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성자 vs 금수저 대통령
빈자의 성자 vs 금수저 대통령
  • 양재영
  • 승인 2016.07.06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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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아르헨티나 마크리 대통령과 계속되는 반목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보수단체의 강한 비판에도 굴복하지 않고 개혁을 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회 내에 무슨 일을 해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인정하며, “나는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주어진 일이 있다. 하지만, 상처받은 가족들과 함께가는 포용과 수용의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그들은 모든 일에 ‘No’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저없이 나의 길을 갈 것이다.”고 전했다.

한편, 고국을 방문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으로부터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보낸 거액의 기부금 거절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교황은 지난달 기부금 거절로 불거진 마크리 대통령과의 불화설에 대해 “우리는 사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개인적으로 풀었다"고 전하며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

“빈민가의 성자 vs 금수저"

진보적 종교인인 프란치스코 교황(79)과 부유한 기업가 집안 출신의 마우리시오 마크리(57)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에서 태어났다. 동향에 22살 터울인 둘의 인연은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차를 두고 펼쳐진다.  

199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임명된 프란치스코 교황(당시 베르고글리오 대주교)는 빈민들을 향한 복음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의 강력한 지도력 하에 빈민가에 주둔하는 사제의 수를 배로 늘리는 등 ‘빈자를 위한 교회정책'을 지속되었다. 대주교가 된 뒤에도 관저가 아닌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제들이 고급승용차에 호화주택에 사는 것은 옳지않다"며 격분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교황 취임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를 위해 사역하는 신부들이 ‘좌파'로 공격당할 때도 “그들의 활동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위대한 목회자이다"라며 옹호했으며, 아르헨티나 해방신학 운동단체에 몸담고 있는 사제를 향해서도 “중요한 것은 목회자체이다. 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운 위대한 성직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마크리는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금수저'였다. 이탈리아계 토목, 건설 갑부인 아버지를 배경으로 컬럼비아대와 펜실베니아 와튼 스쿨에서 경영을 공부했으며, 아르헨티나 최고 인기 축구팀인 보카 주니어스의 구단주를 역임하기도 했다. 1991년 갱단에 12일간 납치되 수백만달러의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사건은 아르헨티나를 떠들썩하게 했다.

2007년 두번째 도전에서 우파 정치인으론 처음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으로 선출된 마크리는 ‘상습 정체도로 지하화'와 ‘자전거 도로 확대' 등의 교통지옥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통체계를 뜯어고쳤으며, 강력한 행정쇄신을 단행해 공무원들의 근무효율을 높여 ‘아르헨티나의 이명박'으로 평가 받았다.

지난해 말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 부부의 ‘12년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에 맞닥트린 경제위기를 등에 업고 ‘미국과의 관계개선’, ‘부패와의 전쟁’  등을 공약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페론주의(국가사회주의)자였던 전임대통령을 두차례 압수수색하는 등 부정부패와 포퓰리즘적 정책과 선을 그었으며, 장관 중 9명을 CEO 출신으로 임명하는 등의 ‘친기업' 성향과 전기세와 대중교통 요금 인상 등 ‘서민 증세’ 정책 등이 펼쳐왔다.  

“프랑치스코 vs 마크리"

하지만, 지난 4월 전세계를 뒤흔은 ‘파나마 페이퍼' 폭로로 마크리 대통령의 조세회피 혐의가 드러나면서 ‘부패와의 전쟁' 당사자가 부패의 대상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당시 교황은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부정부패 척결을 최우선시 해왔던 교황과 같이 갈 수 없는 인물로 구별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교황에 취임한 지 한달만에 ‘바타칸 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수십년간 마피아와 부유층의 조세회피처 의혹을 받고 있던 바티칸 은행에 대한 빗장을 열었다. 당시 관련 신부와 금융업자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추진하면서, “교회는 마피아처럼 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과 교감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부정부패 척결'의 화살이 지금은 마크리 대통령을 향해 조준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지난 2월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크리 대통령의 회담은 22분 만에 끝났다.

교황과 마크리 대통령과의 공식 충돌(?)은 ‘파나마 페이퍼' 이전이었다. 지난 2월 교황과 마크리 대통령이 가진 ‘22분 만에 끝난 바티칸 회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회담 하루 전에 ‘세계 부자들의 지위’를 은근히 깍아내리면서, ‘자본주의와 부’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교황의 의도엔 ‘금수저' 마크리 대통령을 염두에 두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둘의 갈등의 결정판은 지난 달 마크리 대통령이 교황 직속 교육재단인에 166만 6000페소(약 4억 2300만원)의 기부금이 교황에 의해 거절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교황은 직속 교육재단인 ‘스콜라스 오쿨렌테스'에 보내진 기부금을 마크리 대통령에게 되돌려 보내면서 “666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에둘러 거절했지만, 실상은 마크리 행정부가 시행중인 전기세 500% 인상, 대중교통 100%인상 등의 서민 증세안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당시 항간에선 “공적자금을 교황 직속 재단에 기부하면서 화해를 바랬다는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으며, 기부금 거절은 ‘마크리 정부가 노동자 계층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불쾌감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 종교와 정치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둘의 엇갈린 행보가 어떻게 결말지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가난한자들의 성자 아사시의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명으로 삼은 종교계 지도자는 '반 서민정책'을 이끄는 정치계 ‘금수저'와 함께 갈 뜻이 없어 보이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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