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두고 온 가족 상봉 학수고대하는 할아버지
북에 두고 온 가족 상봉 학수고대하는 할아버지
  • 강희정
  • 승인 2007.06.1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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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벨재단의 '샘소리' 북한 가족 상봉 추진 프로젝트에 대해서

국경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어 만남과 소통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혈육 간에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비극적인 현실이다. ‘냉전의 시대’에 치러진 한국 전쟁의 피해자인 이산가족들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치유 받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다.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진 지금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상봉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소외된 사람들이 미국 내에 상당수가 있다.

   
 
  ▲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고 있는 한인 교포 노완찬 씨.  
 

미국 내 한인 교포 200여만 명 중에 이산가족은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노완찬 씨(87세, 미국 유타주 거주)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노완찬 씨는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국 땅 미국에서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는 57년 전에 헤어진 가족들의 소식을 듣거나 생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노완찬 씨는 한국전쟁 전에 평안남도 강서군에 살았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터진 후 기독교인으로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가족들과 함께 1950년 12월 5일에 남하를 결행하게 되었다. 12월 11일에는 부인과 함께 아들 둘을 각기 업고 황해도까지 내려왔을 즈음, 미군 폭격기 4대가 날아와 폭탄을 마구 퍼붓는 상황을 당하게 되었다. 다리 밑에 숨어서 다행히 가족들의 생명은 보존되었으나 이후 부인이랑 아이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노완찬 씨는 남한으로 내려온 뒤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며, 아들 둘과 딸 셋을 두었다. 재혼했던 부인이 1986년에 돌아가신 이후 199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유타제일장로교회의 부목사로 재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들을 한시라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건만,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 체제와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국민의정부 이후 남북 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8년 전인 1999년 8월에 대한적십자사 LA 지사를 통해 이산가족 면담 신청서를 제출하였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노완찬 씨는 한국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 사무실 등을 방문하곤 했지만 기다리라는 말 외에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2002년에는 평양 아리랑 축제 방송을 시청하던 중에 미국에 있는 동포들은 아리랑 축제 관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가서 북조선 비자를 발급받아 그해 6월 1일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평양에서 열리는 아리랑 축제를 관람할 수 있었다. 노완찬 씨는 남포제철소 방문 일정 중에 고향을 찾아가 보았으나 자신이 살았던 집이나 마을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떠나올 때 북한 지역 방문 시 안내를 맡은 사람에게 가족들을 수소문해 줄 것을 부탁하고 돌아왔으나 아직까지 어떠한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작년 5월에는 미국 유진벨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샘소리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이산가족 북한 방문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10여 년 동안 북한 의료 지원 사업을 진행해 온 유진벨재단은 2006년 2월부터 한인 교포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하여 ‘샘소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바 있다.

순수한 한글로 이름 지어진 이 프로젝트는 유진벨재단이 이산가족들을 위해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 주는 냉수와 같은 소식을 전하는 샘’이 되도록 하자는 스티븐 린튼 이사장의 뜻에 따라 시작되었다. 스티브 린튼은 북한 지원 사업을 하면서 미국 내 이산의 아픔을 가진 재미 동포들을 만나게 되었고, 북한 지원 사업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산가족들이었기에, 이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샘소리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미국 워싱턴 DC 지역에 사무실을 두고 미국 내에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동시에 미국 정치권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노완찬 씨의 소식을 접한 유진벨재단 ‘샘소리 프로젝트’ 팀은 유타 지역의 짐 메디슨(Jim Matheson) 민주당 의원에게 연락하였고, 짐 메디슨 의원은 지난 3월 15일에 뉴욕시 유엔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와 미국무부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노완찬 씨의 북한 방문이 성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에서는 어떠한 답변도 주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5일에 미 국무부 담당자는 한반도의 분단으로 말미암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비극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과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려우므로), 유진벨 재단의 샘소리 프로젝트 팀이나 한국의 적십자사를 통해 도움을 얻으라는 답변만을 주었을 뿐이다.

미 국무부는 행정부서의 하나로서, 북미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미국의 의회 의원들이 나서서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이산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의 대안이다.

‘샘소리 프로젝트’ 담당자인 서 앨리스 국장에 따르면, 현재 150여 명의 사람들이 북한 방문 희망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며, 남한 적십자사를 통하여 700여 명의 재미 교포들의 북한 이산가족 상봉 신청 서류를 전해 받았다.

   
 
  ▲ '샘소리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미 공화당 하원 마크 커크 의원. (사진 제공 유진벨재단)  
 

또한 10여 명의 미국 의회 의원들이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의 북한 방문 성사를 위한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올 7월에는 공화당 하원 의원인 마크 커크(Mark Kirk, 일리노이 주) 의원과 민주당 하원 의원인 짐 메디슨(Jim Matheson, 유타 주)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가 구성될 예정이다.

대부분의 미 의회 의원들은,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당적에 관계없이, 미국 내 이산가족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 의회 의원들은 지역의 유권자들의 요청이 없이는 어떤 이슈에도 행동을 개시하지 않는다.

미국 시민권자인 노완찬 씨가 자기 지역의 민주당 의원인 짐 메디슨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듯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시민권자들이 자기 지역의 의회 의원들로 하여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요구하는 방법 외에는 현재 길이 없다. 유진벨재단의 ‘샘소리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유태계 미국인들은 미국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여 냉전으로 미소가 대치 중이던 상황에서도 구 소련 지역에 묻힌 유태계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온 적이 있다. 미국 시민으로서 한국계 이민자들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미국 의회나 정부에 대하여 주장할 권리가 있다. 마크 커크 미 하원 의원이 지적했듯이, "미국과 북한 간 의제에는 핵, 연료, 식량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의 남북 이산가족 문제도 있으며, 이는 미국의 중대한 국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그리워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노완찬 씨와 같이 이산의 아픔을 가진 수많은 재미 동포들의 소원이 하루 속히 성취되는 일에 한인 교포들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Saemsori Project (www.saemsori.org) Eugene Bell Foundation (www.eugenebell.org)
Washington Office
207 C Street, SE, Washington, DC 20003
Tel: (202) 393-0645
Fax: (202) 543-2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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