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을 노래하는 목사
아리랑을 노래하는 목사
  • 이계선
  • 승인 2015.07.25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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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이계선 목사 ⓒ <뉴스 M>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노래가 돌섬의 아침을 흔들었다. 돌섬농장 울타리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던 새들이 놀라 날라가 버렸다. 노래 소리를 듣고 서양아가씨들이 몰려왔다.

그날은 아파트옆에 있는 50개의 조각농장에 간판을 다는 날 이다. 미대출신 아가씨들이 간판을 그려주려고 왔다. 우리는 둘째딸 은범이가 만들어온 간판을 달고 있었다. 15평짜리 작은 밭에는 양철간판 “Eden”을 달았다. 30평 큰 밭에는 두툼한 나무판을 우벼 파서 만든 “Arirang”을 매달았다.

일행중에 먼저 도착한 흑인아가씨가 간판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간판이 예술작품이군요. 그런데 아리랑이 무슨 뜻 이죠?”

“아리랑은 1800년간 불려온 한국의 민요입니다. 5천년 한국역사를 담고 있지요. ”

흑인아가씨는 아리랑의 멜로디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내가 한 곡조 뽑아본 것이다.

“짝짝 짝짝. 멋진 농장 콘서트입니다. 목소리가 웅장한 대형테너군요”

뒤늦게 도착한 아가씨들이 박수를 쳤다. 노래 잘한다고 칭찬받는 게 처음이 아니다. 교회에서도 그랬다. 내가 나가는 미국교회는 천정이 높아 입만 열고 있으면 목소리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올라간다. 찬송 할 때마다 무대에 선 기분이다.

▲ 농장간판 '에덴' '아리랑“

나는 1절은 유니존으로 따라 부르다가 2절부터 테너로 나간다. 이교회는 찬송후렴이 압권이다. 포르테로 두세번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대장간의 합창처럼 지축을 울리는 함성으로 클라이막스! 나는 폭포를 뛰어오르는 송사리처럼 하이테너로 클라이막스에 합류한다. 아내가 꼬집는다.

“여보, 음정이 틀리는 음치음으로 그렇게 소리 지르면 미국인들이 흉봐요”

그러나 앞자리의 흑인 아줌마는 다르다.

“큰 목소리로 노래를 아주 잘 하시는군요. 우리교회 성가대에 들어가시지요?”

“한국에서 목회할 때 ‘주여3창’을 부르고 통성기도를 하다보니 목소리가 커졌어요. 그런데 싱잉보이스(Singing voice)가 아닌 내추럴보이스(Natural voice)인걸요”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나는 과거가 들통난 기분이다. 나는 음악과 체육을 싫어하는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노래하다 틀리면 어쩌나? 달리다가 1등을 못하면 어쩌나? 지독한 열등의식으로 발표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난 예술과 스포츠를 못하는 바보가 돼버렸다.

내가 다닌 안중중학교는 조회 때마다 특기자랑이 있었다. 시골학생들이라 노래자랑이 고작이었다. 나에게 지명차출령이 떨어졌다. 교단위에 올라선 나는 단두대에 선 얼간이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2천개의 눈동자들이 고양이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심호흡을 대여섯번 한 후 목청을 뽑았다.

“만세 우리용사들 돌아 오누나/ 높이 불러라 만세 만세 만만세...”

개선행진곡 이었다. 개선행진곡은 대합창곡이다. 그걸 천하의 음치인 내가 독창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 하나만 컸지 음정 박자 곡조가 엉망진창이었다.

“쟤가 뭐하는 거야. 문예반장이니 자작시를 낭송하나 보지”

여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하하하, 합창으로만 부르는 개선행진곡을 용감하게 독창으로 부르고 있구먼!”

한 남학생이 떠들어 대자 운동장은 웃음바다가 돼 버렸다. 노래를 계속할수도 그렇다고 그만 둘수도 없게됐다. 진퇴양난에 빠져 쥐구멍만 찾고 있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누가 소리쳤다.

“자, 우리 다 같이 개선행진곡을 합창합시다”

그러자 천여명의 전교생이 신나게 개선행진곡을 합창했다.

“만세 우리용사들 돌아 왔도다/ 높이 불러라 만세 만세 만만세”

“오늘 장기자랑은 만점이었어. 역시 문예반장이라서 다르군”

국어선생님이 내등을 두드려주셨다. 그후로 난 더욱 노래를 싫어하게 됐다.

이민와보니 미국은 예술천국 스포츠천국이다. 카네기홀과 링컨센터가 있는 맨해튼브로드웨이에서는 “미스사이공”이 10년넘게 장기공연을 하고 있었다. 연중무휴로 프로스포츠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영하10도의 미식축구경기장에 10만관중이 몰려와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동내마다 극장과 운동장이 있었다.

“놀고 즐기는 예술과 싸움질하는 스포츠때문에 미국은 곧 망하겠구나!”

그런데 이민 30년을 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예술과 스포츠에서 나오고 있었다. 예술을 통하여 멋과 아름다움을 배운다. 삶이 멋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스포츠를 통하여 힘 정의 모험 담력 지도력을 배운다. 그래서 미국은 멋지고 활기찬 나라다.

난 이민 와서 돈성공은 못했다. 그러나 부자 부럽지 않게 산다. 가난하지만 멋지고 아름답게 산다. 파킨슨병으로 수족이 불편하지만 용감하고 즐겁게 산다. 예술과 스포츠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주간에는 돌섬에 있는 동내극장에서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Guys & Dolls)을 봤다. 시골방앗간창고처럼 후졌는데도 350석이 가득찼다. 무대도 배우도 브로드웨이 쑈보다 급수가 낮았다. 배우들은 늙어보였다. 그래도 고향냄새가 나서 좋았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 합니다”

나가는데 백인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뮤지컬에 출연했던 배우였다. 백인일색인데 동양인이 참석 해준게 고마웠던 모양이다.

“30년전 한국에서 ‘아가씨와 건달들’을 봤지요. 30년후에 보니 '아가씨와 건달들'이 늙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돼 있더라구요. 관객인 저도 이렇게 할아버지가 됐으니...옛날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반갑고 재미 있었습니다”

30년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동양노인은 서양노인은 손을 마주잡고 허허 웃었다.

나는 오늘도 조각농장에 간다. 간판을 보니 흑인아가씨가 생각난다.

‘아가씨에게 아리랑의 사연도 설명해줄걸. 그리고 2절도 불러줄걸.“

나는 조영남의 어메이징아리랑을 흉내 내어 2절을 “에덴아리랑”으로 불러본다.

“아리랑 아리랑 에덴아리랑/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아리랑 에덴농장에 풍년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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