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기도운동, '신사도 의혹 벗기기'
에스더기도운동, '신사도 의혹 벗기기'
  • 정이철
  • 승인 2012.05.28 07:19
  • 댓글 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9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단정죄하려면6 2012-06-08 20:06:02
고린도전서 4:18-20에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는 것이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성령이 역사하는 일에 대해 성경이나 신학적 지식만 가지고 실제 신앙생활 속에서 그 능력을 경험하지 못 한 분들이 인간적 열심과 지식으로 영 분별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곡식까지 뽑는 어이없는 일을 하지 않도록 두려워하며 겸손히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이단정죄하려면 5 2012-06-08 20:05:42
정이철 목사님의 글을 보면 신사도운동의 이단성에 대해 설명한 후 ‘에스더기도운동의 사역이 유사하므로 신사도운동단체다’라는 논조를 띠고 있는데 이런 전개방법은 에스더기도운동을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 그 틀에 억지로 끼어 맞추려는 시도로 비춰질 수 있다.
그분의 글대로 보면 기독교의 건전한 기도운동마저 이단이 아닌가 하며 의혹을 갖고 보게 만든다.

에스더기도운동의 대표적인 사역이 이 땅의 거룩과 북한구원을 위해 기도운동을 일으키는 사역을 하고 있는데 ‘신사도운동’이니 ‘이단’이니 하며 이 귀한 사역에 손발을 묶는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 24-29절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고 말씀하셨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이단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고 계신데 이단 시비를 하는 분들은 누구든지 위의 씨 뿌리기 비유를 유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 태운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교회와 단체, 사역자들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하게 행해지는 다양한 사역들을 위태롭게 하는 무분별한 이단 정죄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단 정죄하려면4 2012-06-08 20:04:36
세부적인 나름의 기준들을 가지고 논하겠지만 어느 교단이 이단이라고 판정을 했다 할지라도 타 교단은 이단 판정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견해가 다른 그리스도인이나 목회자 또는 신학자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어느 교단이나 개인이 이단 판정을 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다 동의하거나 그 판정을 절대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훌륭하신 목사님들이 이단 정죄를 받았다가 지금에 와서 그 누명을 벗은 분들이 많지 않은가.

마태복음 12:33에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는 말씀이 있다.
이단 판정이 절대적일 수 없다면 어떻게 영을 분별해야 하는지는 열매를 보아야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사도운동을 잘 모른다. 단지 웹상에서 정보들을 접하곤 하는데 신사도운동의 문제점과 에스더기도운동을 신사도운동이라고 끼어 맞추려는 정이철 목사의 글을 보면 그 논증이 명쾌하지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의견에 긍정, 부정 둘 다 나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신사도운동이든 에스더기도운동이든 이단으로 분류하려면 그 운동을 통해 나타나는 사역의 열매를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하며 명확히 보여줘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해석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어설픈 성경 해석을 가지고 진리인양 여론을 호도하지 말고 그 운동의 사역으로 얻어진 결과나 참여한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면밀히 조사해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함부로 이단 정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에스더기도운동의 사역을 통해 영향 받은 자들이 삶에서 더 거룩하기를 힘쓰고 예수님과 영혼을 사랑하며 주님께 더욱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 이러한 일들은 심각하게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다.

이단정죄하려면2 2012-06-08 20:03:47
또한 영을 분별하려면 영적인 체험도 중요하다. 만일 어떤 이가 방언이나 치유에 대해 논하면서 자신은 방언도 치유도 경험하지 못한 채 방언이 어떻다 치유가 어떻다 하며 정답인양 주장한다면 누가 그의 말을 권위 있게 받을 수 있겠는가.
성령의 사역에 대해 분별하려면 분별하려는 사람 자신이 성령의 사역을 분별할 수 있는 영의 눈과 지식의 눈이 겸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임명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이단 정죄를 사명으로 여기면서 한국교회의 영향력 있고 비중 있게 사역하는 사역자나 단체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개 목회자나 평신도 중에 성경적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관하여 자신의 주관적 견해나 개인적 경험의 한계에 제한하지 않고 치우침 없이 올바르게 영을 분별(이단 판별)하며 말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요한1서 4:1-3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이단들의 교리에는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하며 또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거나 자신의 공동체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경우들이다.
그러나 요즘은 위의 요한1서 4장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당시 영지주의 이단을 염두에 둔 글) 신성을 인정하며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이들 중에도 이단 시비에 대상이 되는 이들이 있다.

이단 정죄하려면 2012-06-08 20:02:57
요즘 이단 정죄하는 분들이 목회자에서부터 평신도까지 아무나 일어나서 이단 정죄를 하고 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이단 정죄에 대한 성경적 적용이 미약하거나 극히 주관적이다.
자신과 성경해석 관점이 다르면 모조리 이단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자신의 관점이 올바른지는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자신의 주관적 검증 기준이 얼마나 객관성이 있고 진리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다수의 동의를 얻어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인터넷문화를 둘러보면 냄비근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누가 어떤 글을 올리면 진실여부와 정확도는 따지지도 않고 글쓴이의 일방적 관점의 논조에 휘둘려 비판하는 글을 퍼다 나르거나 댓글로 도배하다가 그 글을 뒤집는 글이 나오면 또 그 내용에 맞게 비판하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줏대 없는 댓글과 퍼나르기 문화가 다반사다.
신중히 한 걸음 뒤에서 양쪽의 의견이나 실상에 대한 정보를 득한 후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조급하게 논하고 비판하려는 가벼운 태도를 버려야 한다. 크리스천이라면 더더욱 진리 안에서 성령으로 분별하려는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단 정죄라는 것이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마귀로부터 온 것인가를 판단하는 영 분별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2:14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영 분별을 하려면 분별하려는 사람 자신이 영성과 지성에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함 없이 지식에만 치우쳐 있으면 성령의 일을 훼방하는 우(愚)에 빠질 수 있고, 초자연적 신비에만 치우쳐 있으면 영적 미혹에 빠지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