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형 복음주의 유통기한 다했다"
"87년형 복음주의 유통기한 다했다"
  • 정재원
  • 승인 2012.02.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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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복음과상황] 편집위원, "사회참여·교회 갱신 모두 놓쳤다"

▲ 정정훈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은 '87년형 복음주의의 종언과 복음주의의 새로운 전화(轉化)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소장 김창락)에서 강연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정정훈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은 2002년 한국 복음주의의 이념적 토대인 기독교 세계관을 비판하며 이른바 '기세 논쟁'을 주도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올해 정 위원은 "한국 복음주의, 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는 화두를 제시하며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쇄신 논의 한가운데 서 있다.

정 위원은 <복음과상황> 1월 호에 "한국 복음주의, 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한 데 이어, 1월 30일에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소장 김창락)에서 '87년형 복음주의의 종언과 복음주의의 새로운 전화(轉化)를 위하여'를 주제로 강의했다. 정 위원은 발표한 글과 강연에서 87년에 태동한 한국 복음주의 운동이 오늘날 여전히 명망가에 의존하고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현장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존재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은 87년 민주화 이후 전개된 보수 기독교인들의 사회참여 흐름을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으로 규정했다.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은 87년 12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창립과 87년 대선 정국 때 결성한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로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이 "수구적 기독교와 일정한 구분선을 그으면서도 NCC를 비롯한 진보적 기독교 운동과는 명백하게 차별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기독교 진영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또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이 복음 전도 못지않게 사회참여와 교회 갱신이 중요한 사명이라는 사실을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87년형 복음주의 패러다임은 유통기한을 다했다"는 게 정 위원의 견해다. 오늘날 복음주의 운동이 자신들이 주력한 사회참여와 교회 갱신 영역에서 무능력하다는 게 이유다. 정 위원은 복음주의 진영의 사회참여가 "구체적 실천에서 현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현장이었던 용산 참사, 홍대 두리반, 한진중공업, 제주 강정 등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반문했다. 그는 오히려 한기총, 기독당 등 수구적 우익 보수 세력이 사회참여에 더욱 공세적이고 적극적이며 구체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은퇴한 1세대 리더십 이양 실패

정 위원은 이러한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의 위기를 세대론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복음주의 운동을 크게 세 세대로 분류했다. △1세대는 손봉호, 이만열 등 보수 신앙 성향의 개혁적 전문직 명망가와 이들을 지원하고 대중적 지지 세력을 확보한 홍정길, 옥한흠, 김진홍 등 범 강남 중심의 새로운 중대형 교회 목회자 △2세대는 복음주의 운동의 이론을 심화하고 진보적 기독 청년을 지도한 김회권, 고직한, 한철호 등 진보 개혁 성향의 젊은 목회자 △제3세대는 황병구, 양희송, 구교형 등 진보 개혁적 성향의 젊은 청년 대학생 리더들이다.

1세대가 일선에서 은퇴하면서 발생한 리더십 공백을 2, 3세대가 대체하거나 극복하지 못했다고 정 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복음주의 운동의 대중적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상징적 권위의 상실과, 대중과 재정을 동원할 수 있는 지도자의 공백"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이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으며, 애초에 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운동 자체가 정체되거나 위기에 처하는 패러다임이었다고 비판했다.

▲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안병무홀을 가득 메웠다. 참가자 대다수는 87년 형 복음주의 운동이 새롭게 전화(轉化)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스스로 운동 만드는 자생력 길러야

대다수의 포럼 참가자들은 87년형 복음주의 운동의 한계에는 공감하면서도, 운동의 전화(轉化)와 새로운 주체 형성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은 "현재 복음주의에는 그러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개척자들, 아름다운마을공동체, <뉴스앤조이>와 같은 87년형 복음주의가 아닌 진영에서 새로운 주체가 일어난다"고 주목했다. 이들은 명망가나 중대형 교회 목회자에 의존적인 운동에서 탈피하여 운동 기반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가 보여 주는 것처럼 "복음주의자들도 어른 눈치를 보고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정 위원은 주장했다. 실제로 그가 복음주의 운동의 주력들을 실명 비판할 수 있던 것도 자신이 복음주의 진영의 인맥으로부터 자유롭고 교회로부터 받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위원은 운동의 방향에서 구체성과 현장성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복음주의가 "투쟁의 현장에서 연대하는 것보다 '우리'끼리 큼직한 수련회를 여는 것에 더 열광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제로 용역과 대치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의 의미를) 질문하고 그 질문으로부터 성서와 신학자의 글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87년형 복음주의를 둘러싼 고민과 논쟁은 계속될 예정이다. 논의를 촉발한 <복음과상황>은 2012년 연중 기획으로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혁신' 담론을 이어 갈 계획이다.

정재원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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