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하늘뜻교회, 지역 사회 고민하는 '평신도 강좌'
뉴저지 하늘뜻교회, 지역 사회 고민하는 '평신도 강좌'
  • 전현진
  • 승인 2013.07.0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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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뉴저지 펠리사이드 팍. 뉴저지에서도 그 규모가 큰 편인 한인 타운이다. 그중 브로드 에비뉴는 그 한인들이 상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미국인지 한국인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한글 간판이 즐비하다. 빵집부터 식당까지 한인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한가로이 상점들을 스쳐 가는 이들은 대부분 한인들이다. 그 사이로 서점이 보인다. 한국 도서를 주로 취급하는 이 서점은 매주 일요일, 교회가 된다. 뉴저지 하늘뜻교회(한재경 목사)의 예배 처소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서점은 안식처다. 빼곡한 책을 봐도 마음이 풍성하다. 한국 책이 귀한 이민 사회에서 그 반가움은 더 크다. 평범한 서점은 예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안식처가 된다. 서가를 배경 삼아 앉은 교인들은 강대상으로 변한 계산대 너머에서 설교를 전하는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다.

▲ 한재경 목사.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2006년 하늘뜻교회를 개척한 한재경 목사는 이 서점에서 일한다. 평일에는 마음의 양식을, 주일에는 영혼의 양식을 전하는 셈이다. 뉴저지 서밋(summit)에서 한 목사의 가족이 모여 예수영성·교회개혁·사회정의을 기치로 출발한 하늘뜻교회. 7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교회는 여전히 소박하다. 교인은 10여 명 남짓.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기다 올 초부터 이 서점에 정착했다.

<미주뉴스앤조이>가 하늘뜻교회를 찾은 6월 30일에는 '평신도 강좌'가 열렸다. 평신도 강좌라면 으레 '평신도를 대상으로 목회자들이 하는 강좌'를 연상하기 쉽다. 강대상에 선 이는 목사가 아니었다. 이날의 평신도 강좌는 '평신도가 전하는 강좌'였기 때문이다.

이날 평신도 강좌를 진행한 최 집사는 '나는 '교회'를 다니고 싶다 - 세이비어교회가 주는 시사점'이라는 주제를 교인들과 나눴다. 5월 26일 1차 강좌에 이은 두 번째 시간이다. 최 집사는 워싱턴DC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이비어교회와 이 교회의 공동체 '토기장이의집'(The Potter's House)의 사례를 소개하며 하늘뜻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교인들에게 물었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최 집사는 강좌가 아니라 정보를 나누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나눈 '정보'에는 교회를 향한 평소 그의 고민이 묻어났다. 그는 '나는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주제가 "진정한 의미의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종교적 문화 양식으로만 존재하는 교회가 아닌,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신앙의 공동체가 아닌 복음의 본질을 살아내는 교회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최 집사는 토기장이의집 사례를 전하면서 그 희망도 내비쳤다.

워싱턴 빈민가에 터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세이비어교회가 품은 사회정의와 삶을 바꾸는 신앙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는 곳이 토기장이의집이다. 최 집사는 토기장이의집이 매주 다른 평신도 설교자들이 나서 지역 사회의 다양성을 흡수하고 복음과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고 했다. 결국 교회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to do for somebody)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어주는 것(to be with somebody)인 셈이다.

이론적이고 도식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예배드리는 것이 교회의 의미라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이미 흔하다. 문제는 현실과 유리된 고백이 교회를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많은 이민 교회가 목회자 개인의 개성에 따라 교회의 분위기가 결정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담임 목사인 셈이다. 최 집사는 이런 교계 풍토에서 하늘뜻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고민을 던진 것이다.

평신도 강사의 진지한 나눔을 교인들은 진지하게 경청했다. 이들이 '우리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뜻교회는 한국의 협동조합 모델을 참고해 한인 사회에 적용하려고 고민하고 있다. 세이비어교회와 토기장이의집이 보여주는 커피 하우스 처치(Coffe House Church) 모델을 지역 사회에 세워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이 조그만 교회는 건강하고 참된 교회의 의미를 되뇌이는 고민하는 교회인 셈이다.

▲ 한재경 목사가 강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한재경 목사는 평신도들과 함께 고민하며 지역 사회에 진정한 교회를 서있고자 한다고 말했다. 늘 모자란 재정이지만 대부분의 헌금은 선교와 구제에 사용한다. 운영비를 줄여 허리띠를 졸라 맨다. 한 목사는 하늘뜻교회가 예배드리고 있는 서점 같이 예배의 자리에 이웃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신앙과 사회정의가 함게 자라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많은 소형교회들이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모습은 흔하다. 소형교회 나름의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 하늘뜻교회는 작은 교회 속에 작동하는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하늘뜻교회는 작지만 복음의 길목이 되어 오고가는 지역 이웃들과 함께 있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이 작은 교회의 고민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전현진 기자 / jin23@n314.ndsoftnews.com

 

이웃과 함께하는 우리, 교회 - 한재경 목사

일요일 오후가 되면 뉴저지 한인 타운의 중심에 거룩한 공간이 열립니다. 작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교회, 하늘뜻교회의 예배가 열리는 곳입니다. 세속의 한 복판에서 거룩을 꿈꾸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 듭니다. 장사를 하던 곳은 예배 처소로 변신합니다. 손님과 거래가 이뤄지던 계산대는 말씀을 증언하는 설교단과 십자가와 촛불로 장식된 제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치 당신이 서신 곳에 거룩의 자리를 펴셨던 예수처럼 말입니다. 땀 흘리며 일하고 때론 다투고 화를 내고 아파하는 그 자리에 교회라는 두려운 자리를 폅니다. 갈릴리의 시끌벅적한 시장바닥, 무화과나무 그늘, 심지어 혼인 잔칫집 그 어느 곳이라도 거룩함을 펴시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룩은 공간이 규정하는 세속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예배엔 마이크가 없습니다. 호수가 바람을 타고 산상수훈을 설(說)하셨던 예수님처럼, 뱃심으로만 전합니다. 하지만 뱃심 밑바닥에 깔린 삶이 증언자와 듣는 이의 진실을 보증합니다. 한 주 동안 살아온 삶이 예배의 그릇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가 예배 전체를 아우르는 힘입니다. 성서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삶은 주기도문에 집약돼 있습니다. 주기도 송으로 우리 모두는 예배로 들어갑니다.

또한 7월부터 주기도문 학교가 영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4주간 열립니다. 8월에는 퀘이커 공동체인 펜들힐로 침묵 수양회를 갑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목사와 평신도가 함께 만들어 갑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학교는 옆집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열립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에 마음이 다 가 있습니다. 교회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경험되길 기대합니다. 아름다운 조명과 작은 테이블이 선생님의 열정과 더불어 아이들의 신앙적 미래를 창출합니다.

오늘은 <평신도 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나는 교회를 다니고 싶다.” 진정한 교회에 대한 주제로 평신도가 강사로 섭니다. 평신도는 건강한 교회의 희망입니다. 교회의 운영과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운 이유가 그 중 하나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영양분을 대고 있는 사두개인이 문제였습니다. 평신도 강사는 진실되고 간절하게 교회(The Church)에 대한 희망을 쏟아 냅니다.

예배는 상인들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자유롭게 가게 문을 여는 것처럼, 교회와 예배는 그분들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강정마을과 쌍용자동차의 아픔이 있는 고난의 현장에 한국의 크리스천 형제자매들은 교회의 제단을 펴 주었습니다. 고난 받은 자들과 ‘함께 있어’ 줍니다. 단단한 신앙 양심과 성숙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웃의 고난을 신앙으로 붙들어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장 한 복판에 자리를 편 이유입니다. 상인들과의 관계에서, 경제가 하락하면서 감당해야 할 짐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같이 아파하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경쟁해야 하는 생존 싸움에 지쳐버린 그분들을 향해 우리 귀를 열어 놓으면서 동시에 나누고 돌보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늘뜻교회는 예수영성, 교회개혁, 사회정의, 이 세 가지가 정체성이 기둥입니다. 예수영성을 통해서 교우 각자는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습니다. 이 소명은 각자 삶의 깊은 어둠을 통과한 생명수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존재하는지의 이유입니다. 이 소명은 평신도 사역이라는 다양한 꽃을 피웁니다. 이 사역이 교회됨을 규정합니다. 교회는 모임에 있지 않고, 모이는 사람들의 사역에 있습니다.

교회가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꿈꾸는 작은 자들이 여기 있다고 소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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