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 문 한짝을 세워둔 이유는
강단에 문 한짝을 세워둔 이유는
  • 김재수
  • 승인 2015.11.01 0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보내고
▲ 김재수 교수 / <NEWS M/미주뉴스앤조이>

강단에 문 한짝을 세워 둔 이유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10월 25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예배를 시작하며, 마틴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문에 붙였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질문과 기도 제목을 붙이거나, 그냥 낙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아이들로 하여금 마음껏 자유롭게 예배에 참여하라 했습니다. 

오늘도 고등학생의 신앙고백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년 전까지 아주 진보적인 카톨릭 교회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두가 진보적이었고, 모든 교인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을 이상하게 느꼈다 합니다. 우리 교회는 다양함이 공존하고 있고, 보수와 진보라는 틀이 우리를 가두지 못한다고 말하자, 다들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다니던 교회들과 많이 다릅니다. 성서를 보는 입장, 신관, 구원관, 예수님에 대한 이해 등, 신학적 차이가 큽니다. 사실 가장 큰 차이는 긍정적 선언(affirmation) 입니다. 그 동안 설교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들었던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끈질긴 설득입니다. 가장 빈번한 설득의 방식은 안타까움이 베인 목소리와 꾸짖음 형식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요구하지만, 실상 그것은 다다르지 못할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십수년 동안 교회를 다녀도, 계속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고, 이미 구원을 향한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있음을 선언하고 축하할 뿐입니다. 우리는 함께 변화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격려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설득입니다. 작은 의견의 불일치라도 드러날 때면, 어김없이 들어야 했던 말입니다. 하나된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두려움을 일으키고, 실체도 불문명한 하나됨을 강요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양한 신앙의 여정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선언할 뿐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윽박도 존재하지 않지만, 다들 하나의 공동체로 모이기를 즐겨합니다.

제가 새로 경험하고 있는 두 가지 역설입니다. 구원론을 가르치지 않고, 확신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다들 여정에 참여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없고, 우리는 다른 여정 속에 있다고 말할 뿐이지만, 다들 하나로 남아 있고 싶어 합니다.

김재수 / 인디애나 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