로, 5천만 달러 이상을 정치활동에 쓰고 있다.

그리고 총기 소지 권리가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진보를 공격하는 보수주의의 헌법 수호 가치이자 이념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완전한 총기 금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약간의 규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가 총기 규제를 공약하는 대통령을 뽑고 상원과 하원 의원들도 과반수 이상 뽑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김동찬 소장 / <시민참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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