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실용과 중도를 금기어로 삼으라!
이재명 대표, 실용과 중도를 금기어로 삼으라!
  • 김기대
  • 승인 2022.08.30 0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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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는 없다

인터넷에는 20여개 정도의 질문을 던져 놓고 그 답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성향의 좌표를 찍어주는 사이트가 여러 개 있다. 얼마전 내가 테스트한 데 따르면 나는 자유주의 좌파다. 나와 이념 지형이 비슷한 사람은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다(붉은 원). 그 덕에 알게 된 캐롤라인 루카스는 영국 녹색당의 스타 의원이다. 이 도표의 가장 중심점에서 약간 오른쪽 상단에 있는 사람이 얼마전 퇴임한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고 왼쪽 하단에 있는 사람이 현직 스코틀랜드 수상인 니콜라 스터전(Nicola Ferguson Sturgeon)이다. 앙겔라는 권위주의에 가까운 중도 우파라는 말이고 니콜라는 자유주의에 가까운 중도 좌파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앙겔라 메르켈은 한국 정치 지형에서 보면 좌파에 가깝다. 이처럼 좌우라고 하는 것은 각 나라의 정치 지형에 따라 다르다. 가장 애매한 게 중도라는 지점인데 이 도표에서도 정중앙에 자리한 지도자는 없다. 어느 쪽으로라도 치우쳐 있다. 안철수는 가장 중앙에 자리잡겠다고 극중주의라는 정체 불명의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Political Compass 갈무리
Political Compass 갈무리
 

중도, 한국 정치 또는 언론에서 가장 강조하는 용어다. 중도를 따르지 않으면 좌파 또는 팬덤 정치로 폄하되든지 극우, 태극기 부대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도라는게 가능할까? 이런 테스트에서 주로 묻는 것이 경제, 환경, 여성, 가족, 소수자문제 등인데 진보라고 해서 모든 데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 부정적이면서 낙태는 긍정하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그 반대도 있다. 한국에서는 ‘통일’문제도 진보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다. 역대 진보 정부에서 친통일 정책을 폈기 때문에 통일이 진보로 분류될 수 있지만 ‘통일’을 평화에 방점을 찍느냐 ‘민족’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진보 보수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스코틀랜드의 니콜라 역시 스코틀랜드 분리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그를 좌파로 볼 것인가에 대해 얼마든지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보수로 분류되는 변희재와 정규재가 대선 이전부터 이후 현재도 계속 윤석열을 가장 극심하게 비판하는 것도 보수, 진보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한쪽 진영도 정의하기 어려운데 진영이 없는 중도라는걸 어떻게 정의하나? 정치를 길들이려는 언론, 또는 학자들이 쏟아내는허사(虛辭)일 뿐이다. 

성서에서도 중도를 놓고 고민한 흔적이 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면서(여호수아서), 덥든지 차갑든지 하라(요한 계시록)고 하지 않는가? 

이재명 의원이 더불어 민주당 새대표로 선출되었다. 77.77% ,역대 대표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선거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가 순항할지도 불투명하다. 일단 선거 과정에서 그를 향한 온갖 마타도어가 횡행했다. 상대였던 박용진 후보의 SNS에는 그를 향한 지지의 글보다 비난의 댓글이 더 많았다. 이를 두고 팬덤 정치니 특정계파독식이니 하는 볼맨 소리가 있었지만 모든 지지자를 팬덤으로 모는 행위는 민주당 지지자들에 대한 모욕일뿐 더러 특정계파 독식이라는 프레임도 옳지 않다. 특정 계파 독식이란 소수의 특정 계파가 당권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하지 77% 이상의 득표로 당선된 사람에게는 독식이 아니라 당심 표출이 옳은 표현이다. 

지난한 경선을 통과한 이재명은 그에게 덧씌워진 강성 이미지 탈피를 위해 중도니 실용이니 하는 말로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언론은 이런 주장으로 그를 압박할 것이며 후안무치가 극에 달한 검찰권력은 피의 사실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그로 하여금 조용히 살라고 압력을 넣을 것이다. 

이재명은 여기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세상의 어느 정권이 실용을 외면했는가? 보수 세력은 이른바 부자 감세, 낙수 효과를 통해 실제로는 기득권 중심의 정책을 펴면서 서민을 위한 실용을 이야기해 왔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이 말했던 기본소득도 실용이다. 홍보가 부족했기에 당내외 반발에 직면하고 거두어 들였지만 이재명의 기본 소득 스승으로 알려진 강남훈 교수(한신대)는 기본소득을 대선 과정에서 띄웠다면 선거 결과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본소득이 가진 정당성은 논외로 하고 어쨌든 그것도 실용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념 지향적으로 접근한 것이 패인이었다. 그러므로 실용, 민생이 보수 정당에서 내세우는 주장으로 굳어진 그 편견을 이재명은 깨야한다. 어줍잖게 보수이념적 실용에 끌려다니면 이재명의 미래는 없다. 

중도 논쟁으로 돌아가자. 2012년 10월 EBS는 다큐프라임을 통해 중도에 접근한 적이 있다. 여기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유명한 조지 레이코프는 ‘중도를 위한 이념은 없다’ 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중도’라는 말은 선거 과정에서 빨려 들어가기 쉬운,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코끼리’같은 말이다. 다큐프라임에서도 여러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중도’라는 이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의미없는 중도라는 가상의 이념에 집착하기 보다는 사안에 따라 중요도를 정하고 중요도에 따라 그것을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그러면 마이너한 사안에서는 동의하지 않아도 큰 줄기에서는 지지할 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인권과 평등은 진보 정당에서 당연히 다루어야 할 주제이지만 그것을 잘못 다룸으로써 민주당은 남녀 성대결을 조장하는 세력처럼 보였고 정의당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틈새를 이준석은 기묘하게 치고 들어 왔었다. 남녀 이슈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민주당은 그 이슈가 다른 모든 것을 잡아먹는 것같은 정책을 폈고, 국민의 힘은 그 빈틈을 노렸던 것이다. 이재명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등장한 ‘개딸’(개혁의 딸들)들의 페미니즘적 성향은 대선 이전 민주당과 정의당이 끌려 다녔던 극렬페미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민주당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이재명호가 ‘실용’과 ‘중도’없이 순항하기를 바란다. 여기서 헤쳐 나가지 못하면 이재명이 꿈꾸는차기 대권도 당연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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