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에 있는 북한 동포도 돕지 못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북한 동포도 돕지 못하면서…"
  • 서재진
  • 승인 2008.03.18 14:1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 내 북한 동포들의 일침

미국 내에 거주하는 북한 동포들의 한숨은 날로 깊어간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불안한 신분이다. 망명 신청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불안한 상황이다. 신분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망명 신청을 내놓더라도 180일이 지나야 일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이 나오는데, 한국이라는 제3국을 거쳐서 온 경우에는 주민등록이 말소가 되어 취업 서류를 준비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2004년 10월 18일에 제정된 북한 인권법(The North Korean Human Right Act of 2004)에는  북한 동포들의 미국 망명을 허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2006년 4월 이민항소위원회(BIA : The Board of Immigration Appeals)가 '이민 입국 전 제3국으로 정착한 난민들은 이 법안으로부터 제외시킨다'고 해석하면서 북한 동포들의 망명 요청을 보류됐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된 로버트 홍 변호사는 자원하여 발 벗고 나서 이들을 도왔고, LA 기윤실도 2008년 1월 23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탈북민들의 합법적 망명 허용’ 시위에 참가하면서 북한 동포 돕기에 동참하였다.  

3월 7일 로스앤젤레스 기독교윤리실천운동(LA 기윤실)이 주관해 ‘북한 동포 간담회’를 가졌다. 미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내놓은 북한 동포들과 LA 기윤실 실행위원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A 씨는 북한에서 군 생활을 했다. 늦은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탈북을 했고, 한국을 거쳐서 미국에 왔다. 아이들은 장성하여 대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영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미국에서 학교 진학이 어려운 실정이다. 시간제로 근무하면서 돈을 벌고 남은 시간은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 A 씨는 미국에 와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첫 번째로 신분, 두 번째로는 일자리, 세 번째로는 자녀의 학교 공부를 꼽았다. 

북한 동포 R 씨의 경우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 즉 일자리를 찾는 거였다.  

“북한 사람이라고 특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무시하는지 몰라요. 거지새끼라고 놀려요. 목숨을 내놓고 이곳까지 어렵게 왔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우선, 통역도 없지요,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어요. 북한 사람들이라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사님도 계세요. 물론 진심으로 도와주시려는 분도 계시지만요.”

“기댈 곳 없다고 사람을 무시하고,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무시해요. 미국 서류 작성할 때 내 일처럼 앞장서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2000년도에 미국 와서 아직 망명 신청만 하고, 사회보장번호만 받은 상태예요. 정말 아파서 쓰러지면 내일 먹고살 게 없어요. 북한 동포들이 뭉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요.” 

한국에서 2년, 영국에서 5년 살다가 1년 전 미국에 건너온 K씨는 멀리 있는 북한 사람을 돕기 전에 옆에 있는 북한 동포부터 챙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부는 못해 봤지만, 세상 사는 법은 많이 배웠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되도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되도,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니까, 우선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망명 신청이 통과가 되지 않았으니까, 일 허가증도 나오지 않고요. 아이들은 커가고 있는데, 멀쩡한 몸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없는 가장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일할 능력이 있습니다. 탈북하면서 온갖 고문당하면서 눌렸던 한이 지금 터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곳 미국에 와서 두 명의 젊은 북한 청년들이 쓰러져나가는 것을 봤어요. 북한 돕기, 북한 선교를 말로만 하지 말고 진실로 행했으면 좋겠어요. 멀리 북한까지 가서 빵 공장 세우고 그러는 거 말고 바로 옆에서 쓰러져가는 북한 사람부터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일할 능력 있어요. 써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깔아뭉갠다 할지라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다.”

M 씨는 다른 북한 동포들보다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상황이었다.  

“한인 타운 내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합니다. 중국 동포를 안아주는 것처럼 북한 동포들도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정부로부터 여권이 기각되고 주민등록이 말소되어서 망명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내가 북한으로도 돌아갈 수 없고, 내 조국 한국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는 다른 북한 동포와 달리 합법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여권이 없어요. 한국 정부로부터 여권도 박탈당했습니다.”

“이런 모임이 정기적으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의견을 모으는 설문조사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이 가슴 아픈 상황을 전세계에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치를 취해주셨으면 합니다. 미국 땅에 교회가 1,000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멀리 아프리카까지 가서 사역하면서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동포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문정임 목사는 3년 전 뉴욕에서 북한 동포를 위해 사역을 시작했다. 동부 뉴욕에서 서부 LA까지 날아와 빛나라교회를 개척해서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특수 목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문 목사는 북한 동포들에게 의료보험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3년 전 뉴욕에서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일하다가 LA로 온 지는 두 달이 되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의료보험이 가장 필요합니다. 병원을 가야 할 때 가장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통역은 저희 빛나라교회에서 도움을 드립니다만, 병원을 가는 것이 산발적이기 때문에 적은 인원수로 여러 명의 북한 동포를 돕는 일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인데, 북한 동포를 위한 전담 병원이 지정되면 좋겠습니다. 병원뿐만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이 쉴 수 있는 쉼터 같은 곳이 있었으면 합니다. 오갈 데 없는 북한 동포들이 모여서 취업 정보도 교환하고, 돈도 절약하면서 다급할 때 안식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 씨는 꿈을 안고 미국 땅을 밟았으나,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 앞에 낙심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많은데, 제가 의지할 곳은 없습니다. 신분이 확정되지 않아, 지금 운전면허 시험도 볼 수 없습니다. 당연히 운전면허증 발급 자체가 안 되지요. 그 길마저 닫혀버려서 마음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움을 못 받는다면 솔직히 조금이나마 있던 믿음마저도 바닥이 납니다. 북한 선교는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여기 있는 북한 사람 하나 끌어안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 선교를 해요. 난 이해가 안가요. 난 교회도 안 다녔어요.”

“그런데 뉴욕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낯선 땅인 이곳 LA까지 와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시는 목사님을 만나고 믿음이 생겼어요. 아, 뭔가 있구나! 저분들 속에 분명히 뭔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북한문이 열렸을 때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가 본 믿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미리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기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주의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낯선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있어. 내가 만났어. 내가 봤어’라고 하나님을 전한다면 북한 동포들은 믿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온 우리를 먼저 끌어안아야 북한도 끌어안을 수 있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서재진 2009-08-28 10:27:35
많이 부족한데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스틴 2008-03-25 09:47:26
좋은 기사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나기에 쉽지 않았을 분들을 많이 만나서 취재하시고 기사 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자주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