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앞둔 아프간 한국 선교사들의 한숨
철수 앞둔 아프간 한국 선교사들의 한숨
  • 박지호
  • 승인 2007.08.10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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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 “정부는 합리적인 대안 가지고 철수 논하라”

   
 
  ▲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답답하다. 납치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국의 NGO를 모두 철수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일로 아프간 선교가 한국 1세대 중심에서 미주 한인 2세대로 자연스럽게 바통이 넘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8월 1일부터 4일까지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아프간 사역자 컨퍼런스'에서, 아프간에서 수년간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는 전·현직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답답하다. 납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할 단체가 ‘남 일’이라며 오리발을 내미는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국의 NGO를 모두 철수시킨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도 한국 정부의 철수 명령에는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칸다하르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심각하게 위험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NGO들의 활동까지 정부가 나서서 제한하는 모습에서다. 답답한 선교사들은 할 말도 많았다. 다음은 한국인 선교사들과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재구성한 것이다.

지난 7월 24일 외교부는 여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때문에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교민들과 NGO들은 이달 말까지 철수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추가 희생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보지 못하는 장기적이고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현재 외국인들은 카불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외국인은 카불 외 일부 지역으로 나갈 때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할 만큼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 있는 NGO가 철수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란다. 현지에 있는 대사는 오히려 철수에 대해서 유연한 입장이다. 하지만 외교부에서는 워낙 강경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교민들을 위해 자기 목을 내놓고 나설 공무원도 없다.

한 달 안에 기업들을 제외한 모든 NGO들은 철수해야 한다. 현재 NGO를 통해서 아프간을 섬기는 사역자가 9개 단체에 80명가량 된다. 공관에 신고하지 않고 사역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1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선교사들은 NGO 인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 클리닉센터, 물리치료센터, 학교, 유치원, 여성센터, 병원, 장애인센터 등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강제 철수 조치로 이들이 해오던 사역은 중단해야 하고, 결국 어려움은 환자들이나 어린이들과 같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생겼다. 벌써부터 일부 병원들은 환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 대사관이나 사업가들보다 먼저 들어가서 11개 지역에서 구호·봉사·재건 사역들을 지난 6년간 펼쳐왔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 NGO만 철수하면 현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에 200여 개의 NGO들은 한국 정부와 한국 NGO를 어떻게 보겠냐는 것이다. 아프간에 들어와서 봉사하고 사업을 하는 외국인 거주자만 1만 명이 넘는다. 올해만 아프가니스탄에서 3,200명이 넘게 죽었는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철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모든 일을 중단하고 철수하라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 여름 파키스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 대사가 테러 경고를 받고 대사관을 폐쇄하고 모든 한인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그 명령을 내린 대사는 교민들이 나가기도 전에 먼저 철수해 비난을 샀다. 당시 정부의 섣부른 대응으로 하던 모든 사역과 사업을 중단하고 나왔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몇 개월 후 현지에 돌아왔을 때 한국 사역자들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현지인들과 다른 나라 단체들이 ‘한국인들은 저쪽에서 하품만 해도 숨는다’며 비아냥거렸고, 주변국 언론들은 당시 사건을 희화화해서 보도하기도 했다.

선교적인 측면에서도 치명타다. 그동안 해오던 프로젝트가 중단되어버리면 사역의 흐름이 끊긴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가 힘들다. 다시 들어와도 비겁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사람들과 무슨 일을 같이 하겠냐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는 아프간 지하 교회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나. 차라리 아프간 정부에서 위험하니까 나가달라고 하면 말이 된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에서도 가만있는데 한국에서 먼저 난리다.

최근에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 있는 반기독교 세력이 한국인을 납치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국 정부가 지금처럼 대처한다면 더 큰 테러의 위협 앞에 직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엔 23명이지만 앞으로는 외국에 나와 있는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긴장하고 다녀야 할는지 모른다.

정부는 NGO에 소속된 사람들이 다 본국에서 월급을 받으니 철수를 시켜도 국내에서 직장이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많은 NGO가 자기 돈(후원)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는 자영업자로 봐야 한다. 그리고 강제 철수를 시키면 적어도 항공편을 제공한다든가 짐 운반이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죄인처럼 나가라고만 하지 아무런 조치도 없다. 정부가 합리적인 대안을 가지고 철수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일부 사역자들이 정부에게 철수 비용을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다. 그런 전례도, 법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단체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떤 단체는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고, 어떤 단체는 회사를 만들어 남아있으려고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비즈니스로 비자를 바꿔서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려니 맘이 편하지 않다. 한국 교회의 죄악을 대신 짊어져야 한다면 어떻게든 남아 있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을 수 있을지라도 책임을 느끼고 떠나가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의 일방적인 선교를 감행해온 한국 선교의 자화상을 잘 알기에 정부가 정한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남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선교사들은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역자들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이다. 선교사들은 한국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외국에 있는 2세들 특히 미주 지역에 있는 한인 1.5세와 2세들이 한국 사역자들의 자리를 메워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철수 명령이 내려져도 한국 정부가 한국 여권 소유자에게만 강행할 수 있으므로 미국이나 외국 여권 소유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인 2세들이 문화적·언어적으로 외국 선교사들이나 단체들과 훨씬 수월하게 의사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 선교사들은 이번 일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선교가 한국 1세대 중심에서 한인 2세대로 자연스럽게 바통이 넘어가길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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