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교에 작동하는 민족 이데올로기
해외 선교에 작동하는 민족 이데올로기
  • 박설희
  • 승인 2011.04.05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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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선교라는 스캔들'(2) 종교의 '민족화' 현상에 주목하여

한국에선 어느새 선교가 '스캔들'이 되어버렸다. 교회는 영혼 구원과 하나님나라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선교 행위를 벌이지만, 사회는 이를 배타적이고 오만한 개신교회의 횡포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연구집단 카이로스(CAIROS, Christian Association for Interactive Researches On Scripts)'는 포럼을 열고 한국 개신교 선교를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카이로스의 박설희 연구원은 선교운동이 일으키는 갈등의 근원과 성격을 추적하며, 해외선교 열풍이 지배적인 문화질서로 작동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담론적 차원으로 분석했다. 문화연구학회 동계 학술대회와 카이로스 포럼의 기획에서 발표한 글을 편집해,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각주 및 자세한 사항은 학회지에 수록된 원문을 참고하면 된다. 카이로스는 http://club.cyworld.com/cairos, http://facebook.com/cairosnet, twitter @cairosnet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편집자 주)


종교의 근본주의와 '민족화'

1970, 80년대 이래 전 지구적 차원의 현상으로 부활한 근본주의가 전반적인 세속화 속에서도 종교 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으로는, 이 운동이 "사회의 총체적 위기와 이데올로기적 공백 상황에서 단순하면서도 총체적인 논리로서 배제된 세계의 정체성 위기에 답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 국가와 근대화로 인해 약화된 전통적 유대를 대체하고 사회주의권 붕괴 등으로 급속히 약화된 좌파를 대신하여 일과 생존 수단, 연대 의식을 제공함으로써 효과적인 사회 통합 기제로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엄한진, <왜곡된 근대화의 산물로서의 이슬람근본주의> 147~167). 단적으로, 근본주의는 배제된 사회 집단의 유토피아이자 현세 지향적 종교 운동이고 반개혁적 성격을 지닌 사회 통합 기제의 성격을 띤다(엄한진: 85~86).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개신교 내 근본주의 성향의 선교 운동 또한 192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쇠퇴한 미국(식)의 근본주의가 197,80년대 전 지구적 차원의 종교 현상으로 부활한 역사적 맥락 안에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근본주의 선교 운동은 남·북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의 복음주의의 급성장, 일본의 신종교운동, 세계 각지의 이슬람근본주의의 현상, 인도의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의 현대적 부상과 궤를 같이 한다.

이를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근본주의 현상은 한편으로는 기성 종교, 혼합주의적인 신종교운동, 그리고 유사 종교 모두의 세계적 확산, 종교적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성장, 자유주의적 성서 해석 등의 신학적 경향,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종교의 상대화, 혁신, 다원화 경향에 대한 근본주의적 반발, 즉 변할 수 없는 근본 요소들의 보호를 주창하는 시도들로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엄한진, 2003: 3)

세계화의 종교적 결과와 정체성 운동

세계화로 상징되는 세계 질서의 변동은 한국 사회에도 IMF 외환 위기라는 경제 위기와 그것의 결과로서의 사회적 위기를, 더 나아가 정치적 위기와 국가, 즉 사회 체계 수준의 위기를 초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회의 총체적 위기와 이데올로기적 공백은 또 다른 흐름의 등장과 영향력을 확인하게 한다. 다양한 소수집단의 정체성과 함께 종교적, 종족적 정체성에 기반을 두며 급부상한 '정체성 운동'(mouvement identitaire)이 그것이다. 정체성은 개인이나 집단이 무언가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동일시하는, 즉 소속감을 느끼고 운명을 함께 하거나 의존하는 대상은 주로 친족, 종족, 종교, 국가이다.

근대에 들어서 종교적·민족적·국민적 정체성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의 주된 자원으로 작용했다. 근대적 국가의 태동 이후에도 이 정체성은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공고화의 기제로 지속적으로 동원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격한 사회 변동 과정에서 변동의 성격에 대한 해석의 근거로 기능을 하거나 위기의 극복과 도약의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종교적·민족적 정체성의 부상은 사회 변동에 대한 대응의 측면을 지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정치적 성격의 종교 운동, 민족해방운동, 극우주의 등 정치 사회 운동의 형태로 나타난다.

엄한진은 "정체성의 정치적 동원이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가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의 핵심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요소였듯이 최근의 정체성운동 역시 세계화로 상징되는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변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고 말하면서 두 요소의 결합을 주된 양상으로 꼽는다.

민족과 종교의 동시적 부상에 주목하여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종교-민족 관계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공시적, 통시적, 구조적, 요소들, 즉 근대사회 일반에서의 종교-민족 관계, 최근 세계에서의 종교-민족관계, 한국 근현대에서의 종교-민족 관계를 정리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종교의 '민족화'로 지칭한다.

종교의 '민족화'

종교와 민족의 결합은 현대의 종교 변동에서도 주된 양상을 이루는데 이것은 계보의 재구성 작업이라는 형태를 띤다. 즉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된, 혈연과 지역에 근거를 둔 계보, 또는 신화나 창조설화와 같은 상징화된 계보가 현대의 주된 사회 통합 기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공히 연속성과 공통의 기억에 기반을 두는 이 두 요소 간의 친화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엄한진, <일상문화읽기> 2004: 247~248).

서로 공통의 과거와 공통의 미래를 지닌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은 이렇듯 언어나 관습 등의 공통적인 문화적 특징이나, 분명하게 정의된 지리적 영역, 공통의 역사나 기원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민족 구성원이 외부인보다 더 가까운 유대감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믿음, 외부 집단에 대한 공통의 적대감 등에 의해 그 신념이 강화된다. 민족주의는 스스로를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변별적인 겨레나 민족으로 정의하는 집단이 표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겨레나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과 실천을 부추긴다.

이글에서 주목하는 것 또한 '선교사'라는 종교적 정체성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서로 다른 정체성의 요소들을 포함시키고 또 배제시키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종교적 요소가 민족적 정체성의 요소들과 결합하면서 그 담론적 배치를 만들고, 이를 통해서 '한국(적)인 선교사'가 어떻게 민족화되어 재생산하게 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이러한 동일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분석함을 통해서 세계화의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진행되는 권력체계를 가시화하고자 한다.

'묘비와 성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145-8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면적 13,224m2에 현재 417명(선교사 가족포함 수 145명)이 안장되어 있는 곳으로, 한국 개신교회의 성지로서 또한 민족사의 기념비적인 장소로서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다.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지를 관리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100주년기념교회'를 세위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베델(대한매일신보), 헐버트(YMCA, 헤이그 밀사), 캠벨(배화학당), 벙커(배재학당장) 및 엘러스(정신여학교), 무어(승동교회, 백정 해방운동), 헤론(제중원, 최초 안장), 스크랜턴(이화학당), 아펜젤러(배재학당, 정동교회), 언더우드(새문안교회, 연세대), 에비슨(세브란스병원)가족 등이 묻혀 있다.

이곳은 개신교인들에게 특히, 선교 단체 및 선교 관련 모임들에게 중요한 성지 순례 코스로서 인식되고 선호되는 장소이며, 양화진 견학은 대부분의 선교 단체들의 교육(훈련)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커리큘럼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은 포털싸이트에서 ‘양화진 견학’을 검색어로 하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음은 한 블로그에서 발췌한 ‘양화진 견학’ 리뷰의 일부이다.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들어온 묘비명은 켄드릭이라는 여자 선교사의 묘비명이었습니다. 그녀는 1907년 9월, 미국 남감리회의 파송으로 한국에 와서 황해도 개성에서 여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중 급성맹장염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한국에서 비록 8개월 동안 머물다가 이곳에서 죽었지만, … 루비 캔드릭 선교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게 줄 수 있는 천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그 천 번의 삶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겠습니다.'(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 Ruby Kendric) 무엇 때문에, 왜 이곳에 와서 묻혀야하는지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생명도 불사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로테이, "○○교회전폭팀-양화진견학"에서 인용)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의 문화적 기원에 누군가의 죽음이 있음에 주목했다. 125년 한국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죽음이 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인들은 해외 선교의 사명(당위)을 말하기 위해 그들의 묘비를 찾아간다.

"전주 예수병원 2대 원장을 지낸 포사이드 선교사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아시아의 복음화가 조선에 달렸기 때문에 지금 당장 조선 땅에 1,000명의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교회는 2만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며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선교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 한국 교회에 작년에 있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같은 고난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재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 땅에 20대의 젊은 나이에 찾아와 피와 땀을 흘리며 자신들의 가족을 이 땅에 묻으며 섬긴 선교사들의 사랑의 빚을 이제야 조금씩 갚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임○○○선교사, 2008년 2월 21일자, 칼럼 <십자가의 예수님, 십자가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위의 자료는 근본주의 선교 단체인 인터콥의 홈페이지와 '미션투데이'라는 인터넷 신문에 동시에 게재된 칼럼의 일부이다. 민족에 대한 상상이 민족의 안과 밖을 구분하고, 동포애로 똘똘 뭉친 하나의 공동체를 꿈꾸게 만드는 것처럼, 이 글에서도 '교회'를 위해 일치단결하며 열심인 미국-한국 선교사라는 하나의 항과 아프간 피랍과 같은 고난이라는 또 다른 항이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찾아와 피와 땀을 흘리며" 결국 "가족을 이 땅에 묻으며 섬긴 선교사"의 죽음에 대한 비장함이 있다. 헌신한 "선교사들의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세계 선교를 위해 이 땅(한국)에 교회를 세운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이다.

민족이라는 기표의 역할은 이렇게 '한국을 죽기까지 사랑한 외국인 선교사-한국의 개신교인-한국인 선교사'에게도 작동하기 시작한다. '교회', '복음' 등을 통해서 등가화 되고 총체화 되는 이러한 새로운 범주의 구축은 공통의 과거와 공통의 미래를 공유하는 혹은, 그것을 욕망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 후속 기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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