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마지막 가르침, 티쿤 올람
발터 벤야민의 마지막 가르침, 티쿤 올람
  • 김기대
  • 승인 2023.04.19 0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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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형석이 반드시 봐야 할 트랜스아틀란틱

발터 벤야민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마르크스 계열의 철학자, 문화비평가, 정치신학자 등등.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를 피해 마르세이유를 거쳐 피레네 산맥의 스페인 -프랑스 국경도시까지 갔다가 도피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도피 중 신경이 잔뜩 날카로울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더니 발터 벤야민의 사상을 좋아한다며 여러가지를 질문했다. 벤야민은 그의 질문이 놓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재의 산산조각난 세상을 다시 맞추는 과정을 티쿤 올람이라고 설명했다.  죽기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티쿤 올람이었다. 

티쿤 올람(Tikkun olam) 세상(Olam) 고친다(Tikkun) 의미다. 3세기 미쉬나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초기에는 '우상타파'로 사용되었다가 신비주의 카발라 문헌에서 고친다는 말은  하나님의 불꽃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유대 계몽주의로 불리는 18세기 하스칼라(Haskalah)유대인들이 주변 사회와  문화에 융화될 것을 주장한 운동인데 오늘날의 후기 하스칼라 운동에서는 티쿤 올람이  사회정의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힘의 원천이 티쿤 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마르세이유에서 구조선을 탄 난민들. 사진 출처 국제 구조 위원회
마르세이유에서 구조선을 탄 난민들. 사진 출처 국제 구조 위원회

 

넷플릭스 7부작 드라마트랜스아틀란틱(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 이하 트랜스)’ 2 내용이다. 드라마는 1940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 괴뢰정권인 비시정부가 출범하고 동유럽에 집중되어 있던 유대인 색출작업이 프랑스에서도 본격화되자 그들 특히 학자, 예술가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결성된 긴급구조위원회의 이야기다.  버니지아 출신의 32  젊은 언론인 배리언 프라이를 중심으로 시카고 부호의 상속녀인 장로교인 메리 제인 골드, 반나치 운동의 선봉에 섰던 베를린 출신의 유대인 알베르트 허쉬만이 의기 투합해 난민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프라이는 미국 영사관과 비자업무를 맡고, 제인 골드는 돈을 대고 허쉬만은 실행에 옮겼다. 이들의  활약으로 2000 가량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드라마의 출연진은 화려하다. 배우들이 유명배우라는 말이 아니고 실제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발터 벤야민 말고도 한나 아렌트, 초현실 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 마르크 샤갈 등등이 도움을 받았다. 도피자는 아니었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구겐하임 가문의 페기 구겐하임도 출연한다.

아버지가  타이타닉 침몰 희생자인 페기 구겐하임은 수많은 남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그를 소개한 어느 기사의 제목이미술 중독, 섹스 중독 정도다.  드라마에서는혼란한 시국에 재력을 바탕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페기는 작품들을 모아 1976 이탈리아 베니스에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이라는 미술관을 개관한다.  

발터 벤야민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장면에서 한나 아렌트는 구조 위원회에 도음을 요청하지만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아직 유명해지기 전이라는 뜻인지 하이데거와의 불륜관계 소문 때문인지는 불투명하다.

드라마는 유대인 구조를 다룬  숭고한 드라마이지만 숭고함에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 처럼 비장미가 흐르는 것도 아니다구조 위원회 사람들의 영웅성같은 것도 없다. 오히려 그들을 돕던 호텔 종업원 이름없는 이들의 활약이 부각된다.

제인 골드의 돈으로 마련된 마르세이유의 대형 주택빌라 에어벨 파티에서 초현실주의 화가답게 에른스트는 행위예술을 벌이며 페기도 그에 동참한다. 엄혹한 시기에도 사랑과 낭만이 존재했다.  이혼한 에른스트는 아내에게 영사관이 비자를 주기로 했다며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가 면박만 당한다. 아무리 나치 치하라 해도 싫은 사람과는 함께 없는 것인지아마 아내는 유대인이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훗날 에른스트는 페기와 결혼한다.

2 대전 초기 중립을 지키던 미국의 입장에서 이들의 활동은 부담이 되었다. 결국 젊은 언론인 프라이는 미국 영사관의 압력으로 프랑스에서 추방된다. 프라이는 동성의 사랑을 나누고 있었는데 영사관은 구조위원회의  인도주의적 입장을 문제삼을 없으니 이것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프라이는 1994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의해 사후에열방의 의인으로 명명되었다. 기념식에서, 국무장관 워렌 크리스토퍼는 2 세계대전 동안 프라이에 대해 일에 대해 사과했다. 프라이의 추방 이후 허쉬만, 제인 골드 모두 추방되었지만 다행히 이들 모두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구조 대상자 최고의 VIP 발터 벤야민이었다. 하지만 그가 즐기던 해시시(마약)때문인지 젊은 시절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너무 놀았는지 50 안된 나에에 저질 체력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한다그가 피신하던 길은 벤야민 루트라는 트레킹 코스를 개발됐는데  8마일이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마르크스주의자 답지 않게 메시아적(물론 유일신적 의미의 메시아는 아니다) 개입을 이야기했던 벤야민에게 티쿤 올람은 무엇이었을까? 히틀러라는 우상 밑에서 신음하는 세상을 정의로 구원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을까그는 파국(파멸)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티쿤 올람의 전제는 바로 그의 시대를 파국으로 규정하는 판단일 것이다. 파국성을 인지 못하고지금이 좋사오니하는 이들에게 메시아적 개입은 없다.

102 철학자 김형석은 중앙일보 칼럼에서 그의 나이 20(1940년으로 추정됨일본유학을 갔을 일본사람들의 근면함에 놀라 식민지가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썼다. 그러니 우리가 반성하고 과거를 극복하잔다~ 무슨 X소린가? 수탈당하는 자의 파멸감은 생각안하고 겨우 성실타령이라니

작가 프리모 레비는 2차 대전 중 그의 전공 덕분에 아우슈비츠의 화학 연구실에서 잡일을 했다. 같은 방에는 2명의 독일 여성이 연구원으로 함께 일했다. 여성들은 젊고 착했고 무엇보다  레비에게도 친절했다. 어느날 두 여성이  레비가 없는지 알고 한 이야기에 레비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실망했다. 여성 둘은 레비를 가리켜 "대학공부를 한 사람인데도 왜 저렇게 더럽고 냄새가 나지?"라고 했다. 유대인이면 배우나 못배우나 모두 더럽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독일이 유대인들을 강제로 구금하고 인간이하의 대접을 하는 데서 나온 불결함이라는 인식을 그 여성들은 아우슈비츠 그 안에 있으면서도 전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리철학자인 그의 윤리 수준이 딱 이 독일여성들과 같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역사적 배경은 무시하고  그저 착하고 깨끗하게 열심히 살자는 초등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독교인인 그에게 생태와 평화와 공정이 무너지는 시대의 파국은 보이지 않는 같다. 그러니 티쿤 올람을 기대할 없다. ‘철학자로서 그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 될까? 제발 일본을 본받자!”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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