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추수감사절에 숨겨진 비극의 역사
미국 추수감사절에 숨겨진 비극의 역사
  • 강희정
  • 승인 2007.11.16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 엿보기 10 - 미국 추수감사절 기원에 대한 엇갈린 해석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미국의 학교, 관공서 또는 기업체에서는 추수감사절 전후의 수요일과 금요일을 휴일로 정하여 주말과 주일을 포함한 닷새 동안의 휴가에 들어간다. 이때 사람들은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모여 칠면조 고기와 다른 여러 음식들을 먹으며 명절을 지낸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느낌이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1789년에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11월의 첫째 목요일을 기념일로 선포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 단위로 열리는 축제에 불과했다. 그것을 국가 명절로 제정한 것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1863년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했다. 그 이듬해부터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국가 명절로 선언하였다. 그러다가 추수감사절이 연방정부에 의해 법적인 공휴일로 공표된 때는 1898년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신에 대한 감사와 다른 인종 또는 타문화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독교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전통적인 것으로서 미국 주류의 생각을 반영하며, 미국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나 아동 도서들은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자랑스러운 미국 형성 초기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일부 교육자들과 학교에서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나 미국 형성 과정 초기의 역사에 대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하여 보다 진실에 가까운 역사 해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초기 역사는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이주자들과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전통적인 역사 해석은 원주민들의 시각이나 해석이 배제된 채 유럽계 백인 이주민들의 입장만이 반영되어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대한 해석들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관련한 미국 전통적인 해석을 먼저 살펴보자. 미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7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02명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청교도들이 1620년 9월 6일 영국의 플리머드를 출발하여 두 달간의 항해 끝에 11월 말에 미국의 매세추세츠 지방에 도착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종교적, 시민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신이 예비하신 땅'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 첫 추수감사절을 묘사하는 그림 ⓒ christiananswers.net
그러나 영국에서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하여 겨울을 맞은 청교도들은 추위와 식량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해 봄을 맞기도 전에 절반가량이 죽게 된다.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백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왐파노악(Wampanoag)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곡식을 파종하여 여름에 대풍작을 거두게 된다.

이에 크게 감사한 청교도들은 1621년 12월 13일에 이 원주민들과 함께 신에게 감사하는 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유럽계 이주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칠면조·호박·옥수수·스콰시 등을 대접했다고 하며, 인디언들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추수감사절 축제에 참가하여 함께 즐겼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미국 추수감사절 축제에 관한 미국의 전통적인 해석이다.

당시에 살았던 청교도 에드워드 윈슬로우(Edward Winslow)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이때 왐파노악 부족의 왕 마사소이트(King Massasoit)가 90여 명을 데리고 와서 3일 동안 축제에 참여하였으며, 이들 부족은 사슴 다섯 마리를 잡아와서 연회 음식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 원주민들과 유럽계 이주자들 간에 평화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미국 주류의 전통적인 해석에 대하여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의 꾸며진 신화에 불과하다는 반박을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소설가인 마이클 도리스(Michael Dorris)에 따르면,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제공했다고 하는 음식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고유의 것으로서, 당시 유럽계 이주자들은 그런 음식들을 전혀 본 적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근거를 대고 있다.

제임스 로이웬(James W. Loewen)은 자신의 글 <The truth about the first Thanksgiving>에서 전통적인 미국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관한 삽화들이 그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추수감사절 그림에 나타나는 원주민들은 거의 옷을 벗고 있고 유럽계 백인들은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같은 계절에 서로 전혀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왐파노악 원주민들이 머리에 수많은 깃털로 장식을 하고 있는데, 원래 그 부족은 깃털을 한 개만 꽂아 장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통적인 해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이들은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서서 유럽에서 건너 온 이주자들을 기독교 침략자로 규정하며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먼저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원래 오랜 동안 추수감사절을 지켜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일상에서 얻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였으며, 한 해에 여섯 차례의 추수감사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추수감사절을 지켜왔었다는 사실을 생략하고 있는 전통적인 해석은 기독교 침략자들이 이 전통을 미국 원주민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원주민들과 침략자들 간의 만남에 대해 사탕발림식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전통적인 교과서에서, 스콴토(Squanto)와 같이, 원주민으로서 유럽계 이주자들을 위해 통역자로 활동하며 그들을 돕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유독 강조하는 것이 문제가 많다고 한다. 스콴토와 같은 일부 원주민들이 침략자들을 돕게 된 데에는, 이들이 어릴 때 납치당해 유럽에 강제 이주당하여 기독교 교육과 세례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과 같은 이야기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럽계 이주자들 간의 우정과 평화적 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이면에 있는 이들 간의 전쟁과 유럽계 침략자들이 벌인 살육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있는 데서 심각한 역사적 왜곡을 야기한다.

왐파노악(Wampanoag)이라 불리던 원주민 부족은 처음에 유럽계 이주자들을 돕고 그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으나 마사소이트(Massasoit)가 죽고 나서 대량 살륙을 당하게 되어 그 씨가 마르게 된다. 마사소이트의 둘째 아들 메타콤(Metacom)이 토지 문제로 인하여 유럽계 이주자들과 전쟁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메타콤의 영국식 이름은 필립이며, 이 전쟁은 흔히 '필립 왕의 전쟁'이라 불린다.

메타콤은 유럽인들과의 전투에 들어가서 초기에는 유럽계 이주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1년간의 전투 끝에 밀고자의 배신으로 피살당하게 된다. 그의 머리는 장대에 꽂힌 채 25년 동안이나 플리머드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추수감사절을 국가적 명절로 제정한 이유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 일례로, 링컨이 북부의 승리로 마감한 게티스버그 전투 뒤에 추수감사절을 제정한 까닭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국가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추수감사절 제정 후, 한 달 뒤에 38명의 다코타 족의 사형 집행에 서명했다고 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관하여 미국 주류의 입장을 반영하는 전통적인 해석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비판론들은 서로 간에 접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옛날 유럽계 이주자들에게 살육을 당하여 인종 말살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잊혔던 목소리가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의 목소리가 미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국가 형성 과정에서 저지른 '원죄'를 인정하게 하고 미국의 전통적인 역사 해석을 바꾸기에는 너무도 미약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