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열정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
순수와 열정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
  • Michael Oh
  • 승인 2017.11.14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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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등반 전문가, 시민 운동가, 그리고 요세미티 바디샵 대표, 이기범을 만나다

[미주뉴스엠(LA)=마이클 오 기자] 오늘날 삶에 대한 질문은 피상적이고 유치한 것이 되었다. 삶의 상황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차 있고,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자원은 언제나 한계 앞에 무릎을 꿇는다. 삶은 이런것이라 쉽사리 이야기 할수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현대 사회를 가리켜 ‘액체근대’라고 불렀다. 삶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들이 고정된 것 없이 끊임없이 유동하며, 그 가운데 삶은 지속적인 위험 가운데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개인의 삶 또한 복잡하고 산만한 것이 되어버렸다. 오래전 선비들의 유유자적, 고고한 삶은 오늘날 사치와 어리석음이라는 양괄호 사이에서만 포착될 뿐인 것이다. 

이기범 대표 ⓒ <미주뉴스엠 브라이언 정 기자>

이렇게 산만한 시대 가운데 삶을 부여받고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순수한 열정으로 순간 순간에 집중하는 한 사람이 있다. 한 두가지의 수식어로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기범씨의 이야기이다. 과거 자신은 쳇바퀴 도는 일상 가운데 그저 등산을 도피처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의 현재에는 조국의 현실이 애달파 이국의 거리에서 조차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 운동가이자, 언제나 ‘한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전문 등반가,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고급차량 바디샵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의 열정이 불타고 있다. 일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한 범부의 삶에서, 태평양 건너 좀처럼 꺼질것 같지 않은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으로의 전환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그 과정 가운데 얽혀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도미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와 초기 이민자로서의 삶은 어떤 것이었나?

한국에서 뜻하지 않은 실패를 겪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떠나버렸고, 실패로 인한 좌절과 상실감으로 도저히 견딜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요세미티가 떠올랐다. 무척 산을 좋아했었고,  특별히 평소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 요세미티를 한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경외감과 짜릿함이 절망스러웠던 순간에 떠올랐던 것이다. 마치 이끌리듯,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주머니에 삼백불을 구겨넣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왔다. 

고된 삶이었다. 첫달 렌트비를 내고나니, 당장 첫 끼니도 해결할수 없었다. 닥치는데로 일을 했다. 미국 생활에 대한 장미빛 기대나 꿈에 부푼 계획 같은건 사치로 느껴질 만큼, 하루 하루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 올랐다. 

하지만 요세미티만은 포기할수 없었다. 밤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을 하면서, 요세미티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였고 시간을 만들었다. 물론 마음껏 다닐수는 없었지만, 고된 노동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잠시나마 잊을수 있을 만큼, 한발짝 요세미티에 다가선 것이었다. 그렇게 고된 생존의 나날과 요세미티 사이에서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 삶의 패턴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 

이기범 대표 ⓒ <미주뉴스엠 브라이언 정 기자>

 

요세미티는 무엇이었나? 

그 당시 요세미티는 생존의 고통 조차도 감사할만큼 거대하고도 깊숙하게 다가왔다. 삶의 고통을 잠시 잊는다는 것보다, 오히려 삶이 정화되고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교회의 세례가 그렇다고 들었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새로운 생명, 혹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그 비슷한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끊임없이 현실과 일상의 고통과 피로가 나를 갉아 먹지만, 요세미티는 그런 나를 다시 새롭게 하는 힘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존재로 나에게 다가온다. 

가족과 함께 해프돔 등반후ⓒ <이기범>

물론 요세미티가 일방적인 경험의 대상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은 일반 관광객도 충분히 할수 있는 것이며, 다른 대상들을 통해서도 경험할수 있다. 요세미티는 단순히 경험을 위해 소비되는 대상 이상의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요세미티를 다니면서, 나의 삶은 이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나게 되었고, 더불어 요세미티도 그런 나를 넉넉한 품으로 받아주었다. 요세미티를 위한 활동과 자원봉사가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등반 활동을 통하여 요세미티를 알릴 뿐만 아니라, 산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자원봉사 활동에도 많이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요세미티 등반을 하면서,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성과를 이뤄가는 과정이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무모한 도전

어떤 등반을 하였나? 

본격적으로 요세미티 등반을 시작하면서, 공원 내외부의 주요 등반로를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특별히 1000미터가 넘는 엘캐피탄 등반에 성공하고 난뒤, 곧 이어 엘캐피탄과 하프돔 등반을 하루만에 마치는 도전을 시작하였다. 한 코스를 등반하는 데에도 여러날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엘캐피탄과 하프돔, 양쪽 코스를 하루만에 등반하려는 시도는 당시로서는 거의 무모한 도전에 가까운 것이었다. 

암벽등반 특성상 파트너가 꼭 필요하였는데, 이러한 무모한 도전에 함께 나서려는 사람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혼자서 등반을 연습하고 준비한지 거의 8년이 지나서야 파트너를 만날수 있었다. 불가리아 출신의 등반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이 친구와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다. 산악의 위험성을 잘아는 스키 구조원 출신인 아내의 걱정 또한 넘기 힘든 난관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약속을 하고 난 후에야 겨우 허락을 받고, 파트너와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하였다. 

한 시즌동안 거의 매주 하프돔을 올랐다. 그러던 중 마지막 연습 등반 과정에서 추락 사고가 발생하였다. 하프돔 절벽위에서 뒤를 따라오던 파트너 등뒤로 떨어졌지만, 다행이 줄에 걸려 생존하였다. 하지만 손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피가 범벅이 되었다. 그 순간 파트너의 겁에 질린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지금 머뭇거리면 파트너가 포기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파트너를 제촉하여, 2시간 반만에 완주를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기록이 한국신기록이 되었다. 

앨캡과 해프돔 하루 하고 삼초에 끝낸후 ⓒ <이기범>

2주후 바로 실전에 돌입하였다. 엘캐피탄을 10시간만에 완주하고 바로 하프돔으로 이동하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4시 반, 하프돔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어둠과 적막함에 휩쌓인 절벽 끝에 정상은 이미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고, 지쳐가는 어깨위로 졸음 마저 견딜수 없는 무게로 내려앉았다. 수백미터 절벽위에 걸려있다는 긴장마저 희미하게 흩어져가고, 더 이상은 팔을 들어올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드디어 내뻗은 손이 수직의 절벽이 아닌 평평한 지면 위에 얹혀졌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었다. 총 24시간 3초, 3초를 넘긴 하루만에 등반을 마친 것이었다. 

지난 2003년 미국 이민사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엘캐피탄에 새로운 등반코스를 만들기도 하였다. 거의 한달여에 걸쳐 등반을 하면서 작업을 한 끝에, 한국인 최초로 공식적인 엘케피탄 등반 코스로 스틱키라이스라는 이름을 올렸다. 

 

노무현과 세월호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바디샵 앞에 걸렸던 베너가 화제가 되었다. 어떤 마음이었나?

조국을 떠나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뒤로하고 떠나왔지만, 가끔씩 듣는 한국 소식중에 유독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관심 또한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이라는 인물과 그의 이야기들은 뚜렷하게 다가왔다. 난잡하게 보이는 한국의 정치판과 사회 상황 가운데, 노무현이란 이름은 어떤 기준점 같았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꽤뚫는 직관과, 타협없는 정직한 행보를 보면서, 한국의 현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승리나 성공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소수와 약자의 편이었으며, 주류 권력이 무시하는 비주류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항상 민중의 편이었으며, 실패하고 짓밟히는 자들중의 한명이었다. 따라서 그의 대통령 당선은 나와 같은 실패하는 자들의 승리였으며, 비열하고 압도적인 권력을 오직 강철같은 열정과 순수함으로 파쇄해버린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새벽 4시까지 뜬눈으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천둥과도 같은 당선 소식이 들리자마자, 주체할수 없는 흥분으로 집을 뛰쳐나와 가게로 갔다. 작업할때 사용하던 광목을 펼쳐놓고, 페인트를 흠뻑 적신 붓으로 대통령 당선 축하 베너를 만들었다. 어두운 현실을 품은 역사가 결코 죽은 개와 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아침 ⓒ <이기범>

노무현은 이처럼 나에게 커다란 감동과 함께 배움을 준 존재였다. 얼마전 강원국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정확한 이야기를 하더라.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나 주변 상황을 살피며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을 위해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무엇이 가장 옳고 바른일인지를 밝히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어떠한 타협이나 머뭇거림 없이 실행에 옮겼다고 기억하였다. 옳은 일을 하는데 있어, 단호함과 정직함으로 올곧게 나가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분이 순수한 분이기에 가능했던것 같다. 그런 순수함과 정직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세상은 더욱 복잡하고 소망을 품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끝까지 응원했던 참여정부 시절이 허무하게 끝나고,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암흑기를 지내오면서, 경악과 비탄으로 살아왔다. 멀리 이국땅에서 울분을 씹어 삼키는것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중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아무리 어처구니가 없고 비상식적인 정권이라 여겨도,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국민을, 그것도 어린 아이들을 수장되게 내버려두는 자들이 여전히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조국의 현실은 더이상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악의 문제라고 느껴졌다. 이 문제는 나의 능력이나 선택과 관계없는 당위이자 절대의 문제였다. 반드시 심판해야할 일이었다. 그 때부터 주변을 찾아 다니며,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뜻을 모으게 되었다. 비록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마음으로 거리에 나가 목소리를 높였고, 기적처럼 박근혜 정권은 자멸의 길을 걷고, 촛불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노무현이 나에게 정치의 매력과 필요성을 감동으로 가르쳐주었다면, 세월호는 조국 현실의 부조리와 시민의 정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슬픔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부조리한 현실은 결코 타인의 문제가 될수 없으며, 누구라도, 어디에 있든지 함께 참여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알게 된 것이었다. 

 

바디샵과 이민 생활

어떻게 바디샵을 하게 되었나? 

엘캐피탄과 하프돔 도전을 끝내고 난 뒤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은 위험한 도전을 할수도 없었지만, 등정이 끝났던 순간의 경험 또한 바디샵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력을 다해 하프돔 위에 오르고 나니, 희열과 함께 갑자기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허무함이 뒤섞여 찾아왔다. 끊임없이 더 험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전하였다. 하지만 항상 그 끝에는 정복에의 희열과 함께, 공허함이 짝을 지어 찾아왔다. 뿌리칠수 없는 이 두가지 감정이 나를 좀더 거칠고 좀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왔지만, 이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좀더 가까운 일상의 터전에서 그 감정을 쫓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바디샵 일들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과 비슷한 요소들이 있다. 암벽을 타고 오를 때 가장 중요한것은 집중력과 디테일이다. 딴 생각을 하거나, 잡다한 일들에 신경을 쓰게되면, 바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디테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서투른 준비나 동작 하나에 전체 등반이 망쳐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중력과 디테일을 갖춘 완벽을 향한 추구가 없다면 등반은 결코 성공할수가 없는 것이다. 

바디샵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보는것과는 다르게 망가진 자동차를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서는 집중력과 디테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치 등반을 준비하고 수행하듯이,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바로 표시가 나는 것이 바디샵 일이다.

바디샵은 돈 벌이 이전에 완벽을 추구하며,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이런 완벽을 추구하는 가치를 알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다. 그들의 차를 내것처럼 열정과 정성으로 대하면서, 신뢰를 얻게 되었고, 옐프 (Yelp) 등 많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후한 평가와 추천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자신의 차량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단골이 되어 찾는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요세미티 바디샵 ⓒ <미주뉴스엠 브라이언 정 기자>

 

자신의 이민생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이제껏 멀리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열정과 순수함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다.  물론 그동안의 환경이 무엇을 계획하고 추진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열정과 순수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다. 

노무현을 좋아했던 이유도, 세월호 이후로 거리에 나선 이유도, 끊임없이 요세미티를 오른 이유도 모두 이것저것 재지않고, 순수함과 열정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옳바른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순수함과 열정으로 실천하는 것, 자신이 느끼는 열정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것,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걱정이나 계산을 많이하면 몸도 느려지고, 실수도 더욱 많이 하게 되어있다. 더구나 걱정과 계산이 실제로 해주는 것이 별로 없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오직 요세미티를 향한 열정을 순수하게 쫓아 이만큼 왔다. 누구라도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생활을 막 시작한 사람들이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많은 걱정을 하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절망스러운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고, 걱정한다고 더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앞에 있는 현실과, 자신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열정을 바라보고, 순수하게 밀어붙이는 미덕이 절실히 필요한것 같다. 

오늘날 수많은 취미가 있지만 암벽등반 만의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집중의 강도라고 할수 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붇고 난후 느끼는 희열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처럼 삶도 순수와 열정의 강도를 높였을때, 기쁨과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수와 열정이 진정으로 삶을 다르게 만들며, 가치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순수와 열정의 힘

녹녹치 않았을 이민자의 삶을 살았을 이기범씨에게는 그늘이 별로 없다. 순수한 열정으로 항상 오늘을 살아가는 그에게 그늘이 깃들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삶에 분주함이나 산만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상 움직이지만 언제나 열정에서 뿌리쳐나온 방향성과 집중력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엘캐피탄 스티키 라이스 ⓒ <이기범>

이런 순수와 열정이 절실히 필요한 오늘날이다. 변화와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져가는 세상 가운데, 온전히 자신의 삶 가운데 닻을 내리고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진중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기범씨의 삶과 꿈에 감사와 함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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