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진 빚
3년 전에 진 빚
  • 변완섭
  • 승인 2007.05.18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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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와 용서를 생각하게 만든 베이테라스 방화 사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언제나 생각나서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하는 일은 3년 전 어느 날 시작되었다.

2004년 2월 한인 사회를 놀라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이 일은 퀸즈 베이테라스에서 발생했던 한인 다세대 주택 방화 사건이다.

당시 어머니와 두 딸이 살던 이 집에 룸메이트로 있던 강 아무개 씨(여, 사건 당시 27세)가 마약을 사용한 후 환각 상태에서 불을 질렀다. 그 화재로 언니 하나 양(당시 14세)이 숨지고 동생 미나 양은 중화상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두 자매의 어머니는 불법 체류 신분이어서 미나 양의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한인 사회의 많은 지원과 온정이 이어졌었다.

그 가정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사건을 일으킨 강 아무개 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느 날 강 씨가 수감되어 있던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로 취재를 가게 되었다.

왜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당시 피해자에 대해서 매일 보도되었던 것에 반해 가해자인 강 씨에 대해서 쓰인 기사 한 줄을 읽을 수가 없었던 때문인가. 사건의 비극적인 성격으로 인해 아마도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라 구아디아 공항 인근에 위치한 구치소는 공항 활주로 북쪽 작은 섬에 위치해 있고, 기본 검색을 마친 후에 구치소 버스를 타고 섬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었다.

   
 
  ▲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 입구. (변완섭)  
 
아래의 글은 강 씨를 취재한 후 쓴 글이다.

“라이커스 아일랜드(Rikers Island)의 구치소로 연결되는 다리 위로는 짙은 잿빛 하늘에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지척에는 라 구아디아(La Guardia) 공항의 활주로와 비행기들을 볼 수 있었다.

맙소사, 형무소와 공항이 이토록 가깝게 있을 수 있다니! 자유와 구속, 전혀 상반되는 구조물이 마치 인생의 또 다른 아이러니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왜 그녀를 취재하러 가는 걸까, 그녀를 만난 후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며 이 길을 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서 서너 군데의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차를 이리 저리 갈아타고 마지막 검색대를 통과해 면회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내 수중에 단 한 자루의 펜도, 한 조각의 종이도, 심지어 바지의 허리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사회와 격리된 지역이라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난 후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세 시간 반을 기다린 후에야 나는 그녀와 대면할 수 있었다.

평범한 같은 한국인, 스물일곱 나이의 그녀와 나는 면회실을 채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둘만이 아는 언어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면회 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입에서는, 묻지도 않았는데 뜻밖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초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닌 얘기, 사건 이후 죽은 아이와 중상을 입은 동생, 그 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얘기. 사죄의 말과 함께 한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검사가 12년 형량을 구형했고, 담당하는 국선 변호사가 형량을 줄이기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그녀에게 12년의 세월은 그 이후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까마득한 날이리라.

불을 지르게 된 동기는 어처구니없게도 마약에 취해 환각 상태에 빠진 때문이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했고, 그 도둑을 쫓기 위해 종이에 불을 붙여 휘두른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집에 불이 난 것을 알고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온 집이 불에 휩싸인 상황이었고, 긴박한 순간에서도 불을 끄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연초부터 한인 사회를 가슴 아프게 한 사건의 당사자는 그렇게 구치소에서 자신의 인생과 죽은 아이, 그 가족을 생각하며 고통 받고 있었다.

어차피, 세상의 죄는 사람이 만든 법(法)으로 그 대가를 치루는 법이다. 하지만 대가를 치른 후에도 남을 아픔과 상처는 당사자 모두에게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리라.

그녀를 면회한 후 한없이 피곤한 발걸음으로 구치소를 나와 버스에 몸을 싣고 세상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넜다. 차를 타고 전화를 켜서 보니 수많은 메시지와 미스콜 사인이 들어와 있었다. 사회와의 잠깐뿐인 격리는 허둥대며 메시지에 답하는 전화를 걸면서 끝이 났고, 머릿속으로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오, 주여, 자식을 잃고 고통 받는 그 부모에게 주님의 위로와 도움을, 그리고 감옥에서 자책하며 울고 있는 이 영혼에게 주님의 자비를….”

강 씨는 그 당시 한국에 가족들이 있었고 미국에 혈혈단신 거주하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영어를 전혀 못하던 상황이라 온통 미국인 죄수에 둘러싸인 그녀의 공포는 사건의 충격과 함께 극한적인 상태였다. 그녀 자신의 말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동양 여자가 몇날 며칠을 울고만 있으니까 다른 죄수들이 아예 미친 줄 알고 상대를 안 하더라는 말을 했다.

성장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인생의 길을 걷게 되었던 그녀는 유흥업소에서 마약을 손대고 되었다. 몇 차례 끊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다시 사용한 마약은 그녀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취재를 마친 후, 오랜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불법 체류 신분인 그녀는 형기를 마친 후에야 한국으로 추방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고 한다) 그녀에게 동정이 갔고, 교도소 선교를 담당하는 분들에게 그녀를 연결시켜주고자 노력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순조롭지는 않았고 나 역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다.

   
 
  ▲ 짙게 깔린 구름 아래 구치소 상공으로 날아 오르는 비행기. (변완섭)  
 
이렇게 3년이 흘렀고, 이 일은 이제 나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되었다. 금년에는 어떤 모양이든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으리라.

어쩌면, 우리 모두는 모두에게 빚진 사람들이 아닐까.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에게 생명의 빚을 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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