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여전히 우리의 대안인가?
미국 경제는 여전히 우리의 대안인가?
  • 구교형
  • 승인 2008.10.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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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경제 이야기(9)

▲ 미국의 경제력은 전 세계에서 약 4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월스트리트에 있는 증권거래소.
미국은 크고 막강하다. 비록 필자는 미국을 비판하지만, 이 점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뉴라이트 계열 자유기업원의 이춘근 씨에 의하면 2003년 전 세계 국방비는 모두 7,500억 달러 정도다. 이 중 미국 국방비가 약3,800억 달러를 차지한다. 다른 나라의 국방비를 모두 합쳐도 3,700억 달러니, 미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막대한 액수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3.2%에 불과하다니 얼마나 큰 국력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의 군사력은 전 세계의 50%를 넘고 있고, 경제력은 전 세계에서 약 4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종합해서 볼 때 미국 한 나라만의 국력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고 평가할 수 있으므로 미국이야말로 상대할 나라가 없는 진정한 초강대국이다.

이러한 평가는 단지 보수 성향 학자만의 견해가 아니다. 미국의 강력한 맞수로 떠오르는 중국 국무원 직속 사회과학원에서 낸 '2006년 세계 정치 및 안전 보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미국은 군사력·외교력·기술력·자본력·GDP 등 대부분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90.69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1위를 차지했는데, 영국(65.04)의 2위라는 등수가 무의미할 정도다.(<연합뉴스> 참조) 세계 100대 기업 브랜드 가치를 비교해도 미국의 기업들은 상위 10위 가운데 8개, 100위 가운데 53개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참고로 삼성은 20위, 현대는 84위다.)

그러나 이미 큰 병이 들어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는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1937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고 평가받는 최근 미국의 금융 위기도 30년 가까이 세계를 휩쓸며 유일한 대안으로 선전되어온 미국식 신자유주의·금융 자본주의가 무너져가고 있는 조짐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 들어 미국과 영국은 유럽이 복지병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며, 유럽식 수정자본주의(복지 국가)의 모델을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주창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집권하면서 대외 정책으로는 강력한 대소봉쇄 정책(구 소련의 확장을 막기 위한)을 추구하기 위해 군비 증강과 국방비를 크게 증액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경기 부양과 활성화를 목표로 엄청난 감세를 시도했다. 소득세는 최고 세율 70%에서 28%로, 법인세는 최고 세율 43%에서 35%로 대폭 내렸다. 임기 초 이러한 정책은 성공하는 듯 했다. 국내 경기가 살아나면서 실업률이 떨어지고 경제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점점개선 되어가던 빈부격차가 이 시기 매우 악화되었으며, 게다가 '강한 미국'을 추구하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방 예산 등의 영향으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늘어갔다. 미국은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서 엄청난 국가 채권을 발행해 외국에 팔았고, 그렇게 들여온 외채로 빚잔치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신과 자녀 세대가 갚아야할 막대한 국가 빚에 불과했다.

1985년 9월 엄청나게 늘어난 빚을 미국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고, 미국 경제가 망하면 세계가 다 망한다는 벼랑 끝 전술로 일본과 독일의 화폐를 강제로 절상하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가까스로 구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클린턴의 집권 기간 동안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 가던 미국의 재정은 현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다시 한 번 악화된다.

2001년 9·11테러를 전후해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겠다는 생각을 한 미국은 2000년 5월 6.5%에 달했던 연방 금리를 2003년 6월까지 무려 1%대로 낮추는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다. 저금리 덕택에 미국인들은 싼 값에 돈을 빌려 집을 사기 시작했고, 그 집을 담보로 또 다른 대출을 받아 과도한 소비를 이어갔다. 그 덕택에 국내 생산이 늘어났고, 2002년 전반기에는 무려 5% 성장이라는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집권 초 실시한 대규모 감세는 눈에 보이는 일시적 성장 효과를 보여주었다. 세금 인하와 금리 인하로 기업이나 개인들이 돈을 헐값으로 빌려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소비를 하며 호황을 누렸고, 그러한 미국인들의 과소비는 국내 경기 활성화는 가져왔지만, 모두 빚잔치였다.

지금 미국을 넘어 세계로 번지고 있는 금융 위기의 직접적 시발점이 바로 이렇게 만들어 졌다. 부시 정부 들어서만도 연방정부 적자가 해마다 1,578억 달러(2002년), 3,776억 달러(2003년), 4,127억 달러(2004년), 3,127억 달러(2005년), 2,482억 달러(2006년), 1,620억 달러(2007년)였다. 올해 빚도 약 4,070억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적자를 매우기 위해 외국에 팔아넘긴 국가 채권이 이미 2조 6,000억 달러를 넘어섰고(이 가운데 중국이 쥐고 있는 채권이 전체 중 무려 20%에 달한다), 미국인들은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81%에 이르는 11조 3,150억 달러에 이르는 국가 채무를 감당해야만 한다.

▲ 우리나라의 사회 복지 제도는 유럽의 그것에 비하면 반도 안 된다. (사진 출처 예원예술대학교 홈페이지)
앞서도 말했듯이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기업과 가계의 세금을 낮추고 각종 규제를 없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어 고용이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 내수 시장이 발전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수출도 늘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는 선순환을 꿈꾸며 지난 30년 가까이 세계를 휩쓸어 왔다. 이러한 논리가 전혀 근거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나친 시장 만능주의와 과도한 규제 철폐는 경제 주체들의 책임의식을 해체시켜 결국 국가 부도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신화와 허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나친 미국 추종병에 걸려있다. 미국이 하는 것은 다 옳고,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이 충분한 시차를 두고 시행착오를 보여준 실패한 교훈까지도 결국 다 따라가려 한다는 점이다. 부시1기의 지나친 대결주의와 대북 압박 외교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해 결국 체면만 구긴 채 이제 와서 유연한 6자 회담의 틀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반면교사 삼으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자극적 대북 정책을 선보이다가 결국 동북아 협상 무대의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미 금융 위기가 구체화되면서 신자유주의 모델이 파산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작은 정부, 큰 시장', '금융 선진화'를 내세우며 지나가는 차를 억지로 세우려 하고 있다.

가만히 보면 대한민국은 유럽을 제법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유럽의 복지 정책이 실패해서 병이 들고, 노쇠한 유럽 경제를 벗어버려야 한다는 등의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 국민 소득 대비 사회복지비 비중이 거의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가 유럽의 복지병이 걸릴까봐 걱정한다는 것은 마치 못 먹어서 바싹 말라가는 사람에게 과식하면 몸에 해롭다고 음식을 빼앗는 것과 비슷하다.

"…이중 사회보장 예산은 1993년의 경우 정부 예산의 5.8%, GNP의 1%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준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1987년의 통계를 인용하더라도, 국민소득 6천 달러 이상의 선진국들에서는 정부 예산의 43.2%가 복지 부문에 쓰이고 있으며, 우리와 비슷한 소득 수준(2000~6000 달러)의 국가들은 평균 24.4%, 그 이하의 국가들도 평균 17.4%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이에 따라 그 질적 수준이 대체로 낮을 수밖에 없고, 복지 재정 조달에 있어서도 정부책임보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강조되어 복지 효과가 반감되고 있으며, 복지 혜택이 주어지는 대상자의 범위도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이영환 교수, 선거용 복지 공약에서 진정한 복지 정책으로)

우리는 유럽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서도, 유럽식 복지 과잉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식 경제를 일방적으로 추종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또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미국식 발전 방식이 많은 모순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 나름의 중요한 작동 원리가 있다.

첫째는, '미국 경제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세계인의 공통된 의식이다. 그것은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데다가 각국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해서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면 자국 경제도 함께 위험하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경제는 온갖 파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국가들과 투자자들이 미국 부양을 위한 최소한의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미국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장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혜택을 한국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둘째, 미국의 사회복지 제도는 유럽과는 견줄 수 없이 부실하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을 상당부분 메우는 보편화, 일상화된 미국인들의 기부와 자선(입양 등) 의식이 있다. 2007년 고액 기부자 상위 50명이 낸 돈은 모두 73억 달러에 달하는 데는 이들은 미국 경제가 불황인 상황에서도 전년에 비해 더 늘어난 액수다. 미국의 부자들이 내는 기부는 우리나라처럼 그저 재벌의 도덕성 면피용이거나 흉내 내기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재산의 상당액을 정기적으로 희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이와 같은 미국의 두 가지 장점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가 드러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따라갈 수 없다.
 
구교형/ 성서한국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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