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에게 유감 있다.
오강남에게 유감 있다.
  • 지성수
  • 승인 2015.07.16 08:4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지성수 목사 ⓒ <뉴스 M>

2006년도에 시드니에서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노인들만 몇 사람  모이는 시드니 유니테리언 교회를 감언이설로 꼬득여 5,000불을 갈취(?)하여 오강남 교수를 초청해서 세미나를 가졌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막상 돈을 낸 유니테리언 교회의 호주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할 때 그는 부흥사 설교 비슷한 예수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나는 자기가 누군줄도 모르는 무관심한 호주 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이니 만큼 신경 많이 쓸 필요도 없는 대강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와 나흘간 함께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에 내린 결론은 “아! 내가 이 분을 오해했었구나!” 였다. 결국 비교종교학자로서 그의 목표는 기독교의 경계를 끝없이 허물어 버려서 결국은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날카로운 수술용 칼을 가지고 인체를 해부하는 외과 의사처럼 학문적 도구를 가지고 기독교를 해부하는 철저한 인문주의자였다. 

그런 그의 의도는 태어나서 고등학교(안식일교회의 삼육고등학교)까지 보수적 근본주의 섹트인 안식일 교회에서 자라난 그의 신앙적 성장 배경과 상관이 있는 것이었다. 거의 20 년전에 그와 내가 만났던 곳도 안식일 교회 웹사이트에서였다. 

그런 그의 신앙적 경험은 보수적 기독교에 대한 애증을 넘어서 기독교에 대한 피해의식을 심어 준 것 같이 생각되었다. 성장과정에서 안식일교회의 막장 근본주의에서 오랫동안 피해를 본 그분의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도 된다.

기성교회에 대한 염려가  많지만 포기는 않는 나에 비해 오 교수는 교회 자체에 대해서 전혀 애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 교수와 같이 학문적으로 매우 정직하지만 기독교에 대하여 애정이 식은 사람들에게 나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정직한 학자들에 의하여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재하지 않았다는 증명이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나는 그것이야말로 진짜로, 대단히, 정말로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혀 본질과 달라진 예수를 쫒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를 마련해 줄 터이니까. 

티모스 프리크라는 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쓴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2002년도에 동아일보 출판부에서 출판되어 초판이 순식간에 팔려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기총에서 동아일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협박을 해서 동아일보 측에서 알아서 기어 출판을 포기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은 예수에 관한 성경의 보도들은 모두 고대 세계의 신비종교에서 이미 표현되었던 신화와 표상들을 유대교적으로 각색한 것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자주의를 믿는 기독교가 신화적인 기독교를 박해하고 승리한 결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사실에 근거한 종교인 것처럼 착각해 왔다는 것이다. 역사가 신화로 바뀌고 신화가 역사로 바뀌는 일을 흔히 있는 일이다. 

기독교가 원래 영지주의 신화로부터 유래한 종교임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특히 고대 세계에 유행했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철저히 조사한 후에 이를 성경과 꼼꼼하게 대조한다. 저자의 지식이 얼마나 해박하고 논리가 얼마나 치밀한지 신학적 지식이 탄탄하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한기총의 염려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주장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었다. 독일의 "종교사학파"를 비롯하여 "탈신화화"를 주창한 불트만에게 이르기까지 이런 주장은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고 최근에는 미국의 "예수 세미나" 학파들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백보를 양보해서 가능한한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성서에 보도된 예수의 모습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2,000년 전 유대 땅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기성종교를 비판하고 기득권을 거슬러 무섭게 비판하고 도전하다가 처형을 당한 젊은이가 한 사람 쯤 어찌 없었을까? 

그런 일은 인류역사에 항상 있어 왔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일들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들은 개피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그런 길을 걸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2,000년 전에 자신의 전 존재를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향했던 한 젊은이가 영원한 스승이요.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예수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지금의 철수, 영자, 용팔이처럼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를 테면  ’신사동의 용팔이‘처럼 구태어 ‘나사렛의 예수‘라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 청년의 이름이 예수여도 좋고 철수여도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보낸 존재이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움직였고 
종당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그 분,
그가 나에게는 바로 성서에 소개되어 있는 예수인 것이다.

성서의 예수가 2,000년이란 세월동안 얼마나 각색되고 편집되어 왔는가 하는 것조차도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원이란 개념 속에서는 2,000년이란 시간의 차이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2,000년 전의 척박한 유대 땅에서 살다가 십자가를 진 젊은 청년 예수! 그는 지금도 2,000년의 세월을 넘어서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그대로 현실에 머물지 못하도록 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 그는 나의 삶을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오 교수에게는 예수도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휼륭한 분들 중에 하나일뿐, 그것도 역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유감이 없을 수 있겠나? 

지성수 목사 / 군종, 교목, 원목, 빈민목회, 산업목회, 개척 교회, 이민 목회등을 거쳐서 지금은 현장 목회를 하고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7-18 01:08:23
목사님!
교회가 돌 맞는 것은 같이 맞을 수 있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예수님을 난도질 하는 것이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저도 오교수님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를 경험하는 것이 어떻게 글로 되겠습니까? 연구로 되겠습니까?
그래서 설명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고, 본인의 체험으로 간직한 예수님이기에 맹목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균형을 잡게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안개비 2015-07-16 18:36:20
결국 지성수 목사도 오강남 교수가 주장하는 <"그런" 예수는 없다> 것을 본인의 글에서 인정하고 있는 셈이네요. 그런데 본인도 인정하는 내용에 '유감'이 있다는 것은 또 무슨 궤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