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섬의 개똥참외
돌섬의 개똥참외
  • 이계선
  • 승인 2015.08.17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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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이계선 목사 ⓒ <뉴스 M>

돌섬에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아리랑농장 구탱이에 마늘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참외 떡잎 하나가 마늘사이를 비집고 올라왔습니다. 심지도 안 했는데 괴물처럼 불쑥 나타 난 것입니다. 제 땅이 아니니 마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겠지?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참외 떡잎은 허니두 잎으로 변하더니 줄기가 호박처럼 억세지면서 무서운 속도로 마늘밭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늘밭을 망치는 괴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게 뭐야? 신기한 생각에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부부는 쇠기둥과 철망으로 공중누각을 만들어 괴물을 끌어올렸습니다. 마늘과 격리작전입니다. 기어 올라간 한줄기가 열가지로 무성해지더니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그루인데 12개나 열렸습니다. 참외모양에 호박만합니다. 한여름에 축 늘어진 황소불알처럼 12개가 주렁주렁 매 달린 폼이 가관입니다.

“여보, 이 괴물의 정체가 뭘까요? 모양은 참외인데 덩치는 호박만한것이 허니두도 아닌것이 호박도 아닌것이 도대체 이놈이 뭘까요?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았는데 잘만 자라는 이 괴물이 무엇일까요?”

괴물은 허옇게 커가더니 노랗게 익어갔습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그중 큰놈을 따왔습니다. 수박검사 하듯 칼로 살점을 도려냈습니다. 허니두처럼 단것이 참외처럼 사각사각합니다.

“와! 맛이 기가 막히네요. 첫 열매이니 우리집 첫아기로 태어난 큰 딸에게 보내야겠어요. 그런데 미스터리 투성이인 이 괴물의 정체가 뭐죠?”

“돌섬의 개똥참외이겠지.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자라는 참외는 천하에 개똥참외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맛으로 따져도 개똥참외가 제일이라구”

나는 아내에게 개똥참외의 전설을 들려줬습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나는 여름방학이면 시골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고향에는 동생들이 학수고대로 날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해야합니다. 이야기보따리 입니다. 조조활인에 2편 동시상영 하는 삼류극장을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이야기보따리를 메고 내려가면 기다리던 동생들이 달려듭니다.

“오빠야 형아야, 우리 빨리 콩밭으로 가자”

2남 2녀. 4명의 어린동생들을 데리고 콩밭으로 갑니다. 8월의 농사일중 콩밭 김매기가 제일 고역입니다. 논일은 물속을 첨벙거리며 다니기에 그래도 시원합니다. 콩밭은 찜통입니다. 내려쪼이는 폭염에 지열까지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힙니다. 몸이 파 묻힐정도로 콩이 무성하게 자라나 그야말로 한증막이지요. 콩밭속을 기어 다니면서 풀을 뽑아야 합니다. 콩밭일은 나에게 맡겨진 여름방학과제물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논일을 해야 하니 너는 콩밭으로 가서 김을 매거라”

나는 기죽지 않고 보무당당 콩밭으로 진군합니다. 내 뒤로 4명의 분대병력이 따라와 주기 때문입니다.

“풀은 우리들이 뽑을 테니까 오빠는 영화 얘기나 혀”

나는 드라큐라 흉내를 내면서 영화이야기를 합니다. 사기꾼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스토리를 슬쩍 슬쩍 고쳐 가면서 영화보다도 더 재미있게 끌고가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동생들은 콩밭 매기를 재미있어 합니다. 두 시간이 금방입니다. 콩밭속을 기어가던 누가 소리쳤습니다.

“아! 냄새. 달콤한 참외냄새가 난다!”

콩밭속에 참외넝쿨이 숨어있었습니다. 잘 익은 성환 개구리참외가 8개나 매달려있습니다. 비료도 주지 않은 무공해참외라 자연산 꿀맛입니다. 콩밭 매다가 참외파티입니다.

“이렇게 달고 시원한 참외는 처음이야. 그런데 누가 콩밭속에다 몰래 참외를 심었을까? 아부지는 아닐테고 그러면 하나님이?”

동생들에게 콩밭 참외 탄생의 비밀을 얘기해줍니다. 개똥참외의 사연이지요.

“이 참외를 개똥참외라고 한단다. 저 아래동내 사는 가난한 농부가 쌀 보리를 짊어지고 20리를 걸어 안중5일장엘 갔지. 농산물을 다 팔고 나니 점심때가 된거야. 국밥이나 짜장면은 너무 비싸 엄두를 못내, 헐값에 참외 한개를 사먹고 집으로 돌아 가는 거야. 보리밥으로 아침을 때운 굶주린 배속에 잘 익은 참외가 들어가자 요동을 치면서 설사가 나기 시작했어. 화장실은 없지, 금방 나올 것 같지. 농부는 길가에 있는 우리콩밭으로 뛰어들었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납작 엎드려 기어 이 자리에와서 싸버렸지. 그리고 흙을 덮어주고 기어나갔어. 거기서 참외가 자라났지. 설사가 비료가 되어 지금 우리가 먹은 맛있는 개똥참외가 된 거란다”

“에게게 퉤퉤테. 그럼 우리가 더러운 똥 참외를 먹은거네”

“아니야. 참외 수박은 똥을 썩혀서 만든 인분을 먹고 자라야 달게 마련이란다. 참외 수박 복숭아 포도는 물론 무 배추에도 인분(人糞-사람똥)을 줘야 영양가 높고 꿀맛이 나게 마련이다. 호텔 VIP대접 과일들은 모두가 똥먹은 과일들이지”

“오빠, 이야기 들으니 개똥참외가 더 달구먼. 그리고 개똥 참외이야기가 드라큐라 영화이야기보다 더 구수하고 더 재미 있어”

개똥참외의 탄생신화를 듣는 아내는 고향시절의 어린 여동생들처럼 순진해 보였습니다.

우리부부가 나가는 미국교회는 주일마다 제단 앞으로 나가 생일축하를 해줍니다.

“미스터리 부부는 5년동안 한번도 안 나가시더군요”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설명하지요.“우리는 생일이 없는 것처럼 살려고 한답니다. 족보도 없고 시작한날도 없는 멜기세덱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돌섬의 개똥참외이니까요”

“???....”

둘째딸 은범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돌섬의 개똥참외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괴물이 아니에요. 익으면 카나리아처럼 노란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해서 카나리멜론이라고 부른대요. 돌섬의 개똥참외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멋진 카나리아인생 이라구요”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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