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가 범죄여야만 할까
성매매가 범죄여야만 할까
  • 윤진만
  • 승인 2016.06.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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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가 범죄여야 하는지, 아닌지에 명확한 답은 없다. 나는 성매매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로 규정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해볼 것들을 던져주는 장문의 글이 뉴욕 타임즈에 올라왔다. Emily Bazelon의 글이다. 이 문제에 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기도 했고, 다른 이들도 함께 읽었으면 해서 전문을 번역했다.

이 기사에는 현재 성매매의 비범죄화 문제를 두고 비범죄화에 찬성하는 인권 단체와 비범죄화를 반대하는 폐지론자 — 성매매 자체를 폐지하고자 하는 사람 — 들의 주장이 나온다. 나는 양쪽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성매매를 비범죄화하고, 열악한 성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성매매가 여성을 성애화함으로써 여성 인권 신장에 해를 끼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범죄화가 마냥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요컨대, 이 문제는 성노동자의 인권 문제이면서, 동시에 여성 인권의 문제다. 인권과 인권이 맞붙는 문제에 명쾌한 답이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성매매를 비범죄화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 여전히 도덕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영어가 꺼려지는 사람은 여기 번역된 글을 읽으면 되지만, 한 번 쯤은 원문(「Should Prostitution Be a Crime?」)의 사진과 영상을 직접 살펴보길 바란다. 나는 이 기사의 핵심 중 하나가 사진과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사진과 영상으로 성노동자와 활동가들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지난 해 11월, 멕 무뇨즈는 국제 앰네스티의 연례 웨스트 코스트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로스 앤젤레스로 향했다. 그녀는 걱정하고 있었다.

3달 전, 앰네스티는 80개국에서 모인 500여 명의 대의원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합의 하의 성노동을 완전히 비범죄화”하자는 제안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다. 이는 격렬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인권 단체 멤버들은 앰네스티의 목표가 성매매 수요를 근절하는 것이 되어야지, 눈감아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다같이 사임했다. 반대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소셜 미디어와 언론에서 앰네스티를 공공연히 비난했다.

항의자들은 로스 앤젤레스에서 컨퍼런스가 열리는 쉐라톤 호텔의 로비를 에워싸고 있었다. 무뇨즈가 들어가려 하자, 한 여성이 그녀를 막아섰다. 그녀는 무뇨즈가 전직 성노동자로서 앰네스티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말하자 화를 냈다. “그녀는 내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동안은 존중해 주겠다고 했어요,” 무뇨즈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 그 여성과 다른 비판자들은 그녀가 패널로 있을 때 소리를 질렀다 — “하지만 그 여성이 왜 그렇게 하기 힘들었는지 이해합니다.”

무뇨즈는 성노동에 관한 용어와, 심지어 의미를 두고 벌어지는 기울어진 싸움터의 중간에 서 있다.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많은 성노동자들(활동가들은 매춘부보다 성노동자라는 단어를 더 선호한다)이 자신들이 인식되는 방식과, 경찰에게 규제되는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법과 사회적 도덕관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또한 주류 페미니즘과도 싸우고 있다. 주류 페미니즘은 일반적으로 더 나은 권리를 요구하는 성노동자를 지지하기보다는 성매매로부터 여성을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성노동자 활동가들은 새로운 동료를 얻었다. 만약 앰네스티의 국제 이사회가 다음 달 비범죄화에 찬성하는 최종 정책을 승인하면, 앰네스티는 수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H.I.V와 AIDS의 전파를 멈추기 위해 성공적으로 성노동자들과 협력해온 공공 보건 기구들과 힘을 합치게 될 것이다. “H.I.V. 유행으로 인한 위기는 실제로 수많은 금기들을 타파했습니다.” 앰네스티의 정책 고문인 캐서린 머피의 말이다.

곧은 갈색 머리를 가진 무뇨즈는 안경을 낀 채,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무대 위에 섰다. 43세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마이크로 다가갈 때, 침착하고 결연해 보였다.

무뇨즈의 생애

그녀는 로스 앤젤레스 카운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8살에 성매매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댄스 클럽에서 남자를 찾아 호텔이나 아파트에서 100달러 정도에 섹스를 하기로 거래했다. 그녀는 파트 타임으로 식당의 종업원 일도 했지만, 욕망의 대상이 되는 느낌이 좋았고, 옷과 유흥을 위해 여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저는 정말로 그 일이 좋았어요.” 그녀가 100명 이상의 앰네스티 청중에게 말했다. “제가 약간은 무모했던 것 같아요.” 똑같은 무모함이 그녀를 메타암페타민[옮긴이: 필로폰]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마약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를 재활 시설로 보냈다. 그녀는 성매매와 마약을 그만뒀고, 진지하게 남자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그녀가 24살 때 끝났다. 그리고 그 때 즈음 그녀의 부모님은 집을 팔았다.

무뇨즈는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살기 시작했다. 임대료와 자동차 보험료를 내고, 대학 등록금으로 쓸 돈을 저축하기 위해 그녀는 성매매를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 “저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어요. 성매매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움을 줬죠.” 무뇨즈가 청중에게 말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다른 전남자친구는 그녀가 여전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과 함께, 무뇨즈가 하는 일의 어두운 부분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자가 견인된 차를 돌려받아야 하니 돈을 내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 후엔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언제 일을 하고, 어떤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지 명령하기 시작했다.

무뇨즈는 엄밀하게 볼 때, 강제적 성매매의 피해자(trafficking victim)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차를 운전했고, 학교에 다녔으며, 직접 돈을 썼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그녀만의 생각이었다. “제가 하는 일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그 남자가 저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죠. 그는 제 가족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말할 거라고 협박하며 저를 공갈했어요.”

그 남자는 폭력적이었고, 무뇨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남자에게서 벗어났다. 도움을 준 친구는 나중에 그녀와 결혼했다. 전남자친구 때문에 불안에 떤 그녀는 2009년,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아베니(Abeni)라고 불리는 작은 신뢰 기반의 단체를 설립했다. 그녀가 그랬듯이, 다른 여성들이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2년 후, 이제 4명의 자녀를 가진 무뇨즈는 어렸을 적 성매매가 수익원이 되어 심지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줬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적으로 버둥거리며 “양심의 위기”를 겪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베니의 수혜자들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자기 임의대로] 추측했던 자신의 생각을 후회했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을 받는 걸 멈추고, 아베니를 성매매를 그만둔 사람과 안전하게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두 돕는, 미국에서 몇 안되는 단체로 만들었다.

무뇨즈의 신념: 더 나은 권리를 누릴 성 노동자에 대한 믿음

앰네스티 컨퍼런스에서 무뇨즈는 비범죄화가 성매매를 지하에서 끄집어내 많은 이들에게 이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더 나은 권리를 갖게 될 성노동자를 믿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제가 그 중 하나입니다. 향상된 권리를 갖게 된 성노동자가 성노동자 다수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녀는 이 직업 내에서의 사회적, 경제적 분할을 언급했다. 성노동자 운동 내의 활동가들은 대개 교육을 받았고 시간 당 수백 달러를 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설명할 때 종종 쓰는 단어들은 — dominatrix, fetishist, sensual masseuse, courtesan, sugar baby, whore, witch, pevert — 스스로 [이 일이] 절반쯤은 나쁜 일이라는 걸 자각하는 의미일 수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생존을 위해 성을 팔아야 한다고 느끼는 여성들의 관심사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 임대료를 모으려 하는 엄마나, 가출 청소년이 그 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을 운동의 일부로 보지도 않는다.

“그건 우리와 함께 일하는 이들이 말하려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소득 여성이나 트랜스 수혜자들과 일하는 아프리칸-아메리칸 보건 단체인 우먼 위드 어 비전(Women With a Vision)의 디렉터, 던 헤이우드가 말한다. 헤이우드는 단체의 수혜자들 중 일부가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탄력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며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을 판다고 말한다.

인권 옹호자들은 냉혹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처럼, 저도 성노동에 관해 생각하면 모순을 느낍니다.” 국제인권감시기구의 여성 인권부 사무총장인 리슬 게른홀츠의 말이다. “대개 사람들은 극도로 제한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아무도 성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 사는 건 어떨까요? 당연히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이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그런 나라에선 그들이 경찰관이나 성 매수자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그들을 고소할 수 있고, 조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을 테고, 집주인은 그들을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유죄 판결

앰네스티와 국제인권감시기구는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다른 단체 — U.N.AIDS, 세계보건기구, 법과 HIV에 관한 국제 위원회, 열린 사회 재단 — 들과 함께 성매매 업계와 관련해 중대한 해악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해악을 줄이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법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난해, 란셋에는 “성노동의 비범죄화가 H.I.V. 전파 과정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예측하는 분석이 올라왔다. 비범죄화가 콘돔과 의학적인 처치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권 옹호자들은 만약 정부가 합의 하의 성인들을 체포하는 걸 멈춘다면, 강제적 성매매와 미성년자 성매매를 단속하는 데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는 실리를 따지는 논쟁이다. 하지만 성노동자들의 운동은 이데올로기적인 유죄 판결과도 중요한 연관이 있다 — 이데올로기적인 유죄 판결이란 성노동이 본질적으로 부도덕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형법을 처벌이나 치욕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다. 이는 심지어 여성 해방에 관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일단 경험하고 나면, 언제나 알게 됩니다: 요컨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옮긴이: 성을 생존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 전직 성노동자였고, 현재는 브루클린에 살며 법대생이자 성노동 활동가인 안나 사이니의 말이다. “그건 강력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서구의 페미니즘에 중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전통적인 서구의 페미니즘은 상업적 성산업을 성적 불평등의 나쁜 원인으로 생각한다.

성노동 활동가들은 집단으로 뭉치기 힘들다. 그들은 다양한 작은 그룹에 속해 있으며, 소셜 미디어나 티츠 앤 사스(Tits and Sass)라는 블로그에서 그룹들끼리 때때로 다투기도 한다. 다른 이의 선의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공개적으로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백인이 많다. 유색인종 여성들은 자신들이 청중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은 동시에 백인 여성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말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트랜스 여성들도 비슷한 이의를 제기한다. “시스 여성의 이야기를 위해서 내 이야기를 끼워넣지 마세요.” 흑인이자 트랜스젠더인 모니카 존스가 내게 주의를 줬다. 그녀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에서 사회 복지 학위를 따기 위해 등록금을 내려고 성노동을 했고, 거기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나랑 같이 있고 싶으면, 나한테 돈을 내든가 나한테 반지를 사줘야 돼.”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2년 전, 그녀는 한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바에 가기로 했고, 그로 인해 성매매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녀의 사건은 그녀가 유죄 선고에 대해 상소하기로 했을 때 유명한 사건이 됐다. 그녀는 그 날 밤 단지 맥주를 한 잔 하러 나간 것이었다고 얘기했고, 상소에 승리했다.

폐지론자들의 입장

비범죄화를 반대하는 몇몇 이들은 자신들을 폐지론자라고 부른다. 폐지론자라는 지칭은 의식적으로 평등을 위한 싸움 뿐만 아니라 노예제를 끝내는 싸움을 상기시킨다.

“만약 매춘이 합법이라면, 그리고 남자가 아무런 처벌 없이 여성의 몸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여성을 극단적으로 성애화시키는 일입니다.”

성매매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는 여성 인권 단체, 이퀄리티 나우(Equality Now)의 국제사무총장인 야스민 하싼의 말이다.

“여성은 성적 대상이 되고 맙니다. 전문직 여성에게 있어서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만약 여성이 구매할 수 있는 섹스 토이라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 그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보세요. 결혼이나 다른 것에 있어서도요.”

미국은 성매매에 대해 일정 부분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법을 가지고 있다. 매년 55,000명을 체포하며, 그 중 3분의 2 이상이 여성이다. 유색인종 여성은 체포될 위험이 더 높다. (뉴욕시에서 그들은 체포된 이들의 85퍼센트를 차지한다.) 트랜스 여성들도 그렇다. 그들은 고용 상의 차별 때문에 성노동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전과 기록은 다른 직업을 찾는 걸 더 어렵게 만든다. 5년 전 루이지애나에선 700명의 사람들이 성매매로 성범죄자 명단에 등록됐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유색인종 여성과 트랜스 여성이었다. 딘 헤이우드의 우먼 위드 비전은 2013년 이 제도를 없애는 소송에서 승리했다.

폐지론자들은 이런 여성들을 피해자로 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노동자 여성들을 체포하는 데 반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성 고객들과 알선업자, 강제적 성매매업자들을 고소하는 수단으로써 형법을 도덕적 불인정을 하기 위한 무기로 계속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 비록 이 접근법이 성노동자들까지 법망에 얽혀들기 쉽게 만들지만 말이다.

지난 7월, 폐지론자 단체인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the 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은 앰네스티가 “남성에 의해 일부 여성이 소비”되게 만드는 “젠더 차별 대우 체제”를 지지한다고 비난했다. 400명이 서명한 편지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리나 던햄, 케이트 윈슬렛, 메릴 스트립의 서명도 포함되어 있다.

브루클린의 성노동 활동가인 앤나 사이니는 처음엔 유명인들에게 배신당한 느낌을 받았으나, 곧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은 우리를 상대로 그들의 명성과 인지도를 사용했어요. 하지만 앰네스티는 여전히 옳은 일을 하고 있죠.” 그녀의 말이다. “그건 엄청 흥분되는 일이에요.” 국제인권감시기구의 리슬 게른홀츠가 말하길, 그 싸움은 “오늘날의 여성 운동에 있어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의견을 가르는 문제”가 됐다.

대립의 역사

미국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성을 파는 것과 관련해 전선이 만들어진 건 1970년대의 일이다. 한쪽에는 작가인 안드레아 드워킨과 변호사이자 법학자인 캐서린 맥키논 같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그들은 포르노와 성폭력 뿐만 아니라 성매매가 여성을 억압하는 가장 치명적이고 강력한 원인이라고 비난한 초창기 폐지론자들이었다. 드워킨은 “나는 당신을 침묵시키기 위해 조직화된, 주먹과 페니스라는, 무거운 짐이 되는 권력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라고 썼다. 드워킨은 19세에 유럽을 방문하는 동안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잠깐 성을 팔았다.

스스로를 “섹스에 긍정적”이라고 하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성노동자들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부장제를 전복시키는 사람으로 본다. 1973년 어머니의 날, 35세의 전직 콜걸 마고 세인트 제임스는 샌 프란시스코에서 코요테라고 불리는 단체를 설립했다.

코요테는 “낡고 고리타분한 도덕은 치워버리세요(Call Off Your Old Tired Ethics).”의 약어다. 코요테의 목적은 페미니스트의 법으로 성매매를 비범죄화하는 것이었다. 전성기 때 코요테는 매년 후커스 볼(옮긴이: Hooker’s Balls, 직역하면 매춘부의 파티)을 열었고, 그 곳에선 드랙 퀸과 유명인들이 정치인이나 경찰과 함께 어울렸다. 그건 파티였다: 1978년, 20,000명의 군중이 도시의 카우 팰리스를 가득 채웠고, 세인트 제임스는 코끼리를 타고 그 곳에 입장했다.

1980년, 성매매를 비난하는 드워킨의 주장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지지로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이 됐다. 스타이넘은 “성노동(sex work)”이라는 단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세인트 제임스와 섹스-긍정주의자들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폐지론자들은 1990년대, 성 인신매매[옮긴이: 강제적 성매매를 뜻한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세계적인 노동 인신매매에 대항하는 싸움으로 옮겨갔다. 비록 대부분의 이들이 인신매매 피해자의 상당수가 가정내에서, 농업이나 건축 노동을 강요받는다고 추정했지만 말이다. 폐지론자들은 모든 성매매를 강제적 성매매[인신매매]로 단속함으로써, 강요된 성매매와 합의 하의 성매매를 구분하는 전통적인 법적 구분을 없애버리길 원했다.

1998년, 그들은 국제 범죄 조약에 있는 자신들의 광범위한 정의와 연방 차원의 인신매매 법안을 채택시키기 위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여성 자문 위원회 명예 의장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 설득시키려고 했다. 그 시도는 처벌을 확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노력이었다.

바나드 대학의 사회학자로 성노동과 인신매매에 관해 연구하는 엘리자베스 번스타인은 그 전략을 “감금을 목적으로 한 페미니즘”이라고 칭했다. 그녀는 2007년, 폐지론자들이 “자신들의 ’정의’의 주요 도구로 투옥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그들은 클린턴 정권 시절, 모든 성매매를 강제적 성매매로 정의하는 싸움에서 패했다. “그 당시는 하루하루가 의기소침해졌죠.” 로드 아일랜드 대학의 여성학 교수이자 폐지론자인 도나 휴즈는 2006년 내셔널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조지 W. 부시가 2000년 대통령이 되었을 때, 휴즈와 다른 폐지론자들은 신뢰 기반의 단체들과 새로운 대통령에게 로비를 하기 위해 연합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복음주의 공화당원도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해외의 소녀와 여성들을 구하기 위해 국제 정의 전도단(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같은 기독교 단체를 후원했다. I.J.M.은 지역 경찰과 함께 캄보디아, 태국, 인도에서 성매매 업소를 급습하는 것을 도왔다. 경찰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동안 미국의 TV 방송국 카메라들은 그 뒤를 따랐다. 미국에서 I.J.M.으로 기부금이 쇄도했다.

하지만 지역 인권 단체와 여성 단체들은 이 전략에 불만을 표했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와 여성 및 에이즈에 관한 국제 연합의 공보에 따르면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경찰이 현장 급습을 한 후, 소녀와 여성들은 추방 당해야 했고, 문제가 있는 기관에 구류되어야 했다. 경찰에게 섹스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2년 전에는 I.J.M.이 태국의 성매매업소에 미성년자가 있다고 보고한 일이 있었다. 경찰은 그곳을 급습하고, 거기서 일하던 여성들을 고아원에 감금했다. 그 여성들은 2층 창문으로 탈출하기 위해 침대 시트를 묶어서 이었다.

2007년, I.J.M.의 지도자이자 홀리 버크홀터(Holly Burkhalter)의 선임 고문인 게리 호겐을 만났을 때, 프랑수아즈 지라드는 열린 사회 재단의 공공 보건 프로그램 책임자였다. “I.J.M.은 ’한 명의 여자아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지라드의 말이다. 그녀는 현재 국제 여성 보건 연합의 회장이다. ”저는 ’여자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어요.“ 버크홀터는 지라드의 질문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태국에서 I.J.M.이 급습을 하도록 승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했다면, 더 잘했을 겁니다.“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요즘 I.J.M.이 급습을 도울 때는 “각각의 피해자들에게 케이스 담당자”가 있다고 덧붙였다.

부시 행정부는 폐지론자들이 성매매의 해로운 효과에 대해 연구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국무부의 웹사이트에 그 연구들을 참고 문헌으로 눈에 띄게 올리기도 했다. 여성학 교수이자 폐지론자인 휴즈는 2005년, 인신매매에 관한 보고서에서 스트립 클럽과 랩 댄싱[옮긴이: 주로 여성이 남성의 무릎 위에 앉아 신체를 맞대고 추는 춤]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이 보고서는 국무부로부터 100,000 달러 이상의 연구비를 받았다.

부시 행정부의 펀딩을 받은 심리학자, 멜리사 팔리는 2000년, 여성과 형사 사법(Women and Criminal Justice)이라는 저널에 스스로 성매매를 선택한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병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 “그런 여성들의 본성에는 지배 당하고 강간 당하는 걸 즐기는 특질이 있다.” 폐지론자가 아닌 연구자들은 그녀가 확실한 증거 없이 몇몇 성매매의 가장 혹독한 문제들을 보편적인 현실로 표현했다며 그녀를 비판했다.

2003년 의회는, 페미니스트 폐지론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의 로비에 대한 응답으로 강제적 성매매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들 중, “성매매의 적법화나 성매매 행위”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연방 기금을 받을 수 없게 했다. 같은 해, 부시 대통령은 AIDS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에 150억 달러를 충당하기로 했지만, 기금을 받는 이들이 성매매 반대 서약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그 결과 AIDS 예방 측과 폐지론자들의 생각이 정면충돌하게 됐다. 브라질은 미국의 기금 4억달러를 거절했다.

공공보건과 인권 기구인 샌그램(Sangram)은 성매매 반대 서약에 서명하길 거절하고 2005년 미국의 기금을 돌려보냈다. 샌그램은 인도 남부 시골의 홍등가인 상글리에 콘돔을 배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U.N.AIDS는 샌그램을 H.I.V.와 인권에 관한 신뢰할만한 곳으로 인용했다. 샌그램이 책임자인 미나 세슈는 “우리는 한 달에 350,000개의 콘돔을 나눠줬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회 복지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란셋에 논문을 올렸고, 국제인권감시기구에게 상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과 함께 실질적인 일을 할 건가요, 아니면 그들에게 도덕을 얘기할 건가요? 그런 선택이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계속해서 구조 작전에 참여하는 기관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미국 내의 단체들에 한해 성매매 반대 서약을 폐지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 결정은 외국의 단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전히 성노동자 권리 운동을 지지하면서 AIDS와 싸우는 외국의 단체들은 연방 기금을 받지 못한다.

스웨덴 모델

현재 미국 내에서 성노동에 관한 논의는 대개 국제적인 법 체계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식으로 고려된다. 폐지론자들은 그들이 스웨덴 (혹은 북유럽) 모델이라 부르는 것을 받아들인다.

1999년, 스웨덴 의회는 페미니스트들의 촉구로 성 구매를 범죄로 만드는 성 구매 법(Sex Purchase Act)를 통과시켰다. 그동안 성매매 자체는 범죄가 아니었으나, 새로운 법은 성매매를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심대한 해악”이라고 간주해서 입법 행위에 도덕적인 근간을 마련하고, 미디어 캠페인이 선언했듯이 “발트 해 연안에서 성 구매자(the johns)들을 씻어내”는 걸 도왔다. 10년이 지나고, 스웨덴은 거리 성매매가 50 퍼센트나 감소했다고 발표하고, 법이 성공적이었다고 공표했다. 비록 법이 통과되기 전 거리 성매매를 기록한 데이터를 아무도 갖고 있지 않지만, 성매매가 감소했다는 주장은 남성을 처벌하는 제도의 주된 셀링 포인트가 되었다.

한편, 스웨덴에서 성매매를 홍보하는 온라인 광고는 증가했는데, 주요 연구자들은 이것이 소규모 시장이 실내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2009년 스웨덴 모델을 채택했으며, 지난 2년 동안 캐나다와 북아일랜드는 수정된 스웨덴 모델을 법으로 제정했다.

성노동자 활동가들은 이 모델을 거부한다. “사람들은 스웨덴 모델이 우리를 보호하는 제도니까, 성구매자를 범죄화하고, 우리는 범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현실과 다릅니다.” 성노동 프로젝트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 of Sex Work Projects)의 회장이자 스웨덴의 성노동자인 파이 야콥손의 말이다.

“법은 사회를 보호하려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위협으로 간주되죠.” 몇몇 성노동자들은 남성의 성구매를 범죄화하는 것이 그들을 더 큰 위험으로 내몬다고 말한다. “거리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고객을 부르는 안전한 장소가 있었어요.” 야콥손의 설명이다. “이제 고객들은 경찰 때문에 싫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른 먼 곳으로 가고 싶어하죠. 그 곳에서 어떻게 여성이 안전할 수 있겠어요?”

12월, 불가리아의 한 성노동자는 오슬로의 항구에 있는 한적한 주차장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그녀의 친구들은 — 친구들도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성을 파는 다른 많은 여성들처럼 발칸 반도에서 이주해왔다 — 그녀가 실종됐을 때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신을 찾기 전까진 경찰에게 가지 않았다.

오슬로 대학교의 범죄학 및 사회학 교수인 메이-렌 스킬브레이는 남자가 성을 샀는지 경찰이 조사할 때, “그걸 구실로 여자의 서류를 확인해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런 경찰 조사가 국외 추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성노동자들은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잃을 수도 있고, 거주지에서 쫓겨날 위험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스킬브레이는 “만약 경찰이 집주인에게 당신이 아파트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면, 집주인은 당신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주인이 고소를 당하죠.”라고 말한다. 노르웨이 경찰은 오랜 기간 오슬로에서 성매매를 단속해 온 일을 [자기들끼리] 홈리스 만들기(Operation Homeless)라고 부른다.

스웨덴 정부는 법이 성노동자에게 야기하는 문제들이 성매매 억제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용인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명확히했다. 그들은 2010년, “법의 목적이 실제로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부정적인 효과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펴야 하다”고 보고했다. 프랑스에서 4월에 스웨덴 모델을 채택했을 때, 의회에서 법안 제의자는 법의 목표가 “사고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성노동자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항의 행진을 하는 프랑스의 동료 성노동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른 국가의 경우

스웨덴 모델은 아마 미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델일 것이다. 미국에선 사람들을 거리의 성노동자로 내몰 수 있는 힘든 요인들이 좀 더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사회 안전망도 더 약하기 때문이다.

센트럴 할렘에 있는 여성 교육 및 멘토링 서비스(Girls Educational and Mentoring Services, GEMS)의 창업자이자 C.E.O.인 레이첼 로이드는 그 차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GEMS는 매년 뉴욕에서 성매매를 한 적이 있는 400여명의 어린 여성들을 돕는다. 그녀는 성매매의 적법화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적법화가 인신매매를 증가시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2년 전 스톡홀름을 방문했다. 그녀는 방문 당시 그곳에 정말 많은 가족 복지 사업이 있고, 덕분에 위탁 가정에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국비로 운영되는 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곳을 떠나서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스웨덴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녀는 스웨덴 모델을 채택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사회 복지 제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로이드는 강제적 성매매와 싸우기 위해 미국에서 기부되는 수천억 달러의 돈과 정부 기금이 충분히 복지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위탁 가정을 떠난 10대들을 위한 주택 지원금 같은 것들 말이다; GEMS 회원의 70 퍼센트가 위탁 가정에 있었다.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는 집이 필요합니다.” 로이드의 말이다. “학교에 가야 하죠.” (스웨덴에서 그녀는 성을 구매하다가 걸린 남자가 체포되기보다는 벌금을 낸다는 사실에 놀랐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300 달러에서 4500달러까지 수입에 따라 벌금의 액수가 달라진다.)

호주는 스웨덴과는 매우 다른 법률 모델을 채택했다. 1999년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주는 성매매에 대한 형사법을 폐지하고 합의 하의 성인이 성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성매매 업소가 다른 장사와 마찬가지로 운영될 수 있게 허용했다. (한편, 호주의 다른 주들은 다양한 법률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4년 후, 뉴질랜드는 완전한 비범죄화를 시행했다. 폐지론자들은 성매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성노동자의 수는 뉴질랜드에서 6,000여명,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그보다 조금 많은 정도로 그대로였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성노동자들 사이에서 콘돔을 사용하는 수는 99 퍼센트나 증가했다. 뉴사우스웨일즈 성매매 업소의 성노동자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우울과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보고했다; 한편, 거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종종 정맥 주사로 마약을 사용하기에 좀 더 높은 수준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성노동자들이 인신매매 된다는 아무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지난 11월 뉴사우스웨일즈의 주의회는 성매매 업소 일부가 조직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보도와 “성 노예”와 착취에 대한 검찰의 기소 이후에 경찰에게 성매매 업소를 감시할 수 있는 더 많은 재량을 부여했다. 검찰의 기소한 사건에는 방콕에서 미용사 일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에 속아 모집된 태국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2년 전, 시애틀의 도미나트릭스(dominatrix, 옮긴이: 성노동자가 자신의 통제권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칭하는 단어 중 하나)이자 기탄 없이 의견을 개진하는 활동가로 미스트리스 마티스라고 알려진 여성은 3주 동안 호주에서 지내며 그 중 한 주를 일하며 보냈다. “그곳에선 어떤지 보고 싶었어요.” 그녀의 말이다. 집에서 그녀는 시애틀에서 격주로 발행되는 더 스트레인저(The Stranger)에 글을 기고하고, 성노동을 하는 것과 성노동에 대한 정책에 관해 27,000명의 트위터 팔로워에게 자주 트윗을 올린다.

마티스는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 시드니에서 골든 애플(작은 바와 여섯 개의 침실이 있는 곳이었다)이라는 작은 성매매 업소와 그보다 좀 더 큰 고담 시티라는 곳에서 일을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선 미스트리스 마티스가 아니고, 그냥 일하는 여자가 돼야지” — 일이란 성관계를 뜻한다 — “수년 간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하룻밤에 3명에서 4명 정도의 고객을 받은 후, 해변으로 향했다.

마티스는 호주에서의 일과 몇 년 전 네바다의 성매매 업소에서 했던 일을 대조적으로 비교한다. 그녀는 호주를 훨씬 더 선호한다. 네바다는 합법적인 성매매를 교외 지역의 적은 수의 성매매 업소로 제한한다. 그리고 엄격한 자격 조건을 요구한다. “호주에선 매일 밤 집에 갈 수 있고, 담배를 필 수도 있어요. 데이트를 할 수 있고, 평범한 정신으로 있을 수 있죠.” 마티스의 말이다.

“네바다에서는 업소에 24시간 주 7일을 있어야 해요. 그건 마치 여름 캠프도 아니고, 여성 감옥도 아닌 그 중간의 어중간한 무언가 같았어요.” 네바다의 성매매 대부분은 불법적으로 성매매 업소의 외부에서 행해진다. 라스베가스와 리노에서 말이다. 그 곳에선 더 많은 자유가 있지만, 위험 또한 크다.

독일엔 비슷한 두 층위의 시장이 있다. 독일은 2002년 합법적인 성매매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마련하면서 섹스 관광을 위한 종착지가 되어 가고 있다. 독일의 성노동자 수는 400,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주 여성들은 음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국경을 넘도록 유인당한 이들이다. 그들은 스웨덴에서 마찬가지로 국외 추방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한편, 자격 조건은 성매매 업소를 여는 데 드는 비용을 크게 증가시켰는데, 이는 체인이나 규모가 큰 업소가 유리하게 만들었다. 쾰른에 있는 네온 사인이 빛나는 12층짜리 매춘 업소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오슬로 대학교의 교수인 스킬브레이는 “이상한 점은 매춘 업소들이 산업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여자들을 통제합니다. 예를 들면 건강 검진 같은 것들이죠.” 그건 성노동자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모델이 아니다. 그들의 자율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앰네스티는 독일의 법(그리고 성매매가 합법이지만 지자체에 의해 규제되는 네덜란드의 법)을 뉴질랜드나 호주의 법과 구분한다. 앰네스티는 뉴질랜드나 호주의 법이 “성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영업을 하고, 비공식적인 협력체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도록 그들의 손에 더 큰 통제권을 넘기고, 스스로 노동 환경을 관리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심리학자이자 폐지론자인 멜리사 팔리는 이 모든 모델들에 반대한다. “주 정부가 매춘 알선업자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세금을 걷겠다는 거죠. 제 생각에 그 세금은 피 묻은 돈입니다.” 그녀는 지난 12월에 보낸 이메일에 그렇게 썼다.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770명의 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행해진 가장 최근의 2008년 정부 연구는 대부분의 성노동자가 폭력을 당한 일을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낙인을 찍는 게 정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팔리는 이것을 성매매의 해악에 관한 증거로 본다. “성매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해악도 함께 따라다닙니다. 합법이냐 아니냐는 상관없이요.”

‘비범죄화’의 복잡성

앰네스티는 비범죄화가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 생각이 바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이 변하기 시작됐다는 신호가 있다: 2008년 뉴질랜드의 설문조사에서 40 퍼센트의 성노동자들은 그들이 동지애와 소속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낙인에 대한 해독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뉴질랜드 성매매 연합의 일원으로 거리에서 성매매를 한 앤나 피커링은 최근 경찰과 성노동자들의 관계가 다른 곳에서는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예전엔 우리가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흔들면, 경찰이 그냥 지나쳐 갔어요. 하지만 이제는 성노동자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지난 해 사우스 오클랜드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고객 하나가 거리의 성노동자와 협상을 했어요; 여자가 일을 치뤘지만 남자는 돈을 내길 거부했어요. 그녀는 경찰에게 손을 흔들었고, 경찰은 그 고객에게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고, 남자가 돈을 뽑을 수 있게 A.T.M.으로 데리고 갔죠.”

60년 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스미스 대학을 졸업한 후, 마을 단위의 토지 개량을 관찰하는 특별 연구원으로 인도에서 2년을 보냈었다. 2014년, 인도로 다시 돌아간 스타이넘은 성매매를 “상업적인 강간”이라고 표현했고, 이는 큰 이슈가 됐다. 최근까지도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에 대한 스타이넘의 관점을 공유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생각을 바꾸고 있다. 2014년, 인도의 국립 여성 위원회 회장인 라리사 쿠마라망가람은 비범죄화를 지지했다. 비범죄화가 성노동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의 건강 관리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인도에서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성노동이나 구조 전략을 비난하는 일을 재검토하기 위해 스타이넘 같은 미국인들을 거부하는 것은 인도의 몇몇 페미니스트들을 화나게 했다. 뉴델리에서 인권 단체 C.R.E.A.를 운영하는 기타 미스라는 “왜 인도의 성노동자를 구하는 일만 생각하고, 더 넓은 개념인 여성 운동은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C.R.E.A.는 페미니스트 리더쉽을 고양하고, 성과 생식의 자유를 확장하려는 단체다.

인도에서의 논의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은 주로 인도 성노동자 단체들의 역할 때문이다. 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회적,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단체는 1990년대 초반 설립됐고, [성노동자 단체가] H.I.V.의 전파를 늦추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해냈다.

멜린다 게이츠는 2004년, 콜카타의 홍등가인 소나가치를 방문했고, 시애틀 타임즈에 성노동자인 지타와 그녀의 동료들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지타와 그녀의 동료들은 “그 지역 내 콘돔 사용량을 0 퍼센트에서 70 퍼센트로 증가시키고, H.I.V. 감염률을 7 퍼센트로 낮추는 데 도움을 줬다 — 다른 곳의 성노동자의 경우 H.I.V. 감염률은 66 퍼센트에 달한다.” 게이츠는 그녀가 남편인 빌 게이츠와 함께 세운 재단이 인도에서 H.I.V.와 싸우는 데 2억 달러를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기금은 나중에 3억 3천 8백만 달러로 늘었다.

소나가치의 성노동자 단체인 더바 마힐라 사만와야 위원회(the Durbar Mahila Samanwaya Committee)(D.M.S.C., “멈출 수 없는 여성들의 위원회”라는 뜻이다.“)는 이제 65,000명의 회원을 갖고 있고, 차별을 자주 당하는 성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운영한다. 또한 성노동자들이 계좌를 열 수 있는 은행도 설립했다. 교외의 상글리에선 6,000명의 사람들이 베쉬야 아냐 무크티 파르샤드(Veshya Anyay Mukti Parishad. VAMP라고도 부른다. ”권리 침해와 싸우는 성노동자들”이라는 뜻이다)에 속해있다. VAMP는 공공 보건 단체인 샌그램의 분파다.

인도에선 성매매 업소를 소유하거나 거리에서 성을 파는 일이 불법이지만, 실내에서 하는 성매매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법의 적용은 들쑥날쑥이며, 경찰은 때때로 섹스나 뇌물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경찰과 성노동자의 관계는 미묘한 긴장 완화 상태에 다다를 수 있었고, 덕분에 성노동자 단체는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게이츠 재단의 프로젝트는 카나타카에서 60,000명의 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공동체 모델을 사용했다. 그들은 경찰과 변호사들이 성노동자들에게 그들이 폭행당하지 않고, 체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도록 그들에게 교사들을 소개했다. 체포 당하는 일이 줄어들자, 경찰이나 성매매 알선업자, 고객들에 의한 폭력도 줄어들었다. 지난 해, 국제 AIDS 사회 저널에 올라온 연구에 따르면 H.I.V. 감염율도 줄었다.

 

성노동자 공동체?

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 단체들은 성매매 업소 급습보다 성노동자 공동체가 강제적 성매매와 미성년자 성매매를 예방하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D.M.S.C.와 VAMP는 소나가치와 상글리에서 심사 위원회를 운영한다. 그 지역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여성들을 인터뷰해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려는 것인지 묻기 위해서다. 때때로 출생 증명서를 확인해서 여성이 18세가 넘는지 확인하기도 한다(일정 부분은 이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 든 여성들은 젊은 여성들과 경쟁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면으로 봐도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다. 여러 가지 단점들 중엔 소나가치에 있는 고급 성매매 업소 같은 것도 있다. 런던의 킹스 대학 교수인 프라바 코티스와랜은 이 고급 성매매 업소가 아그라왈리스(agrawalis)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공동체의 콘돔 배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수개월 동안 소나가치에서 현장 연구를 했고, 연구 내용을 “위험한 섹스, 보이지 않는 노동(Dangerous Sex, Invisible Labor)”이라는 책으로 썼다. 코티스와랜은 “아그라왈리스는 미성년자 강제적 성매매의 원인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성매매 업소에서 D.M.S.C.의 직원이 여자 아이가 그곳을 떠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호 시설보다 더 나은 곳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보았다. 많은 경우 여자 아이들은 현장 급습 이후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호 시설로 향하게 된다. 코시트와랜은 “그건 악몽이에요. 감옥 같은 곳이죠.”라고 말한다.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난한 여성들이 적당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대안을 갖길 원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코티스와랜은 여성들이 의류 공장에서 버는 돈보다 대략 여섯 배나 더 많은 돈을 소나가치에서 성매매를 하며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1년의 한 연구는 인도에서 5,000명 이상의 여성 중 오직 3퍼센트만이 성매매를 “강제로” 하게 됐다고 말했고, 10 퍼센트가 자유롭게 성매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머지는 그 사이의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 그들은 가난을 이유로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가정 폭력을 당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수만명의 여성들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축하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이넘은 인도의 성노동자 공동체에 깊은 의혹을 표했다. 그녀는 D.M.S.C.가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성매매 업계가 수백만 달러를 끌어들”일 수 있게 해줬고, “성매매 업소 소유자와, 알선업자, 인신매매 업자들에게 커다란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줬다고 2012년 힌두(The Hindu) 신문에 글을 기고했다. 지난 가을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게이츠 재단이 인도에서 하고 있는 일이 “재앙”이며, “남자가 콘돔을 쓰게 할 수 있는 힘이 여성에게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게이츠 재단은 대변인을 통해 논평을 거절했다.) 하지만 연구들은 성노동자들이 조직화됐을 때, 콘돔 사용량이 크게 증가하고, 인도에서의 H.I.V. 연단위 감염률이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는 걸 보여준다.

스타이넘의 소나가치 가이드이자 2014년 여행에 함께한 루치라 굽타는 인도의 전직 기자로, 아프네 압(Apne Aap)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아프네 압은 여성들이 성노동을 그만둘 수 있게 도와주고, 경찰이 성매매 업소를 급습하는 것을 돕는다. 굽타는 미국의 폐지론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녀는 부시 행정부 기간에 미국 국무부로부터 펀딩을 받았고, 2009년엔 클린턴 세계시민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번 달엔 스미스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스타이넘은 아프네 압의 자문이사회에 속해있다.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로 성매매 업소 급습에 참여했던(여기엔 그가 라이브 트윗을 했던 캄보디아에서의 현장 급습도 포함된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굽타를 “훌륭한 사회적 기업가”라고 표현했다. 굽타는 내가 그녀에게 AIDS를 예방하려는 게이츠 재단의 일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은 45세의 남자 고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강간범들로부터 보호하는 대신, 남자들을 AIDS로부터 보호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굽타는 앰네스티와 국제인권감시기구도 비슷하게 폄하했다: “그들은 성매매 업소의 작은 소녀들을 보고도 콘돔을 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체험기인 “돈을 받다(Paid for)”를 썼고, 자신을 아일랜드의 성매매에서 생존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레이첼 모랜도 “국제 앰네스티가 성매매 알선업자와 인신매매 업자의 시선으로 사태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앰네스티는 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단정적으로 이런 비난을 부인한다. 앰네스티의 캐서린 머피는 “우리는 성노동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성노동자들의 권리 운동을 성매매 알선업자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충격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스타이넘은 나와 대화를 나누길 거절했다. 그녀의 비서는 굽타가 “이 주제에 대한 그녀의 정보원”이라며 굽타를 존중할 거라고 말했다.

인권 옹호자들은 인도의 성노동이 복잡한 문제라는 점 때문에 굽타의 접근법에 의문을 표한다. 성을 파는 많은 여성들은 혼자 일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작은 그룹에 속해서 일을 하기도 한다. 집을 이용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성을 팔기도 한다. 트럭 정류소나 주차장, 아니면 기차역에서 성을 팔기도 한다. 몇몇은 성매매를 그만 둔 여성이나 계속 일을 하는 여성에게 방을 빌린다.

시다스 두브는 이런 여성들이 종종 성매매 업소, 혹은 인신매매 업소를 운영했다는 죄로 체포된다고 말한다. 그는 공공 보건 전문가이자 U.N.AIDS의 전직 선임 자문위원으로 인도의 성노동을 광범위하게 다룬 “그 누구도(No One Else)”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일은 재앙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난한 여성들이 40대나 50대가 돼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일이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두브가 훨씬 덜 일반적이라고 말했지만, 인도의 성매매엔 다른 면도 있다. 작은 교외의 지역 공동체엔, 예를 들어 어떤 가족들의 경우, 성매매가 세대간의 일이다. 그 곳에선 여성과 여자 아이들이 성매매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곳은 강제적 성매매에 대항해 싸우기 가장 힘든 곳들 중 하나다. “반드시 시도는 해야 합니다.” 두브의 말이다. “하지만 매우 복잡하고 파탄적인 상황이라 누가 강제적 성매매를 시키는지 판단할 때, 큰 실수를 범하기 쉽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가 대화를 나눴던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미성년자 성매매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 “되는대로 현장에 쳐들어가고, 그걸 널리 알리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 많이 애써야 합니다.”라고도 말했다.

아프네 압은 이런 종류의 지역 공동체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언론을 데리고 가서 급습하는 모습과 세대간 성매매를 취재하게 한다. 하지만 아프네 압의 미국 인턴과 유럽 인턴, 그리고 전직 인도인 직원에 따르면, “인도의 오늘(India Today)”이라는 TV쇼에 방영된 “퍼나의 ‘타락한’ 여성들(The ‘Fallen’ Women of Perna)”이라는 한 TV 프로그램 때문에, 몇몇 가족들이 방송에 출연한 여성들과 여자 아이들을 구타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한 이들은 2014년, 아프네 압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었다. 그들은 아프네 압의 주요 자금줄인 뉴욕의 노보 재단에게 편지를 보냈다. 노보 재단은 워렌 버핏의 아들인 피터 버핏이 설립했다.

굽타는 정말 구타가 있었는지 의문을 표했고, 만약 구타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아프네 압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TV 프로그램의 제목을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아프네 압은 그 TV 프로그램을 프로모션했고, 방송엔 그녀와의 인터뷰도 들어가 있다. 굽타는 “우리는 때때로 언론을 이용해서 지자체가 인신매매범들과 공모하지 못하게 위협을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인신매매범들에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공개될 거라는 위협을 주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전직 아프네 압의 직원들은 아프네 압의 본사와, 현장 사무실의 “필요와 의견”, 그리고 그들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여성들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도 말한다. 편지가 보내진 후, 아프네 압은 국제 인턴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현장과 멀었던 델리의 비싼 사무실과 주택의 임대도 그만뒀고, 지난 5년 간 아프네 압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 달버그 개발 협회(Dalberg Development Associates)를 고용했다. 달버그는 아프네 압이 여성들을 모아서 법률 교육을 제공하고, 성매매의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거주 시설이 있는 학교에 보낸 것을 칭찬했다. 하지만 동시에 성매매 업소로 구조를 가는 것을 두고 “직접적인 참여를 줄이거나 하지 않는 것”을 추천했다.

아프네 압은 노보 재단에게 2년 동안 받기로 한 700,000 달러의 절반 정도를 받았다. 이메일에서 노보는 “아프네 압의 필수적인 도움에 의지하는 소외된 여자 아이들과 여성”들을 생각해 계속해서 아프네 압을 지원할 거라고 말했다. 스타이넘으로 특히 대표되는, 아프네 압 모델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원은 성노동자 공동체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을 좌절시킨다. 샌그램의 미나 세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우리의 아이콘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말로 스타이넘을 존중했어요. 왜 그녀는 이곳에 와서 여기 사람들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 걸까요?”

몇 년 전, 상글리의 공동체 VAMP는 “우리를 구원자에게서 구해주세요(Save Us From Saviors)”라는 짧은 영화를 만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공동체의 리더인 샤바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성노동을 12살 때 시작했어요. 내 자매 중 하나는 불에 타 죽었어요. 저도 살해 당할 뻔 했지만, 도망쳤죠.”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밝은 노란색 사리를 입고, 그녀의 두 자녀와 함께 앉았다. 자녀 중 한 명이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최근에서야 성노동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샤바나의 말이다. “이제 그 누구에게 무엇도 의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에서 비범죄화가 도입된다면?

미국에서 만약 성노동자들의 권리 운동이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비범죄화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다른 나라의 교훈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몇몇 활동가들은 일부 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이 가장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멕 무뇨즈는 내게 콜로라도의 마리화나 합법화를 언급하며 “시도해볼 장소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올바른 실험 환경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게 어디가 될지는 확실치 않다; 샌 프란시스코의 유권자들은 2008년 비범죄화 투표에서 큰 격차로 비범죄화를 거부했다.

비범죄화를 풀어낼 방법은 아마도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은, 비범죄화 적용의 세부적인 부분에 답이 있을 것이다. 시 당국은 이웃 주민들의 우려를 고려해, 스트립 클럽 같은 성매매 업소를 공업 지역으로 한정하거나 규모를 제한하는 식으로 지역(zoning) 조례를 사용할 수도 있다. 강제적 성매매와 미성년자 성매매 조장은 여전히 범죄로 남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집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호텔에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매매 업계는 활동가들이 바라듯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지역이 섹스 관광의 핫스팟으로 떠오른다면, 폐지론자들이 경고하듯 성매매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선 남자를 처벌하고 여자를 피해자로 다루는 폐지론자들의 생각이 법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애틀은 남성 고객을 체포하고 성노동자를 연관짓는 쪽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가 대화를 나눈 다양한 환경에 있는 전국의 성노동자들은 구매자를 처벌하는 것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더 나아지게 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여전히 불법적인 거래에 참여해야 하고, 일을 숨겨야 한다. 한 나이든 성노동자는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면, 자신이 미성년자 성매매나 강제적 성매매를 목격했을 때, 곧장 경찰에게 신고할 거라고 내게 말했다.

3년 전 뉴욕에선 폐지론자들이 성매매로 체포된 사람들을 위해 인신매매 중재 법원 설립을 장려했다. 판사들은 [체포된 성노동자들이] 트라우마를 치료하도록 카운셀링을 받게 명령하고, 카운셀링에 참여하고 다시 체포되지 않은 사람들에 한해 기소를 취하할 수 있다. 성노동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과 기록이 생기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만, 응하지 않는 여성들은 여전히 감옥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거기에 참여했던 이들은 카운셀링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라고 강요된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한 법원은 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다시 즉각적으로 성매매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 할 때, 공판 전 구류를 인가했다. 공판 전 구류는 남자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을 유치소에 보내는 것이다. 법률 지원 사회(Legal Aid Society)에서 착취 중재 프로젝트(Exploitation Intervention Project)를 만들고, 감독 변호사를 하고 있는 케이트 모귤스쿠는 법원이 형사상 중재를 사회 복지 제도로 재포장하고 있기 때문에 “형사상의 보호(penal welfare)”가 실험이라고 말한다. 인신매매 법원이 문을 열기 몇 달 전, 뉴욕 주는 “외설스러운 집(bawdy house)” 법을 통과시켰다. 집주인이 성노동자를 쫓아내지 않을 경우, 검사가 성노동자를 쉽게 퇴거시킬 수 있게 만든 법이다.

지난 봄, 폐지론자와 보수주의자들(부시 행정부 시절의 연합과 똑같은 이들이다)의 지지 속에 의회는 강제적 성매매 피해자들을 위한 법(Justice for Victims of Trafficking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강제적 성매매 피해자에게 성을 사는 것을 성을 착취하는 인신매매 자체와 똑같은 범죄로 만드는 법이다. 최고 형량은 99년이다. GEMS의 레이첼 로이드는 법 개선의 중점이 여성과 여자 아이들을 돕는 데 있어야지, 성을 구매하는 남성을 더 강하게 처벌하는 데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2008년, 그녀는 뉴욕에서 안전한 피난처 법을 통과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성매매에 참여한 미성년자들을 범죄자로 보기보다는 피해자로 보는 법이었다. (절반이 넘는 주가 비슷한 법을 가지고 있다.)

상대를 존중해야만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서로 다른 생활 환경을 갖고 있는 전국의 성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하는 일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스스로를 뉴욕의 동인도 고급 성노동자(courtesan)라고 칭하는 이는 자신이 “평범한 삶에서 둘이 함께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판타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사는 도미나트릭스는 감정적인 결합을 한다는 것을 좋게 느낀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목소리의 톤이 변했다. “하지만 끈을 묶는 건 너무 싫어요.” 브루클린에 있는 여성은 고객들이 자신에겐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했다. “저는 제 아이들만 신경씁니다.” 그녀가 말했다. “이건 제 아이들 때문에 하는 일이에요.” 시애틀의 도미나트릭스, 미스트리스 마티스는 몇몇 고객들을 친구로 대한다; 한 명은 그녀의 세금을 관리해주고, 해충 구제업자인 다른 이는 그녀의 집에 벌레가 나오진 않는지 확인해준다. 그녀는 웨스트 버지니아에 사는 히더라는 여성을 돕기 위해 자신의 고객들과 온라인 기부자들에게 수천 달러의 돈을 모금했다. 히더는 내게 자신이 성노동을 싫어하지만, 헤로인을 구입하고, 생활 경비들을 내고, 약물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하고 있다고 말했던 여성이다.

내게 감각을 잃은 것 같은, 심지어는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 다른 여성은 성노동자들이 그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고객들과의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뉴저지에서 “페티쉬 일[옮긴이: 성매매를 말한다]”을 하다가 체포됐던 활동가 케옌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짊어져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그녀는 회고록을 썼고, L.G.B.T. 청년 그룹에서 정기적으로 발표를 한다. “자라는 여자 아이들에게 얘기를 할 때면, 저는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비범죄화에 대한 전통적인 페미니스트들의 논거는 성매매를 적법화 하는 것이 더 심한 성적 불평등을 유발해 여성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인권 단체들의 논거는 비범죄화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고,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누가 누구를 위해 얘길하고 있고, 언제 형사법의 힘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 싸움에서 성노동자들의 권리 운동은 처벌과 망신주기에 대한 반항이다. 이 운동은 존중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을 존중하라고 요구한다. 상대를 존중해야만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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