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만나는 사람들
은혜로 만나는 사람들
  • 양국주
  • 승인 2007.07.15 16: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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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자녀 컨퍼런스를 마치며

   
 
  ▲ 어린 나이에 문명과 문화적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미국의 문명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이 현지에 정착하고 싶은 의욕을 꺾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런지.  
 
미국까지 비싼 비행기표를 들여서 올 수 있는 선교사 자녀들이 얼마나 될까?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지만, 지구촌 구석구석으로부터 80여 명의 MK가 모였다. 두 번씩이나 보낸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대부분은 급행료 물어가며 보내곤 했다. 한밤중 강도를 만나 보따리를 싸야 했던 선교사 초년병은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반해, 선교 사역 현장에서의 우편물 분실 정도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타밀 반군들과 교전 중인 스리랑카 캔디에서 온 신혜는 2주일간의 미국 생활 후 떠나는 공항에서 솔직히 선교 현장에서 사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하였다. 평생을 헌신한 부모를 따라 선교지에서 운명처럼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어린 나이에 문명과 문화적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미국의 문명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이 현지에 정착하고 싶은 의욕을 꺾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런지?

편의점에 들러 초콜렛이며 인형을 집어든 이유를 묻자, 선교지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탓에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슴에서 어느덧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순수함이 뭍어 나온다.

선교사 자녀 컨퍼런스를 하면서 이들에게 열린 가슴과 닫힌 사람들이 보인다. 익투스교회 성도들은 MK에게 고국의 향수를 달래주겠다며 호두를 넣어 정성껏 300장의 호떡을 손수 빚어 밤참으로 보내왔다. 친구들과 밤잠을 설친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아침 식단에서 화려한 조찬을 마다한 채 "호떡 남은 것 없어요?" 하며 아쉬워하던 눈망울을 잊지 못하는 것은 내 자녀들에게 대하듯 세심하게 배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가 헌금으로 도와주셨고, 기대 이상으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까지 먹이고 재워야 하는 탓에 호주머니는 일찌감치 바닥이 났지만, 은혜 이상으로 선교에 앞장 섰다는 교회들의 진면목을 보면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은 교회의 한계"라는 사실도 배웠다.

부산 수영로교회의 정필도 목사께서 요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먼저 헌금을 보내 주셨다. "우리가 전액을 보조해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은 십시일반 헌금으로 동참하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게야" 하시며 500만 원을 보내오셨고, 분당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는 예산 밖의 행사라 수요일 예배 때 특별헌금으로 보내주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려니 싶었다. 왜냐하면 평소 가깝게 느꼈던 목사님들은 십여 차례의 부탁에도 벌레 씹은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이다.

   
 
  ▲ 많은 교회가 헌금으로 도와주셨으나 기대 이상으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까지 먹이고 재워야 하는 탓에 호주머니는 일찌감치 바닥이 났다.  
 
사실 가장 믿었던 교회들은 위싱턴 지역에서 소위 선교에 앞장 선 교회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했다. 2020년까지 200명의 선교사를 보내겠다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건 A교회는 교회당을 사야 한다는 구실로, 공문서를 보내주면 처리하겠노라는 말을 믿고 두 달을 기다렸던 O교회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식사할 공간마저 거부하는 염치없는 공문을 보내왔다. 교회 자체 행사로 어렵다는 이유였다.

MK 컨퍼런스 장소와 2마일 떨어진 지척지간의 이 교회와는 정반대로 한 시간 반이나 떨어진 볼티모어에 위치한 벧엘교회에서 헌금과 다섯 분의 자원봉사자들이 자진해서 찾아와 우리의 상심을 덜어주었다. 선교한다는 교회의 목사들이 선교사 자녀들을 찾아 위로하기는커녕 이들을 외면하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아시고 까마귀를 동원하여 허기를 채우시고 도우신 것이리라.

이번 MK 컨퍼런스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신청했던 전미애 교수는 부득이한 가정사로 올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본인의 비행기표 값을 헌금으로 보내왔다. 아틀란타한인교회(김정호 목사)와 필라 안디옥교회(호성기 목사)는 MK 컨퍼런스가 끝난 이후 미안한 마음과 함께 적지 않은 헌금을 보내오셨다. 이미 끝나버린 컨퍼런스, 자신을 강사로 불러 주지도 않고 주최 기관이나 후원 기관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아도 이름도 빛도 없이 배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선교란 화려한 캠페인이나 잔치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순종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기 교회나 목사의 이름을 세워주고 명분만 내세워주면 천금이라도 낼 사람은 많다. 우리가 그러한 세속적 방법을 모를 리 있겠는가? 적당히 타락하고 싶지 않은 탓이다. 적어도 선교를 말하면서 교회와 무수한 선교단체들이 가는 편안한 길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아버지의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다.

   
 
  ▲ 3년만 지나면 백수를 사시는 한국 선교의 살아 있는 신화 방지일 목사께서 자비량으로 그 먼 곳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셨다. 생사와 세대를 넘어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눈 사랑이었다.  
 
3년만 지나면 백수를 사시는 한국 선교의 살아 있는 신화 방지일 목사께서 자비량으로 그 먼 곳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셨다. 눈물로 성만찬을 함께 나누며 보여주신 사랑은 주님의 마음이었다. 생사와 세대를 넘어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눈 사랑이었다. 내일을 기약하기조차 어려운 노구를 이끌고 찾아오신 천사이다.

오늘 아침 아프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편지를 받았다. 우즈벡에서 추방당하고 젊은 시절을 오지에서 헌신한 사역자의 아픔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이런 선교사의 아픔 때문에 내년에는 비행기 표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MK들을 위한 대륙권 별 MK 컨퍼런스를 놓고 기도하게 만드신다. 왜냐하면 2~3,000불에 달하는 미국까지의 왕복 비행기를 지불하고 찾아온 MK도 소중하지만,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만 보아도 가슴 아픈 MK가 지천에 깔린 탓이다.

   
 
  ▲ 내년에는 비행기 표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MK들을 위한 대륙권 별 MK 컨퍼런스를 놓고 기도하게 만드신다.  
 
"저는 선교사 훈련을 받을 때 나름대로 자녀 교육에 있어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아이지만 글로벌하게 키우고 싶고, 그러나 한국인임을 잊지 말도록 키우자는 것이었지요.

지난주 저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 중의 하나를 거쳐 갔습니다. 몸이 아픈 아내가 내년 안식년을 가지며 한국에서 아이들을 일 년간 한동대에 보내자고 하더군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동의했다가 주위 선배들이 한결같이 반대를 하더군요. 결국 이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가 심한 지경까지 갔고,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남들과 달리 저는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이들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동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MK를 돌보아주는 것도 아니고 입학을 허락해 줄지도, 설령 입학한다고 해도 그런 분위기 가운데 아이들이 적응할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모험을 걸기에는 아이들의 인생을 우리가 좌지우지하는 것 같고요. …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나중에 서양 남자들과 충분히 결혼할 수 있는 문제라고. …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부분을 서양 아이들과 살아왔지 한국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살지는 않았더라구요. … 자랑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현지 우즈벡 학교에 보냈습니다. 우즈벡어와 러시아어를 열심히 했지요. 그런데 추방을 당해 온 아프간에선 영어학교 이외에는 선택이 없었고, 그렇게 보낸 지난 2년 반의 결과로 이제 대학을 한국에 보낼 수는 있을지조차도 혼동 가운데 있습니다.

한국에 소위 유명 어학원이란 곳에서 집중 토플이나 SAT 코스를 배우는 데 그 비용이 2,000불 정도입니다.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어학원에서 선교사 자녀들에겐 면제를 해주는데, 지난해 그 어학원을 다닌 MK 숫자가 무려 250명이랍니다. 결국 MK들도 생존경쟁이란 테두리 안에서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요. 그런 아이들을 방학이라고 한국에 보낼 수 있는 선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프간에 있어 보니 한 번 움직인다는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한국까지의 항공료만 2,000불 정도입니다. 하물며 미국에서 열리는 MK 컨퍼런스는 가히 꿈도 꾸어보지 못하는 노릇입니다. 자식 교육 변변히 시키지 못하는 현실 앞에 선교사라는 타이틀이 무슨 의미를 가져다 주며 어떻게 현실을 견디어야 할지요?

물론 그렇게 교육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고 나름대로 정체성과 계획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걸 요구하기엔 한국 교회는 너무나 훌륭한 선교사만을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이태웅 목사님이 고 김인수 장로님과 생전에 MK 이야기만 하시면 한숨만 내쉬었다고 하는데 동감이 갑니다. 제 아이들만 아니고 주위 아이들을 보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 하신 말씀대로 무거운 짐을 맡깁니다. 오직 믿음으로……."

양국주 /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국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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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합니다 2014-08-19 18:43:10
MK들을 위한 귀한 사역에 축복합니다. MK들을 섬기시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평소 가깝게 느꼈던 목사님들은 십여 차례의 부탁에도 벌레 씹은 표정으로 묵묵부답"의 표현에 맘이 저려오네요. MK 섬기는 일에기대한 만큼 지원해 주지 않는다고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마지막에 "오직 맏음으로..." 라고 쓰신 것 같이 기도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귀한 사역 아름답게 이어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