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을 대신하여 죽고 싶은 사람
인질을 대신하여 죽고 싶은 사람
  • 양국주
  • 승인 2007.08.0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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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의 세상이야기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6명의 협상단이 탈레반 지역으로 갔지만 캠프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고 왔다는 소식이다. 대리인을 내세워 접촉을 해야 하는 관계로 모든 일이 생각만큼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는데 죽기 위해 제 발로 찾아갈 수는 없었겠지만 만족할 만한 타협점이 없다보니 협상을 한다 해도 한계가 있었을 게다. 2,800만의 아프간 인구 가운데 1,650만 명이나 되는 파슈툰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탈레반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미군과 나토 연합군의 처지가 어려운 이유다.

시간만 때우다 왔다는 무사 안일한 행태를 보인 협상 팀에 대한 소식을 아프간의 현지 보고를 통해 접하면서 갇혀있는 인질은 ‘누구를 믿고 목숨을 부지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납치된 이들의 무모한 봉사활동에 대하여 그리고 무능한 정부를 향하여 손가락질해대는 그 어느 누구도 인질을 위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비판을 하기는 쉬워도 해결책은 없는 셈이다.

인질 중 일부가 소속된 선교단체의 대표라는 사람이 그 인질과 자신의 단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부끄러운 현실이 한때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으로 ‘아프간 평화축제’를 꿈꾸던 사람들의 자화상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8월말 아프간을 방문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필자에게 이른 아침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프간에 인질로 잡힌 분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인질로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제의였다. 내게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나는 분쟁 지역이나 재난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하면서 최고의 관심은 언제나 내 자신의 안전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과 상비약은 어김없이 챙기고 평소 사고가 많은 항공기는 가급적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선교든 인도주의적 차원의 봉사활동이든 위험지역을 넘나드는 내게 생존의 문제는 절체절명의 우선 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인질을 대신하여 아프간을 찾아가자는 제의가 솔직히 무섭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무엇보다 제3세계를 위해 일하려는 나의 사역의 목적과 비전을 되새겨 보게 만들었다. 지난 해 남부 수단에서 내가 이용했던 소형 비행기가 일주일 후 반군에 의해 추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감사헌금을 드렸던 부끄러움이 내게 있다. 그것이 행운이든 은혜든 내가 살아난 일은 고마운 일이지만 일주일 후에 같은 비행기를 이용했던 다른 사역자의 죽음에는 일말의 연민도 느끼지 못했던 후안무치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였다. 아마 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위험한 순간에 대신 죽기는커녕 뺑소니치기에 바쁜 사람일는지 모른다. 크고 작은 일에서부터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절대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내 자신의 모습에서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위해 일한다는 미션은 차라리 사치일는지도 모른다.

박은조 목사가 한국 교회에 기도를 부탁하지 말고 샘물교회의 장로들과 목사들이 자진해서 아프간으로 떠나 인질이 되어야 한다는 분도 있다. 자신은 빠지고 남들이 십자가를 대신 져야 한다는 게다. 십자가는 남들로 하여금 대신 지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짊어질 때 십자가의 위대함과 은혜가 있는 법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봉사나 선교든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면 결코 실천이 쉽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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